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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이야기] 이별준비

[2012-09-26, 09:56:47] 상하이저널
이번 국경절이 지나면 딸과 잠시 이별을 하게 된다. 25여 년간을 같은 공간에서 살아왔는데 떠난다 생각하니 서운함이 먼저 마음 한 구석에 자리잡으려 한다. 이 곳 상하이에서 대학을 다니느라 그 동안 기숙사에서 살긴 했어도 적어도 1주일에 한번씩은 집으로 왔었고, 지난 겨울에 거의 5년만에 집으로 돌어 왔다. 밤늦게 공부하는 습관에 새벽에 잠들어 아침에 일어나지 않아 날 참 많이도 짱~ 나게 했다.

아침을 먹느니 차라리 좀 더 자겠다며 침대를 고집하는 딸아이가 한편으론 안쓰럽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론 생활 습관이 영 나랑 맞지 않아 잔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같이 살다 보니 모른 척 하기가 쉽지 않았다. 딸아이는 내버려두면 알아서 하는데 엄마가 자꾸 간섭하고 잔소리 하는걸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눈길을 계속 내게 보내고….

이렇듯, 우리는 서로에게 ‘빨리 떠나야지…’, ‘빨리 떠나 보내야지…’를 수없이 되뇌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열심히 짐 정리 하는 딸아이 모습에 왠지모를 겉잡을 수 없을 것 같은 외로움에 온 몸의 힘이 쑥 빠져 나가는 듯하다.

첫 손주였기에 친가, 외가에서 참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자랐다. 고모, 삼촌, 외삼촌, 모두 하나같이. 고모는 데이트할 때, 어색한 분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우리딸아이를 데리고 나가기도 했었고. 외할머니는 첫손주 말하는 게 너무 신통하고 예뻐서 시외전화요금 고지서숫자가 올라가는 줄도 모르시고 날이면 날마다 전화 수화기에 매달려 있었다. 마트에서 갖고 싶은 장난감을 다 사주자던 엄마때문에 서로 감정상하는 일도 허다했었다. 딸아이는 기억하고 있을까? 이렇듯 많은 사랑이 있었음을….

어렸을 때, 난 부모님과 잠시 떨어져 산 적이 있었다. 아버지가 공무원이어서 이동이 잦은 탓도 있었지만, 평준화가 되지 않은 도시에서 자란 탓에 좋은 교육환경에 보내고 싶었던 당신의 그 간절한 바람이 어린 나를 객지에 홀로 두기도 했었다. 그리고 대학시절도 부모님과 함께하지 않았고 그리고 결혼하면서 또 다른 도시에서 각각 살았고….

난, 부모님과 떨어져 사는 생활이 참 싫었다. 주말이면 집에 갈 수 있었기에 토요일만을 손꼽아 기다렸었다. 집을 떠나오던 일요일 밤은 너무 슬펐다. 엄마가 행여 가지 말라고 불러줄까 몇 번씩 뒤를 돌아보곤 했었다. 그리고 대학생활도 1, 2학년만 행복했었다. 흔히들 말하는 자유가 있었으니까. 그러다 다시 외로워졌었다. 이 핑계 저 핑계로 엄마 눈치 봐가며 집에 갈 궁리만하고. 그래서 생각했었다. 난 내 아이들과는 되도록 떨어져 살지 않겠다고. 특히나 딸은 꼭 곁에 두고 살거라고. 딸에게 언젠가 이런 내 맘을 농담 삼아 말한 적이 있다.

“난 싫은데…. 엄마가 내 애들 봐주면 몰라도…”

기집애… 못됐다…. 그래도 딸아인 아는 것 같다. 이 엄마가 자신과 가까이에서 사는 것만으로도 많은 마음의 위안이 될 것이라는 것을.

딸아이를 키울 땐 참 많이 바빴다. 일하면서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느라. 집안 행사도 또, 어찌나 많던지, 어머닌, 맏며느리라고 집안 대소사만 있으면 데리고 다니려 하셨고. 그야말로 정신 없이 지나다 보니, 아이가 어느 듯 내 손을 거치지 않은 듯 훌쩍 커 있었다.

딸아이가 가끔씩 투정을 부린다. 엄만 진짜 자기엄마 맞냐고? 딸이 좋아하는 음식이 뭔지도 잘 모르고, 뭐든지 잘 먹는 줄로만 알고 있지 않냐고, 동생 위주로만 밥상을 차린다고, “국민 대 토크쇼! 안녕하세요!” TV프로그램에 사연을 보내봐야겠다고, 왜 샌드위치며 과일이며 간식거리를 살 때 아들 것 하나만 사오느냐고…. 이건 확실히 남녀 차별이라고….

“글쎄, 넌 다 컸으니깐, 너 알아서 잘 챙겨먹잖아.”

“나도 저런 간식 좋아하거든요. 왜 살 때 엄마 머릿속엔 딸은 안 떠오르냐구요?”

변명 아닌 변명을 해 본다. 넌 동생보다 13년이나 더 사랑을 많이 받지 않았느냐고, 그리고 나뿐만 아니라, 친지들에게서도 너무나 넘친 사랑을 받지 않았느냐고. 여기 상하이에 사는 어린 동생은 사랑해 줄 사람이 많지 않아서 엄마라도 확실한 버팀목이 되려고 그런 거라고.

나는 딸에게 말해야 할 고마움이 있다. 아들을 너무나 원하셨던 할머니 등살에 늦은 나이에 내가 둘째를 임신하게 됐을 때, 그때 6학년밖에 안되었던 이 아이, 내게는 그냥 철부지 같았던 딸아이가, 자신은 이쁜 여동생이 생겼으면 좋겠지만, 엄마를 위해서 남동생이 태어나기를 기도하고 있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말했단다. 가슴을 찡~ 하게 하는, 내겐 고마운 딸이다. 내 인생에 아직은 둘도 없는 친구가 되어 줄 거 같은 딸이다.

요즘 들어 딸도 내 머릿속 한 자락에 자리잡았다. 빵을 살 때도. 반찬거리를 살 때도 딸아이를 떠올려본다. 그런데, 이제 떠나가려 한다. 딸 아이와 떨어져 살지 않으리라 했던 내 마음은, 바람은 변하지 않았는데…. 하루에도 여러 번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텐데도. 물리적인 거리감의 벽이 내게 외로움으로 다가오고 있다.

▷아침햇살(sha_bea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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