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년’이라는 제목으로 코로나 봉쇄 해제 이후 1년이 지난 소회를 상하이저널에 기고했었다. 그 때가 이번 상하이 임기의 딱 중간 정도 시점이었는데, 이제 그만큼의 시간이 더 지나 이번엔 상하이 부임이 ‘벌써 3년’이 되었다.
지난 연말 새로운 포스트(서울 본사)로 발령이 난 후 1월부터 2월 초까지 밤낮으로 환송회가 이어졌고, 국제이삿짐 포장이라는 절차까지 숨가쁘게 마무리했다. 상하이살이에서의 손때 묻은 물건들과 감정들을 서둘러 정리하고 많은 사람들과 아쉬운 이별을 한 후, 지치고 어리둥절한 상태로 서울로 귀임하여 출근한지 나흘째. 지금은 상하이가 아닌 서울에서 ‘상하이 주재원’ 마지막 기고문을 쓰고 있다.
떠난다는 실감이 나지 않던 순간들도 있었다. 하지만 나의 귀임을 아쉬워해 주는 지인들의 눈빛을 볼 때, 술 한잔 걸친 남편이 눈물 글썽이며 아쉬움과 슬픔의 속마음을 꺼낼 때, 그리고 당연하게만 여겼던 일상들이 하나 둘 정리될 때, 비로소 이별은 점점 현실이 되었다. 후임에게 업무를 인수인계하며 더 이상 ‘지부장실’이 아닌 회의실로 출근하던 날, 짐이 빠져나간 빈 집을 마주한 순간 등 내가 살아온 공간이 달라지자, ‘이제 정말 떠나는구나’라는 실감이 들었다.
이제는 넓었던 지부장실이 아닌, 직원들과 마주 보는 서울 사무실의 책상에 앉아 있다. 내가 떠나도 여전히 활발하게 돌아가고 있는 상하이의 여러 위챗 채팅방과, 한국의 지인들로부터의 ‘컴백’ 환영 메시지와 점심 약속 제안을 동시에 접한다. 주재원이 귀임할 때 겪는 전형적인 과도기의 한가운데에 있다.
첫 주재원 생활을 했던 베이징에선 3년 반이라는 시간이 주어졌다. 그 시간 동안 많은 업무를 처리하고 많은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개인적으론 시간을 쪼개어 주경야독을 하며 박사 코스웍을 마무리했었다. 이를 토대로 귀임 후 결국 학위를 취득할 수 있었다. 이번 상하이 주재원 생활을 시작하면서도 ‘갓생 실천하기’ 등 큰 포부로 다양한 자기 계발 목표를 세웠지만, 현실은 기대만큼 완벽하지 않았다. 그래도 수석대표로서 새로운 사업들을 추진하고 기존 사업을 차별화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직원들에겐, 그들이 일만 ‘잘’해 준다면 내가 줄 수 있는 최대한의 자율과 재충전을 보장했는데, 다행히도 그들은 기대 이상으로 멋지게 일해줬다.
또한 연휴마다 황산, 장가계, 구이저우, 칭하이, 깐쑤, 신장 등 중국 곳곳의 ‘신비의 나라’로 여행을 떠났다. 골프 스코어도 90대에 진입해 봤고, 로망이었던 테니스를 오랜만에 다시 시작하여 대회 예선까지 통과하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코로나 시기 시설 격리 3주와 나 혼자 봉쇄 2달을 씩씩하게 견디고 살아남았다! 돌아보면 정말 값진 시간들이었다.
하지만 여러 환송회에서 고백한 바처럼, 이번 상하이 생활에서 가장 소중하게 남은 것은 뭐니뭐니해도 ‘사람’과 ‘관계’다. 수많은 모임과 교류 속에서 한국인, 중국인을 막론하고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그들과 함께하며 나 역시 더 단단해지고 더 따뜻하고 더 여유로운 사람이 된 것 같다. 한국에서 사람들에 부대끼며 받았던 스트레스와 상처 난 자존감을 상하이가, 상하이에서 만난 사람들이 위로해줬다.
이제 상하이와는 잠시 이별이다. 꼭 다시 만날 거니까 이 이별은 그저 ‘잠시만’이다. 안녕, 나의 상하이. 고마웠어.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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