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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페나크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07월 1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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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 : Diary of a Body
67 세 3개월 2일 (1991 년 1월 12일 토요일)
베른 씨네 집에서 돌아오는 길에 이가 부서진 걸 알게 됐다. 틀림없다. 왼쪽 윗어금니다. 혀로 만져보니 과연 모서리가 뾰족해져 있었다. 혀는 가만있지 못하고 자꾸만 모서리를 건드려본다. 입안에 마테호른(알프스산맥에 있는 산)이 들어 있는 꼴이다. 그 이는 이미 신경이 제거되어 있는 상태다. 닭가슴살 호박 그라탕, 블루베리 파이, 기분 좋은 대화, 아무리 생각해도 이가 부러질 만한 일은 없었다. 그렇다면 이거야말로 진정한 노화의 시작인 셈이다. 자연적으로 부서지다니. 손톱, 머리카락, 이, 대퇴골 경부, 이런 부위들은 몸이라는 자루 속에서 부서져 가루가 되어버린다. 몸이라는 극지에서 빙하가 떨어져 나가는 것이다. 굉음도 내지 않고 조용히. 늙는다는 건 이 해빙을 겪어내는 것이다. (p362)
이 책의 2/3 지점에 있는 이 대목을 읽기 전까지는 딱히 이 책을 소개할 생각이 없었다. 동시에 읽고 있던 다른 한 권의 산문집이 밑줄을 좍좍 긋고 머리를 주억거린 빈도가 훨씬 높았기에 마음의 저울추는 진작 그 책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하지만 바로 위의 이 대목이 변수로 작용했고 결국 이 책을 소개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죽음을 이렇게 명쾌하고 아름답게 통찰한 글을 곱씹어 읽다 보니 위로와 함께 묘한 해방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늙는다는 것은 조용히 해빙을 겪어내는 일”, 몸의 부품들이 노화가 되고 고장이 나서 하나씩 몸에서 떨어져 나가듯이, 때가 되면 생명은 통째로 살아있음의 반열에서 빠져나와 죽음의 반열에 합류하게 되는 것이 순리인데, 그 순리를 받아들이는 것이 불편하여 애써 외면했던 것 같다. 이 대목을 읽고 나니 삶과 죽음의 경계가 자연스럽게 연결이 되며 두렵게만 느껴졌던 죽음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지는 것 같았다. 어쩌면 죽음이란 끝이 아니라 빙하가 녹아 바닷물이 되듯 고체 상태에서 액체 상태로 형태를 바꿔서 또 다른 삶의 순환에 동참하는 일일 테니까.
다니엘 페니카(1944 년 출생)의 이 소설은 한 남자가 12세 11개월 18일(1936년 9월 28일)부터 삶의 마지막 순간인 87세 19일(2010년 10월 29일)까지 70여 년간 ‘존재의 장치로서의 몸’에 관해 쓴 일기 형식으로 설정되어 있다. 그리고 배경 설명이 필요한 부분에 듬성듬성 이 일기를 물려줄 딸 리종에게 쓴 편지가 삽입되어 있다.
제목 그대로 “몸의 일기”이기 때문에 주인공 및 등장인물들의 사회적 관계, 직업 등은 전혀 언급되지 않고 오로지 몸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즉 한 남자(하나의 생명)가 소년에서 점점 노화가 되고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서 겪을 수 있는 몸의 상태와 변화를 솔직하게 기록해 놓은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몽정, 자위, 전립선비대증 등 남성으로서 몸을 다룬 부분도 있지만 치통, 악몽, 건망증, 노안, 비염, 똥, 방귀, 오줌, 코피, 코딱지 설태, 수혈, 치매 등등 성별을 불문하고 인간 몸이 보편적으로 겪을 수 있는 현상들을 다룬다.
물론 수개월씩 혹은 몇 년씩 일기를 건너뛴 적도 있다. 모나(아내)를 처음 만나 숨 막힐듯한 사랑을 할 때가 그랬고, 약 부작용으로 사랑하는 손자를 먼저 떠나보냈을 때가 그랬다. 아무래도 너무 뜨거운 행복과 너무 큰 슬픔과 같은 강렬한 감정에 휩싸일 때면 몸은 주목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것 같다. 우리는 사실 몸의 이곳저곳에서 불편함을 호소하기 전까지는 몸이라는 존재를 너무 홀대하고 등한시하는 것 같다.
이 소설을 읽는 동안 저도 저자가 언급하는 키워드에 따라 내 몸의 장기들의 이름을 가만히 불러보며 느껴보려고 했다. 그런데 그 부름이 낯선지 특별히 아픈 부위를 빼고는 무감각해져서 일절 화답하지 않는다. 이 책을 계기로 이제 좀 더 애정 어린 시선으로 섬세하게 내 몸을 관찰하고 느끼고 돌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본격적으로 퇴화가 시작된 몸이니 더욱 관심이 필요할 것이다.
아래에 인상 깊게 읽었던 일부 몇 대목들을 덧붙이니 관심 있는 분들은 맛보시기를 바란다.
25 세 5개월 20일 (1949년 3월 30일 수요일)
치통:
치통. 혹은 통증의 유혹. 자다가 치통 때문에 소스라치게 놀라 깼다. (중략)
충치가 감전을 시킨다. 그건 전기 충격과 매우 흡사한 통증이었다. 감전이 그렇듯 치통도 사람을 지독히 놀라게 한다. 입안에서 아무 생각 없이 꿈꾸고 있던 혀가 난데없이 2~3천 볼트의 전기 충격을 받으면! (중략) 이 통증은 확산되지 않고 엄격히 자기 영역에만 머물러 있다가 금세 약화된다.
33세 6개월 13일 (1957년 4월 23일 화요일)
여드름:
여드름 끝이 검어지는 건 피지가 공기와 접촉하여 산화되기 때문이다. 이 기름진 세포의 잔해는 피부의 보호 하에 있는 동안엔 흠잡을 수 없는 백색이다가, 그것 터뜨리는 순간 까매진다. 노화라는 건 별게 아니라 이 같은 산화작용이 일반화된 것이다. 우리는 녹슨다. 모나(아내)가 내 녹을 벗겨준다.
34세 1개월 25일 (1957년 12월 5일 목요일)
코딱지:
손톱 끝으로 콧구멍 속을 탐사하다가 코딱지가 만져지면 주변을 넓게 후비고 살살 건드려 마침내 끄집어낸다. 이건 코딱지가 끈끈하지 않을 때 얘기다. 그냥 떼어내면 일이 끝난다. 그러나 코딱지가 피자 반죽처럼 말랑말랑하고 쫄깃할 땐, 엄지와 검지 사이에 그걸 놓고 만지작거리는 게 얼마나 재밌는지!
52세 2개월 4일 (1975년 12월 14일 일요일)
건망증:
어제저녁 R네 집에서 식사하던 중 열띤 논쟁이 벌어졌고 난 명실상부하게 좌중을 휘어잡고 있었다. 이제 막 모두의 동의를 얻으려는 찰나…돌연 말문이 막혔다! 기억이 차단된 것이다. 발밑의 함정에 빠진 기분. 그런데도 난 다른 표현을 찾으려 하는 대신, 미련하게도 문제가 된 그 단어만 찾고 있었다. 도둑맞은 주인처럼 분노를 느끼며 기억을 추궁했다. 원래의 단어를 내놓으라고 떼를 썼다!
66세 10개월 23일 (1990년 9월 2일 일요일)
욕망:
방학이 끝났다. 모나와 난 지칠 대로 지쳤다. 문자 그대로 바짝 마른 우물 같다. 해 뜰 때부터 해 질 때까지 아이들이 줄기차게 뿜어내는 에너지는 보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지치게 한다. 쉴 새 없이 소모하는 몸뚱아리들. 반면 두 노인네는 어떻게든 에너지를 아낀다. 그렇게 저장해 놓았던 기력이 단 2주 만에 바닥이 났다. 이 녀석들이 우리 명을 재촉하는군. 내가 모나에게 하소연했다. 그리고 우리 둘은 침대 위에 고꾸라져서 꼼짝 못 하고 누워 있었다. 영원할 것 같던 우리의 욕망은 다 어디로 간 걸까? 우리 아이들 생명의 기원이었던 그 욕망 말이다. 난 이제 작은 누에고치처럼 물렁물렁하고, 모나는 모래바람처럼 건조하다.
72세 9개월 13일 (1996년 7월 23일 화요일)
이명:
이명이 다시 돌아온 게 틀림없다. 언제? 전혀 아는 바 없다. 오늘 밤, 잠 못 들고 있는데, 그 녀석이 쉬익쉬익 소리를 냈다. 난 안심했다. 이런 사소한 병들은 처음 생겼을 땐 엄청나게 겁을 주지만, 점차 길 친구보다도 가까운 사이가 되고 결국 우리 자신이 되어버린다. 예전엔 동네 사람들 사이에서 질병의 이름으로 상대를 부르는 게 극히 자연스러웠다. 꼽추, 벙어리, 대머리, 말더듬이. 어린 시절 우리 반에도 그런 애들이 있었다. 뚱뚱이, 사팔뜨기, 귀머거리, 절름발이…. 중세에는 이름 흠들을 단순히 특성이라 여기고 가족성으로 불렀다.
86세 2개월 28일 (2010년 1월 7일 목요일)
손자를 앞세우고 7년 뒤:
그레구아르(손자)가 죽은 후론 이 일기장을 열어보지 않았다. 그러니까 7년 동안이다. 그사이 내 몸은 나와 상관없는 게 되어버렸다. (중략) 난 이제 몸에 이상한 일이 생겨도 놀라지도 않는다. 점점 짧아지는 보폭, 몸을 일으킬 때의 현기증, 굳어버린 무릎, 터지는 정맥, 또다시 비대해진 전립선, 쉰 목소리, 백내장 수술, 이명, 광시증, 자꾸만 헐어 달걀노른자처럼 돼 버린 입술 가장자리, 바지 입을 때의 어설픈 동작, 자꾸만 잊고 잠그질 않는 바지 앞 지퍼, 갑작스러운 피곤, 점점 잦아지더니 이젠 일상이 되어버린 낮잠. 내 몸과 나는 서로 상관없는 동거인으로서, 인생이라는 임대차 계약의 마지막 기간을 살아가고 있다. 양쪽 다 집을 돌볼 생각을 하지 않지만, 이런 식으로 사는 것도 참 편안하고 좋다.
86세 11개월 4일 (2010년 9월 14일 화요일)
노화:
끝이 가까워 올수록 하고 싶은 말은 많아지는데 기운은 점점 달린다. 매 순간 몸이 달라진다. 악화되는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기능은 느려진다. 가속과 감속…. 팽이처럼 돌던 동전이 이제 그만 돌려고 하는 것 같다.
87세 19일 (2010년 10월 29일 금요일)
마지막 일기:
그래, 나의 도도, 이젠 가야 할 때가 된 것 같구나. 겁먹지 마, 너도 데려가 줄게.
(주: 도도는 주인공이 어린 시절 만들어냈던 가상의 동생)
류란
외국에 살다 보니 필요한 책들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 이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자 책벼룩시장방이 위챗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그리고 2017년 9월부터 한 주도 빼놓지 않고 화요일마다 책 소개 릴레이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아이의 엄마로, 문화의 소비자로만 사는 데 머무르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온 여성들의 이야기를 상하이 교민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