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의 미래>를 읽고
2009년은 우리 시대 거인들이 사라진 해로 기억될 것이다. 김수환 추기경, 김대중 전 대통령, 노무현 전 대통령 등…. 올해 우리 곁을 떠난 많은 사람들 중 가장 많은 사람들이 가슴 아파한 사람은 아마 노무현 전 대통령이 아닐까. 싶다.
토요일 딸 아이 학원을 바래다주고 근처 한국서점에서 <진보의 미래>라는 책으로 오랜만에 그 분을 떠올렸다. ‘다음세대를 위한 민주주의 교과서’라는 부제와 함께 진열대에 올라온 책. 인권 변호사로, 국회의원으로, 대통령으로 한국 정치사의 중요한 역할을 맡아왔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퇴임 후 참모들과 진보적 학자들과 함께 한국사회의 미래를 고민해 온 내용을 정리한 책이다.
앞 표지 몇 장을 뒤적이며 자신의 임기 중 잘못한 부분에 대해 솔직히 이야기하는 모습에서 그가 고민하는 한국 사회의 모습, 진보의 미래는 어떤 것인지 궁금한 마음에 책을 읽게 됐다. 책을 쓴 동기 부분부터 공감이 많이 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민주주의든 진보든 국민이 생각하는 것만큼 간다고 말한다.
결국 사회가 변하기 위해서는 국민들의 의식이 변해야하는데 국민 의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미디어라는 것. 그러나 미디어에서 진보진영은 절대적 열세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미디어 역시 자본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인터넷에 희망을 걸었지만 내용이 부실하는 등 한계가 존재한다. 결국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결론은 좋은 책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이 책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우리 아이들이 성공할 수 있는가?’, ‘행복한 나라를 위한 국가의 역할은 무엇인가?’, ‘진보와 보수 논쟁과 국가의 역할’, ‘진보의 역사를 밀고 가는 주체로서의 시민’ 등 여러 가지 화두를 던지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있다. 또한 진보진영에서 논쟁이 됐던 김대중 정권, 노무현 정권 10년은 진보주의 정권이었나에 대해서도 자신의 고민을 이야기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마지막으로 연구하던 진보주의, 국가의 역할 등은 보다 좋은 사회를 꿈꾸는 사람들이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았다. 함께 연구했던 학자들을 중심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던진 질문들에 대한 책이 나온다고 하니 기대된다.
외국에 살면서, 내년 마흔을 향하면서, 내 나라인 한국을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내 모습에 가끔씩 놀라곤 한다. 얼마 전 고등학교 동창녀석 하나가 마흔이면 하고 싶은 여러 계획을 얘기하면서 그 중 “이해관계가 맞는 정당에 가입해 일정액을 후원하는 진성당원 되기”라고 말해 자극을 받은 적이 있다. “내 배 부르고 등 따습기만 하면 최고일지 모르지만 그래도 희망을 이야기하기엔 너무 추워”라는 그 친구의 말. 세계 경제중심 상하이에서 ‘진보’와 ‘희망’을 얘기하는 것이 어색해졌지만, 이 책이 나의 겨울잠을 깨운다.
▷권이준(cadme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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