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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스토리 in 상하이] 이제 너의 손을 놓아줄 때

[2024-12-21, 07:35:08] 상하이저널

휴대전화 화면 속에는 여전히 아기 같은 포동포동한 손이 건조기에서 꺼내 온 옷가지들을 개고 있다. 개는 건지 대충 말아놓는 건지 모를 정도로 어지간히 손놀림이 서툴다. 보고 있으면 너무 얼렁뚱땅이라 피식피식 웃음이 나오는데, 그 와중에도 잘 개보려고 하는 게 느껴져 귀엽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하다.

큰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유난히 손과 발이 통통했다. 그 작고 오동통한 손을 잡고 낯선 땅을 참 많이 헤매고 다녔는데. 겨울이 유난히 길고 춥던 그 곳에서도, 말도 안 통하고 모든 게 이해할 수 없었던 이 땅에 왔을 때도 아이의 따뜻하고 말랑한 손을 꼭 쥐고 어디든 다녔다. 그 작던 아기 손이 이제 나의 손에서 벗어나 자신의 옷을 직접 세탁하고 개고 있다.

“나는 빨래 개는 게 귀찮더라.” 

아이가 말했다.

“나도 그런데….”

아이는 올가을 학기부터 한국에서 대학에 다니며 학교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다. 처음으로 가족들과 떨어져 혼자 지내고 있다. 함께 살 때는 말수가 별로 없던 아이가 매일 영상 통화를 걸어와 자신과 성격이 비슷한 새 친구들 이야기, 학교 수업 이야기, 동아리 활동 등 일상에 대해 시시콜콜하게 이야기한다. 

어느 날은 외출 전 화장을 하면서 전화를 걸어와, 난 영락없이 아이가 화장하고 있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어야 했다. “내가 왜 이걸 보고 있어야 하냐?”라며 툴툴댔지만, 이런 짬이라도 내어 전화한 걸 보니 집 생각, 엄마 생각이 많이 나나 보다 싶어 짠하기도 했다. 

아이는 생각했던 것보다 학교생활이 재밌다고는 하지만, 첫 독립생활이 녹록치 만은 않을 것이다. 학교생활과 한국 문화에 적응하느라 정신없는 와중에 아르바이트도 하고 상하이에 있는 부모를 대신해 양가 조부모님의 대소사까지 챙겨야 하니, 열 여덟 살이 감당하기에는 벅찰 것이다. 어릴 때부터 어린아이가 소화하기 힘든 거리도 엄마 손을 잡고 야무지게 걸어 다녔던 것처럼, 지금도 즐거우면 즐거운 대로 고되면 고된 대로 별 내색 없이 묵묵히 길을 걷고 있어 보였다. 그 길 어느 즈음에서는 어엿한 성인이 되어 있을 것이다.

얼마 전에 큰 아이가 상하이에 왔다. 둘째 아이는 집 대문을 들어서는 언니를 보고 귀신을 본 것처럼 화들짝 놀랐다. 큰 아이 방문이 둘째 아이에게는 극비리에 이루어졌던 것. 빅 서프라이즈 선물이었다. 둘째 아이는 곧 상황을 파악하고, 환호성을 지르며 언니를 안고 눈물까지 글썽였다. 표현은 안 했어도 태어나면서부터 늘 함께였던 언니의 빈 자리는 컸을 것이다. 그날 자매는 밤늦게까지 밀린 수다를 떨었고, 주말에는 둘이 좋아하던 의류 매장에 쇼핑도 다녀왔다.

큰 아이와 나는 점심때마다 우리가 함께 먹었던 음식들을 찾아다녔다. 나와 식성이 꼭 닮은 아이는 남편이 먹지 않는 음식을 함께 먹어주던 유일한 가족이었다. 

“왜 한국보다 상하이에서 먹는 순댓국이 더 맛있지?”

순댓국 한 그릇을 맛있게 비웠고, 곱창구이를 먹었고, 마라 훠궈를 먹었다. 나는 나대로 잠시 헤어졌던 영혼(혹은 식성?)의 단짝을 다시 만난 것 같았다. 큰 아이의 빈방을 보며 헛헛해했던 남편도 퇴근하자마자 아이 방으로 가서 한동안 둘이 속닥속닥 대화를 나누고 나왔다. 우리는 각자의 방식대로 큰 아이의 빈자리를 꼭꼭 채웠다.

“안 가면 안 돼? 가지 말고 그냥 상하이에 계속 있어라.”

아이가 다시 한국으로 떠나기 전날 밤, 아이 옆에 찰싹 붙어 누워서 하나 마나 한 저 말을 몇 번이나 반복했다. 오랜 연인과 작별하는 느낌이 이럴까. 아이가 나에게 얼마나 큰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존재였는지 새삼 느낄 수 있어서, 앞으로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 싶어서 아쉬운 마음은 자꾸 질척였다. 

“곧 또 만날 건데 뭐.”

혼자 한국에서 지내는 동안 부쩍 성숙해진 아이는 의젓하게 나를 달랬다. 어쩌면 낯선 타국 생활에 적응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동안 오히려 내가 아이 손에 의지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엄마 손을 놓칠세라 꼭 붙잡고 다녔던 어린아이는 이제 나보다 더 손이 커졌다. 스스로 결정하고 해결할 수 있는 일들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이제는 손을 놓아줘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엄마 손은 언제나 너를 향해 있어. 필요할 때 다시 꼭 잡아 줄게.

올리브나무(littlepoo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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