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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근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4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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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책벼룩시장 송년문학회에서 책 교환으로 받아온 책이다. 작가는 정신과 의사로 도시 외곽의 한 정신병원에서 만성 정신 질환을 앓는 환자들을 진료하고 있다. 전문적인 책이라기보다 정신과 의사로 근무하며 겪은 일화나 사건에 대한 생각, 일상을 따듯한 시선으로 써 내려갔다.
이제는 신경정신과가 아니라 ‘정신건강의학과’로 이름이 바뀌었고, 조현병의 증상엔 환청이나 망상 같은 양성증상과 외부의 자극이나 변화에 반응을 나타내지 않고 멍한 상태인 음성 증상이 있음을 의학적 상식으로 알려주는 한편, 정신과 의사로서 할 수 있는 일로 잘 들어주는 것,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먼저 손 내밀어 주는 일을 꼽는다.
정신과 의사의 듣기는 말하는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서 듣지만, 판단보다 공감을 우선으로 한다. 나에게 상담을 받는 사람이 천하의 사기꾼에 거짓말쟁이라도 그가 하는 말이 거짓말인지 아닌 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왜 그가 그런 거짓말을 하고 있는 지가 중요하다는 점에서 판사, 신부, 선생님의 듣기와는 다르다는 점을 알려준다.
동감sympathy은 상대방의 감정을 같이 느낀다. 공감empathy은 상대방의 감정에 들어가 본다, 감정을 이입한다고 한다. 같은 아픔을 겪은 자로서의 동감과, 경험하지 않았지만 공감으로 상대를 이해한다면, 제 위치에서만 보려 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제안한다.
세 개의 장에 걸쳐 소곤소곤 말해주듯 진료 과정에서, 일상에서, 역사의 사건에서 정신학과 연관해 풀어내는 이야기는 소소하게 재밌다. 그리고 챕터가 끝날 때마다 소개하는 추억 음식들은 군침을 돌게 하며 재미를 더한다.
드라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를 보며 공황장애의 아픔과 고통을 공감했다면, 이 책을 통해 정신병, 우울증이 감기나 고혈압, 당뇨와 같이 의사의 진찰과 약 처방으로 조절되며 치료될 수 있음을 더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마지막 부분의 작가의 말을 인용해 본다.
“사실 우리의 삶은 대부분 ‘비 올 때’가 아닌 ‘비 온 뒤’의 시간임을. 비가 퍼붓는 길을 걸어가야 하는 시간만을 고통이라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삶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비가 그친 다음 걸어야 하는 진창길에서의 시간이다…… 만성 정신질환 환자들의 삶은 그런 비 온 뒤 걷기를 떠올리게 한다. 예기치 않은 고통의 시간을 겪었고, 원하는 삶의 궤적이 틀어졌다. 그것은 때론 절망적이다. 어쩔 수 없었다. 우리는 그 비 온 뒤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나의 일은 그 비 온 뒤의 길을 걷는 이들을 돕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내 환자들만 걷는 길이 아니다. 나도 그렇고 우리 대부분 역시 그런 삶을 산다. 우리는 모두, 비 온 뒤를 걷는다.”
양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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