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이라고 말하는 그 순간까지 진정으로 살아있어라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어머니, 이제 편안해지실 거에요.”
진통제도 더 이상 듣지 않아 밤새 고통을 겪으신 시어머님은 병원으로 가신 직후 혼수상태에 빠지셨다. 이 말은 그만 어머님과 나눈 마지막이 되고 말았다.
반년 남짓한 마지막 시간 동안 가족 중 그 누구도 죽음을 언급하지 않았고 그저 변함없는 일상인 듯 어머님께 회복에 대한 희망을 드리는 것만이 최선이라는 데 암묵적인 동의를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곤 그저 다가오는 ‘때’를 무력하게 기다리고 있었을 뿐 달리 무엇을 하지도 못했다.
하지만 더 이상 말 한마디 나눌 수 없는 어머님 곁에 앉아 지난 일들을 생각하자니 평생 자식들의 행복을 위해 살아온 그 분에게 당신으로 인해 참으로 행복했노라고, 참으로 감사하고 사랑한다고 안아드렸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은 마음에 가슴이 미어졌다.
그렇게 어머님이 가신지 어느덧 십 년이 되었지만 미진했던 이별에 대한 아쉬움은 갈수록 커지는 것 같다.
잘 해드리지 못한 것뿐 아니라 한 여자로, 인간으로 그 분이 가졌을 꿈과 행복은 무엇이었을까, 시시각각 기운이 다하는 그 시간에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무엇을 하고 싶으셨을까. 다시 함께 나눌 수 없는 그 시간들이 너무 아쉽다.
어머님의 죽음은 내게 인간답게 죽는다는 것과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마지막 이별에 대해 깊은 물음을 던져주었다.
언젠가 나에게도 닥칠 그때를 생각해본다. 다행히도 내게 삶을 마무리할 시간들이 주어진다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죽음에 대한 연구로 유명한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어떻게 죽느냐는 것은 삶을 의미있게 완성하는 중요한 과제이며 인간은 마땅히 그것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이 책의 주인공들이나 그가 만났던 많은 시한부 환자들은 실제로 그저 죽는 날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진정으로 살아있었다’라고 할 수 있는 삶을 살며 내면에 쌓여있는 분노와 수치, 죄책에서 벗어나 평화롭게, 그리고 용기있게 죽음을 받아들임으로써 그들의 마지막 시간에 함께 했던 가족과 친구들의 삶까지 더욱 성숙하고 풍요롭게 해주었다.
“내게 남아있는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언젠가 우리 모두가 품게 될 이 물음에 한 아름다운 주인공은 이렇게 말해 주었다.
“남김없이 살아버려라!” 그래, 이렇게 살아있을 때 나와 함께 사라져가는 모든 것들을 사랑하며 살고 싶다.
마지막 그 순간까지 후회하지 않고 남김없이 살아버리고 싶다.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지막 시간을 의미있게 지켜주고 싶다. 죽음이 우리 안에서 커져가는 삶의 일부임을 잊지 않으며….
▷구름에 실린 달팽이(geon94@hanmail.net)
ⓒ 상하이저널(http://www.shanghaibang.net),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