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메뉴

상하이방은 상하이 최대의 한인 포털사이트입니다.

[상하이의 사랑법] 미궁 아닌 미로를

[2023-06-26, 12:12:26] 상하이저널
길을 잃었다. 골목골목 끝없이 이어진 낯선 길. 열린 문마다 저마다의 신비한 세계로 나를 끌어들인다. 여행 온 서양인들이 맥주를 마시며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있었는데, 다음 골목에는 원주민 노인들이 낡은 의자에 앉아 햇볕을 쬐고 있다. 골목을 돌고 돌아 한참을 걸었는데 아까 보았던 치파오 가게가 다시 나온다. 톈즈팡(田子坊)의 좁은 골목들은 헝클어진 내 마음을 닮았다. 출구를 찾지 못해 갈팡질팡하고 있는 내 마음을.
 
난 사랑하고 있으므로, 사라지고 싶은 것이다*
 
[사진=톈즈팡(田子坊)]

사랑을 하면 닻을 내리고 싶어진다. 함께할 때의 행복과 기쁨, 평강을 오래도록 누리고 싶기 때문이다. 잔잔한 바람에 흔들림 없이 고요하게 정박한다. 하지만 바람이 곧 불어 닥치고, 정박의 시기는 늘 예상보다 짧다. 베르테르가 로테를 만나고 죽기까지 단 1년 6개월, 로미오와 줄리엣이 사랑해서 둘 다 죽기까지는 일주일밖에 걸리지 않았다.

바람은 밖에서만 불어오는 것도 아니어서, 때로 내면에서 폭풍이 일기도 한다. 사랑 때문에 가벼워진 몸과 마음이 비상을 꿈꾼다. 사랑을 위해 비상을 포기해 보지만, 자유를 포기하면 사랑도 사라진다. 사랑은 오직 자유로운 인간만이 할 수 있으므로. 
 
머무름과 떠남의 욕망이, 한순간 
망설임의 몸짓으로 겹쳐지는 곳에서*
 
[사진=톈즈팡(田子坊)]

망설이는 순간 미로 속에 갇히고 말았다. 고요의 자리에서 고통과 비탄, 자기 비하, 압박감, 상실감, 염려, 분노, 모욕감, 불안, 두려움, 조울, 초조, 공포, 의기소침, 슬픔 등이 얽힌 미궁으로 빠져든 것이다. 미로(迷路: maze)는 막다른 골목을 만들어 놓고 인간이나 동물의 선택을 보고 행동을 관찰하기 위해 설계해 놓은 장치다. 
 
천재 장인 다이달로스가 만들어낸 신비의 궁전 라비린토스는 의도적으로 길을 찾지 못하게 만든 미로가 아니었다. 오히려 치밀한 계산 아래 설계된 미궁(迷宮: labyr inth)이었다. 매번 선택의 기로에 서는 미로와 달리 미궁은 통로가 교차하지 않아 선택의 여지가 없다. 통로는 늘 180도로 방향을 바꾸며 내부 공간 어느 한 곳도 빠짐없이 지나도록 설계되어 있다. 겁을 먹거나 힘을 빼지만 않는다면 미궁의 길은 반드시 중심에 도달하게 되어있고, 중심에 도달한 사람은 다시 모든 통로를 되짚어 나올 수 있다. 테세우스는 미궁에 들어갈 때 굳이 아리아드네의 실타래를 들고 갈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사진=톈즈팡(田子坊)]
 
내가 헤매는 이곳은 미궁일까, 미로일까? 둘 다 유사한 공간의 반복으로 최종목적지에 도달할 때까지 갇힌 자는 내내 불안하고 두렵다. 누군가 이건 미궁일 뿐이라고 아무리 알려줘도, 결국 스스로 더듬어 알아내야 한다. 미로든 미궁이든 그 안에 갇혀 있는 한 방황할 수밖에 없다.
 
[사진=톈즈팡(田子坊)]

어쩌면 내가 바라는 건 찬찬히 따라가기만 하면 하나의 답에 도달하게 되는 미궁이 아니라, 설사 헤매다 영영 길을 잃을지라도 갈림길마다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미로가 아닐까? 목숨을 잃을지라도 스스로 선택하고 싶은 것이다. 자유 없는 사랑은 없으므로. 

머무름과 떠남 사이, 
얽히고설킨 골목길에서 좁은 틈으로 보이는 하늘을 오래도록 바라본다.

*인용된 시는 유하의 ‘휘파람새 둥지를 바라보며’

글·사진_ 윤소희 작가

ⓒ 상하이방(http://www.shanghaibang.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2017년 <세상의 중심보다 네 삶의 주인이길 원해>를 출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24년 단편소설 '지금, 정상'으로 소설가 등단. 2006년부터 중국에 거주. ‘책과 함께’라는 커뮤니티를 운영하며 책 소개와 책 나눔을 하고 있다. 전 Bain & Company 컨설턴트, 전 KBS 아나운서. Chicago Booth MBA, 서울대학교 심리학 학사. 저서로는 <세상에 하나뿐인 북 매칭> <산만한 그녀의 색깔 있는 독서> <여백을 채우는 사랑>, 공저로 <소설, 쓰다> 등이 있다. (위챗: @m istydio, 브런치스토리 @yoonsohee0316)
master@shanghaibang.com    [윤소희칼럼 더보기]

플러스광고

[관련기사]

전체의견 수 1

  • 아이콘
    上海sunny 2023.06.27, 19:02:48
    수정 삭제

    좋은 글 감사합니다. 저도 지금 미로 속을 헤매고 있는 거 같아요.
    걷다 가다 갈림길에서 스스로 선택하고 또 새로운 길에 들어서서 해매다 보면 또 다시 갈림길이 나오고….그럼에도 아직 살만합니다. 그 끝에 답이 없다 해도 미로의 각 선택지마다 새로운 만남도 있고,깨달음도 있고, 자유도 있으니까요.

댓글 등록 폼

비밀로 하기

등록
  • 상하이 디즈니랜드, 입장권 13만 원 넘었다 hot 2023.06.28
    25일 동방망(东方网)에 따르면 상하이 디즈니랜드의 성수기 입장권 가격에 대한 중국 소비자들의 반응이 뜨..
  • 단오절 소비 폭발, 中 1억600만명 국내 여행길.. hot 2023.06.27
    코로나19로 침체되었던 관광 시장이 지난 노동절에 이어 단오절 연휴에도 소비 폭발로 이어졌다. 25일 중국 문화관광부에 따르면, 올해 단오절 연휴 동안 중국의 국..
  • [책읽는 상하이 198] 더 해빙 The Havin.. 2023.06.26
    부와 행운을 끌어당기는 힘올해가 시작되면서 읽은 첫 도서가 바로 이 더 해빙이었는데, 처음 저자의 소개를 보고 고개가 갸우뚱했다. 대기업 회장들이 아침부터 저자가..
  • 上海 올 여름 물놀이 고민 끝! hot 2023.06.26
    上海 올 여름 물놀이 고민 끝!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되기 6월 초에는 연일 계속된 비 소식에 마음이 우울했지만 제대로 찌는듯한 더위가 시작되면 매일 물 속에만...
  • 中 전기차 구매세 감면 정책 2027년까지 연장 hot 2023.06.26
    중국 정부가 신에너지차 구매세 감면 정책을 오는 2027년까지 연장한다고 발표했다.21일 전첨망(前瞻网)은 중국 재정부, 세무총국, 공업정보화부가 공동 발표한 ‘..

가장 많이 본 뉴스

종합

  1. 中 무비자 정책에 韩 여행객 몰린다
  2. [무역협회] 미국의 對中 기술 제재가..
  3. 中 12000km 떨어진 곳에서 원격..
  4. 中 하늘 나는 ‘eVTOL’ 상용화에..
  5. 上海 디즈니랜드, 12월 23일부터..
  6. 샤오미, 3분기 매출 17조…역대 최..
  7. 상해흥사단, 과거와 현재의 공존 '난..
  8. 상하이 심플리타이, 줄폐업에 대표 ‘..
  9. 中 올해 명품 매출 18~20% 줄어..
  10. 中, 한국 무비자 체류 기간 15일..

경제

  1. 中 무비자 정책에 韩 여행객 몰린다
  2. 中 12000km 떨어진 곳에서 원격..
  3. 中 하늘 나는 ‘eVTOL’ 상용화에..
  4. 샤오미, 3분기 매출 17조…역대 최..
  5. 中 올해 명품 매출 18~20% 줄어..
  6. 中, 한국 무비자 체류 기간 15일..
  7. 中 세계 최초 폴더블폰 개발사 로우위..
  8. 푸동공항, T3터미널 핵심 공사 시작
  9. 中 연간 택배 물량 사상 최대 ‘15..
  10. 중국 게임 '오공' 게임계 오스카상..

사회

  1. 上海 디즈니랜드, 12월 23일부터..
  2. 상하이 심플리타이, 줄폐업에 대표 ‘..
  3. 유심칩 교체 문자, 진짜일까 피싱일까..
  4. 상해한국상회 회장 선거 12년만에 ‘..
  5. 上海 아파트 상가에 ‘펫 장례식장’..
  6. 초등학생 폭행한 경찰에 中 누리꾼 ‘..
  7. 中 가짜 다운재킷 7만벌 적발… 거위..
  8. 상하이 디즈니랜드, ‘전동 휠체어’..

문화

  1. [책읽는 상하이 259] 사건
  2. [책읽는 상하이 260] 앵무새 죽이..
  3. [신간안내] 상하이희망도서관 2024..
  4. 상하이 북코리아 ‘한강’ 작품 8권..

오피니언

  1. [인물열전 2] 중국 최고의 문장 고..
  2. [무역협회] 미국의 對中 기술 제재가..
  3. [허스토리 in 상하이] 상하이 한인..
  4. 상해흥사단, 과거와 현재의 공존 '난..
  5. [허스토리 in 상하이] 당신은 무엇..
  6. [박물관 리터러시 ②] ‘고려’의 흔..
  7. [허스토리 in 상하이] 떠나요 둘이..
  8. [안나의 상하이 이야기 16] 차가운..
  9. [상하이의 사랑법 19] 사랑은 맞춤..
  10. [무역협회] 기술 강국의 독주? AI..

프리미엄광고

ad

플러스업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