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사 시간은 늘 지루했고, 꾸벅꾸벅 졸기 딱 좋은 시간이었다. 외워야 할 것들은 왜 이리 많은지. 숫자에 취약한 나는 연도만 봐도 경기를 일으켰고, 벼락치기로 일단 머릿속에 집어넣었다가 시험이 끝나는 동시에 허공으로 날려버렸다. 시험을 위한 암기의 역사 공부를 마치고 나서는 자발적으로 역사에 관심을 두기는 어려웠다.
상하이에 와서 대한민국임시정부 유적지를 여러 번 방문하고, 독립운동가에 대해 여기저기서 듣게 되면서 외면했던 우리나라 역사에 대해 관심을 두게 되었다. 오히려 외국에 있으니 더 찾게 되고, 받아들이는 마음도 달랐다. 치욕의 역사 속에 좌절하지 않고, 그때마다 바로잡으려는 백성들의 목숨 건 투쟁에 감동하고 감사하고, 새삼 한국인인 것을 자랑스러워했다. 한국사 책을 찾아 읽었고, 관련 영화도 일부러 봤다.
우리 아이들도 나와 같기를 바랐다. 아이들 학교에서는 세계사와 미국사 중심으로 가르치고, 우리나라 역사에 대해서는 6.25 전쟁에 대해 간략하게 언급하는 것이 다였다. 아이들이 어느 나라에서 정착하고 살지는 모르지만,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은 잃지 말기를 바랐다. 우리나라 역사 만화책이나 쉽게 쓰인 역사책을 사서 부지런히 날랐다. 책장 가득 꽂아두고 자연스럽게 역사를 접했으면 했다. 내 기대와는 달리 아이들은 우리나라 역사에 통 흥미를 갖지 않았다. 오히려 미국 역대 대통령들과 업적은 줄줄 외우고 미국 대통령 선거에 관해서는 관심을 가지면서, 우리나라 대통령이 누군지는 관심이 없었다. 역사 시간에 몇 번의 탄핵을 가십거리로 다룰 때마다 친구들이 의아해하고 비웃었다고 속상해했다. 한국 방문 때마다 거리에 걸려있는 상대 정당과 후보자를 비방하는 플래카드를 보면서 한국 정치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도 커졌다. 한국 뉴스를 볼 때마다 늘 좋은 말이 안 나오는 부모의 모습도 한 몫 했을까. 아이들은 차라리 외면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사진=영화 ‘하얼빈’]
이번 겨울방학 동안 한국을 방문하면서 둘째 아이가 사촌과 함께 서울 시청 앞 스케이트 장을 다녀왔다. 그곳에서 태극기 부대를 만난 모양이었다.
“다 태극기를 들고 있었는데 성조기는 왜 들고 있는 거야?”나도 알고 싶었다. 탄핵 찬반을 떠나 어쨌든 나라의 앞날을 걱정해 강추위를 뚫고 거리에 나온 분들 손에 왜 성조기도 들려 있어야 하는 것인지.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 나도 막막했다.
한국에 머물면서 아이들과 꼭 함께하고 싶은 일이 있었다. 영화 ‘하얼빈’을 관람하는 것이었다. 둘째 아이는 ‘하얼빈’보다 ‘위키드’를 보고 싶다고 했고, 결국 두 편의 영화를 모두 보는 것으로 협상을 했다(세 시간짜리 ‘위키드’를 보는 것은 내겐 꽤 큰 양보였다). 역시나 영화를 보며 벅차오르는 감동에 눈물 바람을 한 건 나 혼자였다. 아이들은 2년 전에 본 ‘영웅’을 기억하며 그 영화도 ‘안중근 의사’의 이야기가 아니었냐고 했다. 나만큼 깊은 감동을 받지는 않았더라도 ‘하얼빈’과 ‘영웅’의 주인공이 같다는 것을 기억해 낸 것만도 어디냐며 위안했다.
“조선이란 나라는 수백 년간 어리석은 왕과 부패한 유생들이 지배해 온 나라지만 저 나라 백성들이 제일 골칫거리다. 받은 것도 없으면서 국난이 있을 때마다 이상한 힘을 발휘한다.”
영화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가 한 대사이다. 이 대목에서 응원봉들의 물결이 떠오르며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받은 것도 없으면서 국난 때마다 이상한 힘을 발휘하는 그 정신과 행동력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지 않은가. 언젠가는 우리 아이들도 ‘이상한 힘’이 필요할 때 기꺼이 동참하여 역사 속에서 한 몫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런 날을 위해 나는 포기하지 않고 슬그머니 아이 책상 위에 <역사의 쓸모>를 올려놓는다.
올리브나무(littlepool@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