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사는 홍메이루는 봄에 특히 아름답다. 가로수에 꽃이 피는 5월이면 깊은 향기로움에 붉은 매화 길은 아니지만 이름값을 하는 느낌이 들었다. 조용하고 편안한 일상이 행복하다 싶을 때 일은 일어나나 보다. 지난 초겨울에 결혼한 이후로 소식이 뜸했던 막내 여동생이 보내온 메일 한 통은 억장이 무너지는 충격이었다. 이제 아기 소식이 있을까. 기대하고 열어본 메일에 동생은 ‘유방암’이라고 적었다. 지난 1월에 발견했고 수술도 했고 항암치료 중이라는 말에, 말도 막히고 코도 막히고 귀도 막히고…. 한마디로 기가 막혔다.
상하이에서 가까이 지내는 지인이 유방암으로 한국과 상하이를 오가며 수술을 받고 항암치료를 하는 모습을 지켜봐오던 차인데..동생의 아픔은 내 살이 찢어지듯이 더 아팠다.
5개월 동안 부모님은 멀리 떨어져 사는 큰딸이 걱정할까 전화를 할 때마다 아무 일이 없는 듯 일상을 살아내셨고, ‘건강이 최고다, 힘들어도 꼭 건강은 챙겨라’라며 격려해주시던 말씀은 그냥 지나치는 얘기가 아녔던 것이다. 동생이 아플 즈음 첫아기와 둘째 아기를 각각 출산한 두 며느리의 산후조리와 아기돌보기에 영향을 줄까 부모님은 모두에게 비밀로 하셨다고 한다. 아무 일 없는 듯 주변 가족들을 챙기고 상하이 사는 딸에게 안부전화를 걸어 외손녀의 일상을 듣고 즐거워하시는 헐리우드 액션을 일삼던 엄마는 밤마다 베개가 젖도록 우시며 막내딸의 아픔을 같이 이겨내는 중이었던 것이다.
동생과 통화하면서 아무 일 없듯이 서로를 위로했다. “아무리 암이어도 너의 지랄맞은 성격을 맛보면 담박에 도망갈 거야, 기운 내”라고. 아픈 동생을 여전하게 대하려 노력했지만 눈물은 옷이 다 젖도록 흘렀다. 다행히 유방암 1기여서 수술도 잘되고 항암치료도 무리없이 진행이 됐지만 동생은 많이 아파하고 힘들어했다. “암1기도 이렇게 힘든데 2기 3기이상인 분들은 어찌 이겨내는지 모르겠다”는 동생의 말에 병마와 싸우는 지인이 새롭게 보였다. 지인은 수술을 하고 나서야 유방암 3기인걸 알았다고 한다.
참 대단한 게 항암주사를 맞고 몸이 괜찮아지면 상하이에 있는 가족들이 보고 싶어 비행기를 타고 집으로 오고, 집에 있는 동안에도 가족이 먹을 반찬이며 국거리를 장만하느라 편히 쉬는 시간도 없을 정도로 정성을 들였다. 성인 4명중에 1명이 걸린다는 흔한 ‘암’이라지만 탐스럽던 머리카락이 다 빠지고 독한 약에 얼굴이 상하는 모습을 보니 동생모습과 겹쳐 만나고 돌아오면 몰래 눈물을 훔치며 내 마음도 무척이나 아팠다. ‘항암치료가 끝나는 여름만 오면 새롭게 태어나는 인생이 되는 거니 기운내자’는 말은 저 스스로에게도, 지인에게도, 동생에게도 해주고 싶은 말이었던 셈이다.
기다리던 여름이 되었다. 지인의 수줍게 올라온 머리카락이 그리 반가울 수가 없었다. 한국에 있는 동생도 지인만큼 머리카락이 올라 온 사진을 메일로 보내 왔다. 동생은 이제 새댁의 위치로 돌아가 집안일을 익히고 아기를 가질 준비를 하고 있다. 그리고 힘든 과정을 덤덤히 이겨낸 지인은 고3 수험생인 딸의 뒷바라지에 여념이 없다. 딸의 아픔을 일상에서 덤덤히 이겨내시던 엄마도, 아픈 몸으로 가족 생각에 한국과 상하이를 오가며 투병생활을 한 지인도, 신혼에 큰 고통을 말없이 이겨내고 엄마 될 준비로 설레어 하는 동생도 앞으론 건강한 행복에 바쁘길 바란다. 낮 기온 35도가 넘는 더운 날이지만 지인과 만나 함께 걸은 홍메이루도 참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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