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어김없이 상하이의 고온다습한 여름이 왔구나. 벌써 10년째 맞고 있지만 아직도 적응이 안되고 이젠 갱년기까지 겹쳐 주체할수 없는 땀으로 정신이 하나도 없다. 올해는 한국도 더위가 장난이 아니라는데 넌 어떻게 지내니? 이 모든 것이 인간의 이기적인 산물이란 것을 인정하면서도 난 오늘도 절제하지 못하고 어느새 에어컨 리모콘을 들고 말았구나.
초등학교 6학년때 전학을 가서 하얀 피부에 양갈래 머리를 한 너와 같은 반이 되고, 또 같은 마을에 살며 중 고등학교를 함께 보내며 울고 웃으며 지내온 시절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우린 아직도 서로의 생일을 축하하고 부모님과 형제의 안부를 묻는 모습을 보며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부러움을 받곤 하잖아. 책 읽고 글쓰기 좋아하는 넌 늘 나에게 사랑을 가득 담아 편지를 쓰곤 했지. 아마 내가 이곳에 와서도 몇 년은 너의 편지를 받아본 것 같아.
세월이 이렇게 흘렀나! 우리가 불혹을 놀라며 맞이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지천명을 지나고 있으니…. 흰머리 한 두개 발견하나 했더니 어느새 염색을 해야 하고 노안으로 자연스럽게 돋보기 신세를 지고 있는 나를 본다.
아이들 커가느라 성장통을 앓을 때 우리도 함께 아파하며 정신 없는 몇 해를 보내느라 무심한 듯 했지만 우리의 가장 황홀했던 시절은 언제나 같은 추억으로 만날 수 밖에 없다는 걸 우린 잘 알잖아?
십년, 얼마 전 난 우리가 너무 오래 떨어져 지냈다는 생각을 문득 했다. 너와 카톡을 주고 받으며 한국과 이곳의 서로 다른 삶의 부분들이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폭이 많이 줄었다는 그런 생각.
네가 지쳐 나와 이야기 하고 싶었는데 난 그리 중요지 않다는 생각에 가볍게 남편과 함께 공유했고 넌 그것이 서운했고, 난 처음에는 너의 그런 모습 이해할 수 없었지만 넌 그곳의 복잡한 삶에서 친구가 필요했고 난 이곳의 단순하고 잦은 이별의 환경에서 남편과 서로 많은 부분을 함께해야 하다 보니 그런 작은 배려를 잊고 지냈던 것 같다.
친구야!
오늘 네 딸을 만났다. 며칠 전 전해준 네 딸의 상하이 방문 소식, 하필이면 내일 우린 여행을 떠나는데 오늘 오다니 너무 아쉽기만 하다. 어릴 때 보고 벌써 대학 4년 알아볼 수는 있을까! 약간의 흥분된 지난 며칠이었다. 남편은 사랑을 담은 선물을 준비하고 난 우리의 그때를 떠올리며 네 딸에게 편지를 썼다.
늦은 밤 그곳으로 찾아가 만났을 땐 눈물이 찔끔 나도록 반갑고 마치 너를 보는듯해서 참 좋았다. 그리고 건네 받은 작은 선물꾸러미. 집에 와 열어보니 이것저것 남편 것까지 세심하게 준비하고 포장한 모습 속에서 너의 마음이 전해왔다. 그리고 펜으로 꼭꼭 눌러쓴 그리움이 묻어있는 긴 편지.
"친구야! 모든 것이 고마워, 네가 이세상에 태어났다는 것도…."
친구야! 나도, 나도 모두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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