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메뉴

상하이방은 상하이 최대의 한인 포털사이트입니다.

[상하이의 사랑법] 나이를 먹는 게 설레는 이유_프랑스 조계지

[2023-10-21, 07:04:35] 상하이저널

그를 만난 지 꼭 20년이 되던 날, 추억이 서린 동네를 그와 함께 찾아갔다. 한국에 있던 나를 기다리며 그가 상하이에서 혼자 지내던 동네는 마침 프랑스 조계지에 있다. 어둠 속에 줄지어 서 있는 플라타너스 이파리마다 오랜 그리움이 묻어 있는 듯했다.

첫눈에 반한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한때는 그런 사랑을 낭만이라 여기기도 했지만, 찰나의 단면만으로 한 사람을 꿰뚫어 볼 수 없다는 것쯤은 이제 잘 안다. 순간의 느낌이나 겉모습만 보고 사랑에 빠지는 건 얼마나 위험한가. 이런 끌림이 몹시 강렬한 건 자신의 애착 상처를 자극하기 때문이다. 애착 유형이 불안형이던 나는 소위 말하는 ‘나쁜 남자’에 끌리곤 했다. 반짝하는 설렘 뒤에 이어지는 불화와 고통, 이른 파국, 깊은 상처를 남기는 이별. 무의식적으로 내가 필요하다는 사람을 끌어당겨 놓고 사랑받고 있다고 착각하는 악순환을 반복하던 때 그를 만났다.

“귀여워요.”

감자튀김과 소주를 앞에 두고 토할 뻔했다. 나는 여덟 살 때 이미 보지 않았으면 좋았을 생의 이면을 보았다. 너무 일찍 늙어버린 것이다. 지우고 싶은 것이 있을 때 검은 크레파스로 북북 덧칠하듯 나는 머리를 시커멓게 물들이고 화장도 어둡게 했다. 그때 내가 지우고 싶었던 건 가난과 수치, 불화로 뿔뿔이 흩어진 원가족. 귀엽다는 말은 내 삶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생경한 말이었지만, 그 말을 붙들고 싶었다. 사랑은 상대에게서 다른 사람들은 보지 못하는 걸 발견하는 눈이다. 그가 시커먼 그림에서 덧칠 전에 있었으나 더 이상 보이지 않는 빛을 알아봐 준 것이다. 


진정한 사랑은 함께 나이가 들어가는 것이라고 했던가. 사람은 죽어도 변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와 함께 한 20년 동안 나는 많이 달라졌다. 부모도, 식구도, 친구도 모두 나를 버리고 떠날 거라는 불안과 두려움에 떨던 불안정 애착유형에서 이제 신뢰를 바탕으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안정형이 되었다. 나의 한 단면만 보고 설익은 판단을 하는 게 아니라 나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입체적으로 보며 깊이 이해해 주는 누군가와 함께 나이 들어갈 수 있다는 건 분명 행운이다.


“당신은 곧 여든두 살이 됩니다. 키는 예전보다 6센티미터 줄었고, 몸무게는 겨우 45킬로그램입니다. 그래도 당신은 여전히 탐스럽고 우아하고 아름답습니다. 함께 살아온 지 쉰여덟 해가 되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내 가슴 깊은 곳에 다시금 애타는 빈자리가 생겼습니다. 오직 내 몸을 꼭 안아주는 당신 몸의 온기만이 채울 수 있는 자리입니다.”
(앙드레 고르 중)

불치병에 걸린 아내를 24년이나 간병했던 앙드레 고르가 꽃길을 걸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긴 시간 동안 두 사람이 씨실 날실로 촘촘히 엮어 만든 사랑의 문양은 여전히 아름답다. 이제 내 삶의 40%를 함께 한 사람. 그와 함께라면 나이를 먹는 것도 기분 좋은 설렘이 된다. 

글·사진_ 윤소희 작가

ⓒ 상하이방(http://www.shanghaibang.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2017년 <세상의 중심보다 네 삶의 주인이길 원해>를 출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24년 단편소설 '지금, 정상'으로 소설가 등단. 2006년부터 중국에 거주. ‘책과 함께’라는 커뮤니티를 운영하며 책 소개와 책 나눔을 하고 있다. 전 Bain & Company 컨설턴트, 전 KBS 아나운서. Chicago Booth MBA, 서울대학교 심리학 학사. 저서로는 <세상에 하나뿐인 북 매칭> <산만한 그녀의 색깔 있는 독서> <여백을 채우는 사랑>, 공저로 <소설, 쓰다> 등이 있다. (위챗: @m istydio, 브런치스토리 @yoonsohee0316)
master@shanghaibang.com    [윤소희칼럼 더보기]

플러스광고

[관련기사]

전체의견 수 0

댓글 등록 폼

비밀로 하기

등록

가장 많이 본 뉴스

종합

  1. 中 무비자 정책에 韩 여행객 몰린다
  2. 中 근무 시간 낮잠 잤다가 해고된 남..
  3. 中 12000km 떨어진 곳에서 원격..
  4. 불임치료 받은 20대 중국 여성, 아..
  5. [무역협회] 미국의 對中 기술 제재가..
  6. 中 하늘 나는 ‘eVTOL’ 상용화에..
  7. 上海 디즈니랜드, 12월 23일부터..
  8. 샤오미, 3분기 매출 17조…역대 최..
  9. 상해흥사단, 과거와 현재의 공존 '난..
  10. 中 올해 명품 매출 18~20% 줄어..

경제

  1. 中 무비자 정책에 韩 여행객 몰린다
  2. 中 12000km 떨어진 곳에서 원격..
  3. 中 하늘 나는 ‘eVTOL’ 상용화에..
  4. 샤오미, 3분기 매출 17조…역대 최..
  5. 中 올해 명품 매출 18~20% 줄어..
  6. 중국 전기차 폭발적 성장세, 연 생산..
  7. 中 세계 최초 폴더블폰 개발사 로우위..
  8. 中, 한국 무비자 체류 기간 15일..
  9. 푸동공항, T3터미널 핵심 공사 시작
  10. 中 연간 택배 물량 사상 최대 ‘15..

사회

  1. 中 근무 시간 낮잠 잤다가 해고된 남..
  2. 불임치료 받은 20대 중국 여성, 아..
  3. 上海 디즈니랜드, 12월 23일부터..
  4. 상하이 심플리타이, 줄폐업에 대표 ‘..
  5. 유심칩 교체 문자, 진짜일까 피싱일까..
  6. 上海 아파트 상가에 ‘펫 장례식장’..
  7. 상해한국상회 회장 선거 12년만에 ‘..
  8. 초등학생 폭행한 경찰에 中 누리꾼 ‘..

문화

  1. [책읽는 상하이 259] 사건
  2. [책읽는 상하이 260] 앵무새 죽이..
  3. [신간안내] 상하이희망도서관 2024..
  4. 상하이 북코리아 ‘한강’ 작품 8권..

오피니언

  1. [인물열전 2] 중국 최고의 문장 고..
  2. [무역협회] 미국의 對中 기술 제재가..
  3. [허스토리 in 상하이] 상하이 한인..
  4. 상해흥사단, 과거와 현재의 공존 '난..
  5. [허스토리 in 상하이] 당신은 무엇..
  6. [박물관 리터러시 ②] ‘고려’의 흔..
  7. [허스토리 in 상하이] 떠나요 둘이..
  8. [안나의 상하이 이야기 16] 차가운..
  9. [상하이의 사랑법 19] 사랑은 맞춤..
  10. [무역협회] 기술 강국의 독주? AI..

프리미엄광고

ad

플러스업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