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주년 3.1독립운동 기념식 100여 명 참석
송칭링능원 내 외국인묘원 참배·헌화
[사진='105주년 3.1독립운동 기념식'에 참석한 독립운동가 후손들]
제105주년 3.1절을 맞아 1일 오전 상하이 교민들은 기념행사를 열고 애국지사를 추모하고 자주독립의 의미를 되새겼다.
기념식에는 이동휘 선생 외증손이자 오영선 지사 손녀 호패화, 김복형 지사 손자 김광릉, 김택영 선생의 증손자 김계생, 유기석 선생의 손자 류화, 최중호 선생 손녀 최위자 씨 등 독립운동가 후손과 상하이총영사관 보훈영사, 상해한국상회(한국인회), 민주평통, 한국문화원, 각 지방 대표처, 흥사단, 윤봉길기념사업회, 대한체육회, 옥타, 여성경제인회, 여성회, 공감, 상총련, 백범 스카우트단 등 각 기관과 단체 대표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사진=독립운동가 연병환 선생 묘지석에 헌화하는 독립운동가 후손 가족]
기념식에 앞서 독립운동가 후손들과 상하이 교민들 70여 명은 애국지사 유해가 안장됐던 창닝구 송칭링 능원 내 외국인묘원을 참배하며 선열들의 독립 의지를 기렸다.
이날 이명필 HERO 역사연구회 대표는 외국인묘원 내 박은식, 신규식, 노백린, 안태국, 김인전, 김태연, 윤현진, 연병한 등 8인의 독립운동가에 대해 소개했다. 참배객들은 독립운동가 묘지석에 헌화하고 100여 년 전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애국지사들의 숭고한 희생을 되새겼다.
최중호 선생 손녀 최위자 씨
“선배들과 열사들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
독립운동가 최중호 선생의 손녀 최위자(85) 할머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2대 대통령을 지낸 박은식 선생의 묘지석에 조용히 헌화했다. 박은식 선생은 최위자 할머니의 고모부의 아버지다. 최중호 선생의 딸(최윤신, 고모)과 박은식 선생의 아들(박시창, 고모부)이 결혼해, 최위자 할머니에게 박은식 선생은 각별한 인연이다.
박은식 선생의 묘지석에 헌화한 최위자 할머니는 “우리는 지금 걱정없는 생활을 하고 있지만 그 당시 선배들과 열사들은 얼마나 어렵게 지냈을까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라며 참배 소감을 전했다. 최위자 할머니는 이날 기념식 국민의례를 하는 도중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최중호 선생은 임시정부 거류민단장을 역임했으며, 임정요인들의 숙소인 영경방 10호(현재 신천지 소재)에서 김구선생 가족과 같이 지냈을 정도로 각별한 사이다.
[사진=최중호 선생 손녀 최위자 씨]
유기석 선생 손자 류화 씨
“역사는 최고의 교과서, 영웅은 가장 아름다운 표상”
외국인묘원 참배에 이어 11시 30분 한국상회 열린공간에서 ‘105주년 3.1독립운동 기념식’을 개최했다.
독립운동가 유기석 선생의 손자 류화 씨는 축사에서 “대한민국이 독립할 수 있었던 것은 독립운동가들의 영웅적인 투쟁 덕분이었고 세계 10위 경제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3.1 독립운동의 정신과 국민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라며 “역사는 최고의 교과서이며 영웅은 가장 아름다운 표상이다(历史是最好的教科书,英雄是最美丽的风景)"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당시 3.1 독립운동의 영향을 받은 증조부 유찬희 선생과 조부 유기석 선생은 같은 해 3월 13일 롱징에서 수만 명의 동포가 모인 독립선언 축하회를 조직하고 직접 참여해 대한독립만세 구호를 외치며 조국의자유와 독립을 위해 노력했다”라며 독립운동가 유찬희, 유기석 선생을 소개했다.
‘3.1절 노래와 작사가 정인보 선생’ 역사 특강
105주년 기념식은 리앙 앙상블 공연과 국민의례에 이어 독립선언서 낭독, 역사특강, 3.1절 노래 제창, 만세삼창 순으로 진행됐다.
‘3.1절 노래 유래’를 주제로 한 강연에서 HERO 역사연구회 김지우 박사는 3.1절 노래 현상공모부터 가사 분석과 작사가인 정인보 선생에 대해 설명했다. 한학자이자 교육자, 독립운동가, 언론인이었던 정인보 선생은 상하이에서 신채호 박은식 신규식 등과 동제사를 조직해 광복운동을 펼쳤고, 동아일보 등 언론사의 논설위원으로 민족계몽운동에 앞장섰다.
[사진=’3.1절 노래’ 역사 특강]
한편, 3.1독립운동 기념식 자원봉사자로 나선 백범 스카우트 청소년 단원들은 “올해 기념식은 독립운동가 후손들과 함께 애국지사들의 유해가 안장됐던 묘역을 참배해 뜻 깊었다”는 소감을 전하기도 했다.
고수미 기자
[외국인묘원의 한국 독립운동가 8인]
박은식 1859-1925
1911년 5월 중국으로 망명해 1915년 독립운동단체인 신한혁명당과 동제사 결성에 참여하고 한국통사와 1920년 ‘한국독립운동지혈사’를 간행하는 등 역사가로 활동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참여하여 한국 독립운동을 추진하여 1925년 제2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신규식 1880-1922
1911년 중국으로 망명하여 손중산, 송교인 진기미 등과 교류하며 중국동맹회에 가입 신해혁명에 참여한 최초의 한국인이었다. 1912년 5월 국권회복을 위해 동제사를 결성하고 한중양국 청년들로 구성된 비밀경사 조직인 신아동제사를 조직 운영했다. 대한민국 임시의정원과 임시정부 법무총장을 역임했다.
노백린 1875-1926
대한제국 무관 출신으로 1916년 중국 상하이를 거쳐 미국으로 망명했다. 미국에서 독립군 양성을 위해 대조선국민군단을 창설하고 1919년 한인비행사 양성소를 설립했다. 1919년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자 군무총장과 국무총리로 활동했다.
안태국 1874-1920
1905년 을사늑약 이후 국권회보과 민족 계몽운동을 위해 신민회에서 활동하다가 1916년 독립운동을 위해 중국으로 망명했다.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통합을 추진하다 1920년 4월 상하이에서 순국했다.
김인전 1876-1923
애국계몽운동을 주도하다가 1919년 중국으로 망명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독립공채를 발행해 독립운동 자금 금을 위해 노력했다. 1922년 제4대 임시의정원 위원장으로 활동했으며 한국노병회 조직에 참여 군대양성과 독립전쟁 비용 조달에 노력했다.
김태연 1893-1921
대한민국 임시정부 거류민단을 조직해 임시정부의 활동을 후원했다. 1919년 대한적십자회에서 활동했으며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기 및 황해도 의원을 역임했다. 1921년에는 상하이 인성학교 교장으로 활동하던 중 순국했다.
윤현진 1892-1921
1919년 3.1운동 직후 중국 상하이로 망명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기 내무위원과 경상도의원으로 활동했다, 1919년 11월 내무차장으로 선임되어 재무를 담당하고 독립신문사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연병한 1878-1926
1907년 중국으로 망명해 지린성 옌지 세관에서 근무하며 한국 독립운동을 지원했다. 1919년 롱징 3.13만세운동을 지원하다가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고초를 겪은 후 상하이로 이동했다. 애국지사 연미당 선생의 아버지.
자료_ 독립기념관
사진_ 고수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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