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인·증인으로 맞서 치열한 공방
한때 정치적 운명을 함께했지만 이제는 악연이 된 보시라이(薄熙來)와 왕리쥔(王立軍) 전 충칭시 공안국장이 법정에서 얼굴을 마주했다.
보시라이의 아내 구카이라이(谷開來)가 저지른 영국인 독살 사건 탓에 관계가 꼬인 두 사람이 각각 피고인과 증인으로서 법정에 선 것이다.
왕리쥔은 24일 재판에서 보시라이의 혐의를 입증하는 증언을 하며 옛 '주군'을 공격하는 역할을 했다.
둘은 서로의 주장이 거짓이라면서 직접 공방을 주고받기도 했다.
왕리쥔은 작년 1월 28일 보시라이를 찾아가 구카이라이 사건의 진상을 보고하고 이를 제대로 처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보시라이는 왕리쥔이 자신에게 "구카이라이가 살인 사건을 저질렀다고 말하고 다니는 사람이 있다"는 식의 얘기를 전했을 뿐, 사건에 관한 보고를 정식으로 받은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는 법적으로 직권 남용 혐의에 관한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한 전략으로 보인다.
그러나 왕리쥔은 "내가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말하자 보시라이는 물컵을 바닥에 집어던지더니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보시라이가 사건 진상을 제대로 보고받고도 이를 은폐하려 했다는 결정적인 증언을 한 셈이다.
보시라이가 왕리쥔을 공안국장에서 해임한 과정을 두고도 이들은 공방을 주고받았다.
보시라이는 왕리쥔이 충칭시에서 조폭과의 전쟁을 벌이며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본인 스스로 다른 자리로 이동을 원했다고 주장했다.
보시라이는 왕리쥔에게 "20년간 공안에 몸담으면서 몸이 나빠져 다른 일을 하고 싶다고 나한테 말한 적이 있지 않냐"고 묻자 왕리쥔은 단호한 어조로 "그런 적이 없다"고 대꾸했다.
구카이라이 사건 재조사를 요구하는 왕리쥔을 일방적으로 공안국장에서 해임한 것이 직권 남용 혐의의 핵심 사안이라는 점에서 왕리쥔의 발언은 보시라이에게 매우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왕리쥔은 말단 공안 직원에서 시작, 충칭시 공안국장을 거쳐 부성장급인 충칭시 부시장직까지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그는 2008년 보시라이에 의해 충칭시 공안국장으로 발탁돼 조폭과의 전쟁을 이끌었고 '치안 영웅'으로 전국적인 인지도를 얻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구카이라이 사건 처리 문제를 놓고 보시라이와 갈등하다 공안국장 자리에서 쫓겨나고 미국 총영사관 망명을 기도하는 일대 사건을 일으켜 보시라이를 낙마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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