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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물열전 ③] 현대미술의 대가, 지식인의 아이콘 ‘천단칭(陈丹青)’

[2025-01-04, 06:24:21] 상하이저널
[사진=천단칭(陈丹青)]
[사진=천단칭(陈丹青)]

중국 현대 미술사에서 천단칭(陈丹青)의 위치는 확고하다. 그런 그가 주변국, 특히 한국에 대해 흥미로운 관점을 얘기한 적이 있다, 

“중국은 일본이나 한국에 대해 너무 과소평가하고 있다. 이 두 나라 국민의 큰 역사는 중국과 비길 바가 못 되지만 그들의 현대(예술)사는 우리보다 훨씬 풍부하고 다채롭다. 나는 (1992년에) 한국에 이틀 가본 적이 있는데 사실 꽤 촌스러운 곳이었다. 그럼에도 깊이 감동했다. 그곳의 모든 사람은 정말 나라를 사랑했다. 그 사람들에게 애국에 대해 말할 필요는 없었다. 왜냐하면 당연히 사랑하고 있으니까. 앞에는 북한이 있고 옆에는 일본과 중국이 있는데, 정말 경기를 일으킬 정도로 자기 나라를 사랑하고 있었다. 아주 감정적이기도 하지만 정말 진지하고 순수한 애국이었다. 한국의 무한한 창의력은 어디에서 왔을까. 그 옆에 있는 일본과 중국에서 많은 문화적 영향력을 받았고 두 나라로부터 유래된 기억도 많았는데, 아주 형편없는 기억들뿐이었다. 이 두 나라는 한국을 너무 오래 괴롭혔다. 그래서 한국의 영화는 뭐랄까 고단한 인상이 느껴지는데 이 고단한 인상에서는 또 아이러니하게도 에너지가 넘치고 있었다. 작은 나라의 국민은 이러한 특징을 지니고 있었다. 한국이란 나라는 절대 우리가 업신여길 상대가 아니다. 한국은 러시아문학 그리고 영화와 서구 문화를 배우고 거울로 삼음에 결코 우리보다 못하지 않았다……”

천단칭의 강연집 <낯선 경험> 한국어로 출판

천단칭은 1953년에 상하이에서 태어났으며, 중국의 현대 유명 화가, 작가, 문예평론가, 미술 교육가로 정의되어 있다. 중학교 때이던 16세에 그는 당시 시대적 흐름에 따라 장쑤성 북부 시골에 하향(下乡)해 당시 ‘지식청년(知青)’으로 불리던 그 세대가 그러하듯 온갖 고생을 한다. 

문화대혁명이 끝난 직후인 1980년에 그가 작품 ‘티베트 조화(西藏组画)’는 당시 교조화한 구소련 창작 틀에서 벗어난 중국의 극사실주의 표현 기법의 첫 작품으로 크게 명성을 떨치게 된다. 이후 경매 시장에서 이 작품은 무려 1억 6000만 위안(한화 321억원 이상)에 낙찰돼 또 한 번 세상을 놀라게 한다. 

[사진=1억 6000만 위안(한화 320억원)에 낙찰된 천단칭의 '‘티베트 조화(西藏组画)’]

 

[사진= 티베트를 소재로 한 천단칭의 작품들] 

 

자신의 미술 작품 활동 외에도 다양한 미술 관련 평론과 다양한 분야를 넘나드는 문학 작품집을 펴냈다. 천단칭의 화풍이나 문풍은 우아하고 소박하고 예지롭고 솔직담백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의 강좌 내용을 모아 묶어낸 책은 <낯선 경험>이라는 제목으로 한국에 번역 출판되기도 했다. 

천단칭 (지은이), 강초아 (옮긴이) | 선 | 2018년 4월

천단칭과 무신(木心)

천단칭은 해외 교류의 빗장이 열리자마자 1982년에 미국 유학을 떠나게 되며 동 시기에 56세의 나이로 미국에 온 예술가 무신(木心)과 조우하는데, 곧 무신의 해박한 지식과 식견에 압도당하게 된다. 도미해 있던 여러 예술가들을 불러 모아 1989년부터 5년 연속 매주 무신한테서 세계 문학사 강의를 들었다고 한다. 무신 사후에 천단칭은 이 수업 필기 노트를 두툼한 다섯 권으로 정리해 40만 자가 넘는 <문학 회고록(文学回忆录)>이라는 책을 펴냈다. 이 책 덕에 중국에는 무신의 작품세계와 정신세계에 매료된 수많은 젊은 팬들이 생기게 됐다.
 
[사진= 중국 현대 화가 무신(木心)]

[사진=우전에 있는 '무신미술관(木心美术馆)]

무신의 예술적 기량과 감성이 천단칭을 교육, 완성했고 천단칭의 끊임없는 노력이 당시 대륙 민중에게 생소했던 노년의 무신을 세상에 알린 것이다.

천단칭이 자신의 스승이자 친구인 무신을 위해 심혈을 기울여 건축하고 개관한 ‘무신미술관(木心美术馆)’이 무신의 고향인 우전(乌镇)에 있는데, 고도(古都) 야경으로 유명한 이 우전을 여행한다면 꼭 한번 들러도 될 명소로 손색이 없다. 

천단칭과 젊은이들

천단칭은 중국 젊은이들이 열광적으로 추종하는 예술가이다. 그는 어떻게 젊은이들의 마음을 대변해 주는 기성세대 지식인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게 됐을까.

천단칭은 미국에서 돌아온 뒤 칭화대 미술학과 박사 지도 교수로 임명된다. 그러나 연속 몇 해 동안 그는 자신의 마음에 드는 대학원생을 모집할 수 없었다. 그가 제자로 두고 싶었던 재능 있는 학생 여럿은 모두 영어 점수나 정치 과목 점수가 미달하여 대학원 시험에 탈락한 것이다. 천단칭은 학교나 교육국을 거듭 찾아서 호소하는 등 노력했지만 자신의 힘으로 중국의 교육 제도를 바꾸는 데는 역부족임을 깨닫고 크게 좌절한다. 중국에서 미술 후학을 양성하려는 자신의 꿈이 이렇게 무너지자 칭화대에 채용된 지 4년 만에 가차 없이 사표를 던지게 된다. 

안정적이고 명예가 보장되는 최고 대학 교수 자리를 포기한 그는 이 일로 27살 나이에 중국 미술사에 한 획을 긋게 된 작품을 출시한 만큼이나 다시 세간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게 된다. 순식간에 천단칭은 불합리한 사회, 문화적 현상에 대해 비판과 폭로를 서슴지 않는 치열한 비평가 이미지로 구축됐고 언론도 그와의 대담을 즐겼다. 작심한 듯 쏟아내는 거칠고 신랄하고 냉소적인 그의 말들은 사실 대부분 상식적인 내용이지만 그것 만으로도 이미 수위가 아슬아슬해서 사람들은 조마조마해하면서도 시원한 대리만족을 느꼈다. 물론 세속과 현실에 늘 일침을 가하는 그에게 안티 팬이 많은 것은 당연했다.
 
그는 양심적인 발언을 하는 지식인의 대표 인물로 젊은이들에게 신뢰를 받게 되지만 현실적으로 여러 제한과 탄압도 느끼게 됐는지, 자신은 이제 이런 문제에 대해 말하지 않겠다며 선을 긋는 척하지만 꽤 절제된 표현으로도 자신의 메시지를 정확하게 잘 전달한다. 이미 70대에 들어선 지금도 청년 시기의 그 반항아적 기질은 여전하며 본인은 세상과 타협했다고 하지만 본질을 날카롭게 관통하는 그의 ‘어록’들은 중국 온라인 상에 널리 공유되며 여전히 젊은이들의 열띤 반응을 끌어내고 있다. 

지식인의 사명감

이런 그의 ‘어록’들을 보다 보면 험난한 시대를 경험했던 중국인들의 고도로 농축되고 함축되고 정제된 언어 기술은 가히 세계 최강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종종 갖게 한다.
많은 지식인들이 자신의 말과 글로 화를 입어 매스컴에서 사라질 때 천단칭은 여전히 매체들이 탐내는 ‘인플루언서’로 소비되며 맹활약하고 있으니 이는 “나 같은 성격으로 이 시대를 살아가려면 뼈저리게 실패할 수밖에 없다. 오늘을 살아가자면 아주 우수한 기회주의자여야 한다. 아주 뻔뻔스럽고 또 아주 용감해야 한다. 이건 나쁜 뜻으로 말하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던 바와 달리 남들이 흠모하는 출세 가도는 그에게 있어서 오로지 취사(取舍)에 불과한 듯 보이는 화려한 이력이니, 혹 그만의 독특하고 노련한 처세술이 있었나 궁금해지기도 한다. 

일찍 작품성도 인정받은 그는 강의 때마다 여타 작가들에 뒤지지 않는 문학적 소양과 개성 넘치는 언변에, 민국 시대 풍류 인물에게서 느껴지는 그런 범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진다. 그는 어느 모로 사실 속세의 부귀와 명예를 다 거머쥔 듯한 성공한 지식인이었다. 

그럼에도 강의를 경청하고 있으면 항상 세상과 싸울 태세인 듯한 그의 냉철하고 집요한 눈빛과 진솔하고 통쾌함이 느껴진다. 그는 언제까지나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작은 불씨가 되기를 마다하지 않고, 늘 인간이 가엽고 안타까워 참을 수 없는, 그의 아버지가 지어 주신 이름 그대로 색채 선명하고 지조 있는 ‘단칭(丹青)’이었다.

김향려(mshina052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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