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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스토리 in 상하이] 삼대(三代)가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법

[2025-03-11, 17:04:37] 상하이저널
40분 전에 도착하기로 한 음식이 아직도 오지 않았다고 친정엄마가 보이스 톡을 하셨다. 부랴부랴 배달 앱을 열어 확인해 보니, 배달 기사를 찾지 못해 배달이 지연되고 있다는 알림이 와 있었다. 한국이었다면 주저 없이 가게로 전화를 했을 텐데. 중국에서 걸려 오는 낯선 번호는 보이스 피싱일까 봐 받지 않는 경우가 많다. 앱 내 고객센터를 눌러보니 챗봇이 응대하며, 급한 경우 가게로 직접 문의하라고 한다. 역시나 가게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

몇 년 전부터 한국에 계신 양가 부모님께 배달 앱을 이용해 식료품이나 음식을 주문해 보내 드린다. 처음엔 번거롭게 뭘 그렇게까지 하냐고 하시던 부모님들도 이제는 먼저 도움을 요청하시곤 한다. 세상 참 편해졌다고 하신다. 하지만 여전히 나의 부모님들은 종이 신문을 보시고, 장보기나 은행 업무에 직접 발품을 파신다. 집 근처 단골 식당이 키오스크로 주문을 받기 시작하자 발길을 끊으셨다. 네 분 모두 스마트폰을 사용하시지만, 그 용도는 전화 통화나 멀리 있는 자식들과 영상통화, 유튜브 영상 시청, 뉴스 검색 정도일 뿐이다. 스마트폰에 신용카드만 연결해 둬도 훨씬 많은 것을 하실 수 있을 텐데, 원치를 않으신다. 몸이 좀 귀찮기는 해도 대면 거래를 해야 안전하다고 느끼시는 세대다. 편리해진 세상이라지만, 그분들의 일상에는 그 편리함이 깊이 스며들지 못했다.

부모님들께는 스마트한 딸이고 며느리지만, 우리 아이들 눈에는 나도 디지털 문맹이다. 원체도 기계치이지만, 눈과 손에 익숙한 것이 편하고 좋다. 아이들은 스마트 폰의 음성 비서를 활용하고, 챗GPT를 능숙하게 다룬다. 딥시크(DeepSeek)까지 비교하며 사용할 정도다. 나도 챗GPT의 도움을 좀 받아야지 생각하면서도, 무의식 중에 익숙한 녹색창을 열어 하나하나 검색해서 정보를 모은다. 새로 산 노트북에는 수많은 기능이 내장되어 있지만, 늘 사용하는 몇 개의 프로그램만 다룰 줄 안다. 가이드북도 따로 없어 온라인으로 찾아봐야 하는데, 그 일이 참 귀찮다. 남편은 내 노트북을 ‘드라마 시청용’이라고 놀린다. 아이들과 같은 브랜드의 스마트폰과 노트북을 사용하지만, 나는 여전히 2000년대 초반 유저에 머물러 있다. 딱 그만큼이 내가 소화할 수 있는 정도인 것 같다. 

침침해진 눈으로 식당에서 QR 코드를 스캔해 주문하는 것도 영 불편하다. 종업원이 커다란 메뉴판을 내밀면 그게 왜 그렇게 반가운지. 책도 전자책보다는 종이책으로 읽어야 비로소 읽은 것 같다. 값이 더 비싸고, 무겁고, 이사할 때 짐만 되는 걸 알지만, 수 십년 간의 습관을 바꾸는 것이 쉽지 않다. 

우여곡절의 음식은 배달 예상 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늦게 도착했다. 차갑게 식어왔을 줄 알았는데, 적당히 따뜻하게 유지돼서 왔다고 한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나도 그제서야 마음을 놓는다. 허기를 못 참으시는 친정아빠가 얼마나 언짢아하고 계실지 상상이 되어 기다리는 내내 안절부절이었다. 스마트한 시대는 가끔씩 이렇게 삐걱거리며 당황스러운 상황을 만든다.

엄마가 산책 겸 한 번씩 다녀오시는 친정집 근처 대형마트가 곧 문을 닫는다고 한다. 온라인 주문이 늘어나면서 오프라인 매장을 줄이려는 모양이다. 더 많은 이익만 추구하는 세상이 비정하게 느껴진다. 삶의 다양성은 통하지 않는다. 게다가 요즘 디지털 기술은 개발자와 소수 얼리 어답터를 위해 발전하는 것만 같다. 인간의 삶에 맞추는 기술이 아닌 기술의 발전 속도에 인간이 맞춰 나가야 하는 세상이다. 나 같은 사람은 그 속도와 범위를 따라가기 버거워 서글퍼진다.

그나저나, 이제 엄마는 어디에서 장을 보셔야 하나.

올리브나무(littlepoo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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