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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외선거 체험문 공모 수상작-최우수작/김혜경]

[2012-10-03, 00:19:14] 상하이저널
아이들과 함께 한 16년만의 투표

 
16세 된 큰 아이, 13세 둘째, 9세 셋째를 데리고 영사관에 들어섰다. 아이들은 태어나 처음 보는 투표 장면이 신기한 듯 자원 봉사자 분들이 주시는 떡과 비타500을 받아 들고 쳐다 보고 있었다. 생각보다 너무 쉽게 끝나 허탈한지 큰 아이가 대뜸, “이게 끝이에요?”하고 묻는다.

초등학교 사회 시간에 국회가 하는 일, 정부가 하는 일, 지방자치단체가 하는 일을 배운 위의 두 아이는 선거를 거창하게 생각했나 보다. 우리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우리가 마지막 날 참여 했음에도 투표하는 이들이 정말 뜸해 보였다.

97년 결혼과 동시에 신혼 여행에서 돌아오자 마자 중국에서 결혼 생활을 시작해 지금에 이르렀다. 나의 대학 시절은 학생 운동이 한창인 시절이었고 지금은 영화에서나 봄직한 최루탄과 함께 한 캠퍼스 시절이었다. 남편과 건축학개론을 보면서 그 시절이 문득 아련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런 우리 부부가 1년이 조금 넘어서 해외에서 IMF를 맞았다. 런민비 1원에 한화 가치가 100원이던 시절에 중국에 와서 자고 일어나니 200원을 훌쩍 넘어가는 경험을 하였다. 그렇다 우리 부부는 소위 386세대다.

중국에 있는 16년의 기간 동안 정말 열심히 살았다. 그 사이 세 분의 대통령이 선출되는 것을 우리는 모두 인터넷으로, TV로 가슴 졸이며 지켜 보았다. 해외에 있어서 선거를 할 수 없지만 우리의 정치적 태생 배경이 정치에 무관심할 수 없는 386 세대인 것이 첫번째 이유요, IMF를 겪어 본 세대로서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게 그런가 보다, 정말 대한민국을 잘 이끌어 줄 리더가 뽑혔으면 하는 간절한 염원으로, 그리고 그것은 선거를 할 수 없기 때문에 더 큰 간절함이었는지도 모른다. 해외에 있으면 다 애국자가 된다고 했던가? 우리가 그랬을 수도 있다.

이 사람이라면 그래도 더 잘 할 수 있지 않을까? 비록 우리가 투표는 못할지라도 같은 마음으로 내가 응원하는 이가 뽑히면 왜 그리 뿌듯했던지. 그 때처럼 스스로 나 한 사람의 투표권을 간절히 소원했던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리고 드디어 2012년 재외국민 투표를 할 수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우리 부부 모두 참으로 감격스러웠다. 많이 오버스러울 수 있지만 16년을 이 곳에서 지켜 보기만 했던 이로써 이것은 솔직한 마음이었다. 내 스스로 행사할 수 있는 나의 권리를 16년 만에 갖게 되었으니….

재외국민 투표를 위해 정말 많은 비용이 지출되고, 너무나 많은 이들이 수고하는 것을 지켜보며, 한 장의 참정권의 소중함을 더욱 깊이 되새기게 되었던 것 같다. 상하이는 축복 받은 곳이다. 근처의 장쑤성, 저장성에 계신 분들은 투표를 위해 화동에 하나뿐인 상하이까지 오는 수고를 해야 하지만 상하이는 바로 지척에 영사관이 있다. 더불어 꽤나 빠르게 재외국민 투표를 적극적으로 공고하고, 교민 밀집 지역을 중심으로 등록을 쉽게 해 주는 수고를 아끼지 않으므로 나처럼 게으른 이도 쉽게 등록하고 투표할 수 있었다.

우리 주위에 친하게 지내는 지인 가족이 있다. 투표한다고 뭐가 달라지겠느냐며 마지막 날인데도 투표를 하러 안 간단다. 다행히도 재외국민 투표는 접수해 놓은 듯 하여 남편이 차를 몰고 직접 태우고 가는 정성을 보였다. 누구에게 투표했는지 나는 모르지만 덕분에 모두의 수고와 막대한 비용이 들어간 첫 재외국민 투표를 헛되지 않게 한 두 표를 볼 수 있었다.

해외에서 살아가는 게 부모의 선택이었던 만큼 자녀들에게 최대한 한국인으로서 정체성을 심어 주고, 모국어 교육에 우선을 두는 게 우리 부부의 교육 방침이다. 재외국민 투표는 우리 자녀들에게 좋은 교육의 장이었다. 해외에서 그렇잖아도 한국 교과서의 사회과목 내용과 완전히 다른 체제와 자연 환경, 지리 환경을 배우며 이론과 실제가 다른 아이들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선거를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우리 나라의 기본 민주주의 체제, 지방 자치단체의 의미 등 평소 생소했던 말들을 연관지어 설명하며 직접 경험하는 몇 년에 한 번 있을 법한 체험 학습장이었다. 백마디 말보다 한 번의 경험이라는 말처럼 사회 교과서에서 이론으로만 다가왔던 어려웠던 내용들이 걸어가 부모가 투표하는 과정을 지켜 보는 것만으로도 살아 있는 교육장이었음은 당연한 일이다. 그 자체만으로도 우리 가족에겐 재외국민 투표가 좋은 선물이었다. 그 날 우리 세 아이들의 일기는 단연 재외국민 투표가 장식했다.

올해 있었던 일인데 과거로 어느덧 한참 전에 있었던 일인양 기억을 더듬는 날 보게 된다. 상하이 여름보다 나를 더욱 들뜨게 했던 올림픽을 지켜 보면서 박태환 선수가 실격을 당하던 순간이 기억난다. 믿을 수가 없었다. 다시 경기를 할 수 있게 되고 은메달을 따는 드라마틱한 과정을 지켜보며 그 순간 대한민국 국민들은 이 선수로 인해 하나가 되었을 것이다. 이후로 대한민국 선수들을 응원하며 나는 그 하나의 대열에 열심히도 함께 했다. 최근 독도에 대해 망언을 일삼는 일본의 정치인들을 보면서 함께 울분을 느끼는 나는 분명 한국인이 맞나 보다.

2012년을 열며 나는 해외 생활 16년만에 국민윤리에서 배운 나의 참정권을 행사하는 감격적인 기회를 가졌다. 2012년 12월 다시 이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려 한다. 멀리서지만 나는 다시 이 투표를 통해 대한민국 국민들과 하나가 되는 시간을 맞을 것이다. 우리 세 아이들이 함께 동행할 것이다. 이 아이들 또한 미래의 대한민국이기에….

▷김혜경(rennyh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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