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후, 자전거를 타고 집을 나섰다. 딸아이 방에 작은 수납함도 사고, 답답한 마음에 바람도 쐴겸 나선 나들이였다. 봄바람 치고는 제법 매서워 달리는 속도만큼 모자를 눌러 쓰게 만들었다. 가구 시장을 두 바퀴나 돌았건만 눈에 들어 오는 것이 없어 돌아서야 했는데 길가에 과일을 파는 아저씨가 눈에 들어 왔다.
나도 모르게 멈춰 서서, 파인 애플을 깎아 달라 부탁하고 사과와 작은 망고들을 골랐다. 큰 마켓보다 의외로 싼 가격을 부르는 아저씨! 그 마음이 고마워 아저씨를 다시 한번 보게 되었다. 두 손등은 다 갈라지고, 얼마나 많이 텄는지…. 그간의 살아온 삶의 흔적들을 느끼게 한다. 돈을 내며 간식으로 드시라고 작은 초콜릿 하나를 건네니, 귤과 낑깡을 덤으로 얹어 주셨다.
한참을 달려 동네 초등학교를 지나쳐 오는데, 그야말로 뒷모습이 근사한 한 부인이 한 눈에 쏘옥~ 보랏빛 짧은 밍크! 순간 "와아~ 저 부인은 무슨 복을 타고 났길래 저렇게 럭셔리(?) 할까?" 잠시나마 이런 생각이 내 머리를 스쳐 지나가며, 나도 이젠 돈을 밝히는 아줌마가 다 되었나 보다 하며 저절로 쓴 웃음이 나왔다.
사실 요즈음 이웃 일본의 지진 소식으로 맘이 무거웠던 터였다. 2004년으로 기억되는 인도네시아의 쓰나미때는 2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사를 당했을 때도 마치 강 건너 이웃 마을 이야기로 여겨졌었는데 이번에는 달랐다. 맘도 편치 않았고 하루 아침에 할아버지, 할머니, 부모를 잃은 9살 난 소년의 모습이 자꾸만 떠올랐다. 이제 그 아이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하루 아침에 우리의 친구가 아닌(물론 가끔 겁을 줄 정도로 성은 냈지만) 재난이라는 괴물로 변해 버린 지진과 쓰나미! 게다가 원전의 위험까지! 이 일은 내가 아주 잠시나마 아들 학비에 대한 걱정을 잊을 정도로 충격이었다. 그래도 참으로 다행인 것은 우리로서는 감탄할 수 밖에 없는 일본 국민의 성숙한 태도였다. 역사적인 관계 때문에 묵은 감정은 있지만, 그럼에도 감탄할 수밖에 없었고, 일본 국민 또한 우리 국민들의 따뜻한 정에 고마워 한다는 소식이 들려 온다.
이제는 정말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님을 절실히 느껴진다. 여전히 돈이 최고라고 외치는 사람도 많고, 끝도 보이지 않은 명예를 위해 죽을 힘을 다하는 사람도 많지만, 남을 위해 자신의 것을 나눌 줄 아는 사람도 많다는 사실에 조금은 위로가 되는 요즈음이다.
3월 한달!
정말 상하이도, 이웃 일본도 아픈 소식으로 심란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남아 있는 우리는 그저 감사함으로, 겸허함으로 하루 하루를 열심히 살아 내어야 할 것이다.
▷진리앤(truthann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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