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부쩍 눈가에 진물이 생기기 시작했다.
자꾸만 늘어가는 눈가의 주름에 신경이 쓰여 가급적이면 눈가 가까이엔 손을 안 가져가려 애를 쓰긴 하지만, 간지러움에 못이겨 어쩔 수 없는 본능으로 눈 끝을 연신 문질러대고야 만다.
그 옛날, 엄마가 손수건을 필수품인 양, 손에 꼭 쥐고 다니시며 연신 눈 끝을 닦아대던 모습이 홀연히 떠오른다.
한 손으론 안경을 들어올리고, 또다른 한 손으론 행여 눈물로 고우신 얼굴에 얼룩 자국이라도 생겨, 남들 보기에 창피하실까봐 조심스레 손수건으로 눈가를 몰래 몰래 살살 누르던 모습이.
그리곤 혼잣말로 ‘나이가 들어가니 정말 흉하고도 성가신 일도 많네’ 중얼거리며 푸념하셨었는데 어느덧 세월이 흘러 내가 예전의 그 엄마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
뜯어진 실밥을 꿰매느라 바늘귀에 실을 꿸 때면 보이지도 않는, 마냥 작기만 한 구멍에 실을 넣느라 요즘말로 “짱~나” 그 자체다.
머리에 쥐가 날 지경이다. 억지로 그야말로 어쩌다 감(?)으로 끼워질때도 있지만, 이런 성공률이 날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어, 끝내는 돋보기 안경을 어쩔 수 없이 곁에 두게 되었다.
오늘도 아버진 전화목소리가 잘 안들리신다고 역정 아닌 역정을 내신다.
어떨 땐 조금 늦은 시간에 통화를 하게 되면 이미 주무실 준비에 틀니까지 뺀 상태라 이빨 사이로 바람이 들어 새어나가는 듯한 발음이 듣기에 약간은 우습기도 하다.
이 모습 또한 웃지 못할 웃어서는 안되는 몇 십 년 후의 나의 모습임에도 아직은 조금 웃기다.
전자제품도 마찬가지이다. 아버진 자꾸 간단한 것만 찾으신다. 괜시리 복잡하게 만들어서 가격만 비싸고 사용하기엔 불편해죽겠노라 하시면서. 왠 쓸데 없는 기능이 이렇게도 많냐며 투덜거리신다.
‘다 필요 한 거에요. 알면 얼마나 편리하다구요.’ 아버지 앞에서 큰소리 한번 쳐보긴 하지만 나도 마찬가지이다. 나 또한 기계치가 되어가고 있다.
조금만 복잡해져도 두려움이 앞서고, 기존의 것과 다르면 당황하게 되고, 행여 잘못사용해서 비싼 돈 들여 구입해놓고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망칠까봐 걱정이 앞서, 큰아이가 오길 기다리게 된다.
큰아인 ‘우리엄마가 왜 이걸 못하실까?’ 이해가 안된다는 표정으로 큰눈을 깜빡이며 잠깐 의아해하다가 신기하게도 술술 해결해준다. 그럼 난 또 잠깐 안도하게 된다. 야~, 그래도 젊은 세대인 네가 있어 다행이다 하면서.
난 오늘, 눈가 진물의 따끔거림의 아픔으로, 눈가를 비벼대고 있고. 아버진 전화기 저편에서의 윙윙거리는 것 같기만한 딸의 목소리 때문에 눈가가 절로 찌푸려진다 하시고.
이웃 언니들은, 한국으로 대학가는 딸을 떠나보내야 하는 이별의 아픔으로 눈가를 문지르고 있고. 먼 외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아이들을 그리워하면서도 지금 당장 손잡아 줄 수도 안아 줄 수도 없는 아픔에, 눈가에 자꾸 손이 간다고 하고.
우린 오늘도 어쩔수 없는 갖가지 아픔으로 눈가에 손을 대고 있다.
우리들 삶의 자국을 만들어가고 있다.
▷아침햇살(sha_bea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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