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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이야기] 아리랑

[2012-09-21, 23:43:42] 상하이저널
"그만해라 김기덕 그만해라 김기덕 이 X같은 새끼야. 인생이 그런 걸 몰랐어? 인생이 그런 걸 몰랐냐고."

최근에 서로 다른 입장으로 힘든 마음을 추스르는 주위 사람들 얘기를 자주 들었다. 자신의 이기심으로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는 아이엄마, 사업에 얽힌 사람들의 갈등, 시대와 맞지 않은 고집으로 고독해하는 작가의 얘기에 마음이 무거웠다. 귀로 가만히 듣는데 이것이 차곡차곡 마음에 쌓여 입술을 동여매는 느낌이었다. 내 일이 아녀도 또 내 일이여도 마음의 실타래가 얽히고설켰다 싶으면 영화를 본다.

평소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좋아하고 베니스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받고 불렀다는 아리랑이란 노래 얘기에 영화‘아리랑’이 보고 싶었다. 말없이 일상 속의 김기덕을 따라다니는 영화의 첫머리를 보며 아, 하는 느낌이 왔다. 이 사람은 영화 말고도 자기 얘기가 굉장히 많은 사람이구나 싶었다. 카메라를 통해 보이는 것이라고는 온통 산이고 문틈으로 드나드는 고양이 한 마리가 전부인 생활, 그의 칩거를 다룬 영화였다.

낡은 오두막집 안에 난로가 있고 주전자에 물이 끓고 있다. 특이한 것은 빈 캔 통에 휴지를 깔아 필터를 만들어 마시는 illy 원두커피와 한쪽에 자리 잡은 심플한 텐트. 그 안엔 오두막집과 어울리지 않는 세련된 느낌의 새 노트북이 켜져 있고 무표정하게 노트북을 쳐다보는 무심한 김기덕의 얼굴이 클로즈업되곤 한다.

영화계의 아웃사이더로, 믿었던 이의 배신으로 지치고 상처받아 위로받고 싶은 ‘김기덕 자신의 모습을 담은’ 영화다. 오히려 거울을 바라보고 있는 듯 내 안의 모습과 영화 속 김기덕의 모습이 겹쳐 그가 소리칠 때 함께 소리치고 그가 지친 현실과 고민을 향해 방아쇠를 당길 때 과연 모든 것이 해소되었나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하지만 그 소리는 오두막 안에서 힘없이 사그라들 뿐 변하는 것은 없다. 오두막 안에서 그만 소리 지르고 내 발로 걸어 나오는 것 말고는 해결은 없다는 걸 알지만 한번 들어간 오두막에선 나올 용기가 없다. 배신을 기억하는 자신을 죽이기 위해 오두막을 걸어 나오는 그는 여전히 신발을 구겨 신고 있다. 신발 속의 뒤꿈치는 갈라지고 터 상처투성이다. 하지만 꼿꼿이 선 두발엔 힘이 가득하다.

영화는 청승맞거나 지루하지 않았다.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땐 영화와 함께한 감정의 격정과 피로함에 난 슬쩍 잠이 들기도 했다. 일상이란 어쩌면 기나긴 내 인생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찍고 있는 것 아닐까 싶다. 서로를 힘들게 만드는 인간관계조차 언젠가는 ‘나의 인생’이란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되는 것이라면 조금 다르게 느껴지지 않을까.

지치고 억울하고 실망하고 배신에 몸져눕고 싶더라도 멀찍이 서서 영화를 보듯이 한 발자국 떨어져 본다면 사는 게 그리 지루하진 않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인생이 다 그런 거라는, 천재 혹은 변태로 불리는 김기덕 감독의 독설에 귀가 번쩍 트고 정신이 번뜩 차려진다. 그이나 나나 사는 게 맘대로 안 될 때 부려보는 땡깡 같은 영화 한편에 피식 웃어 본다.

▷Betty(fish7173. 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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