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중국의 리커창(李克强) 총리가 런던의 싱크탱크 관계자 300여 명이 모인 자리에서 ‘중국 이야기’를 주제로 연설을 했다. 약 30분간 이어진 리 총리의 연설은 개혁개방과 평화발전이라는 두 가지 키워드로 요약할 수 있다. 그는 중국이 제창하는 평화발전을 설명하면서 공자의 ‘허위귀(和爲貴: 화합을 귀하게 여기다)’와 ‘기소불욕 물시언인(己所不慾 勿施於人: 자신이 하기 싫은 일은 다른 사람에게도 시키지 말라)’을 강조했으며, 중화 민족은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라고 역설했다. 중국은 확장에 대한 욕심이 없으며 강대한 나라가 패권을 갖는다는 논리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중국은 ‘책임지는’ 대국이다. 세계 각국은 서로 존중하고 평등하게 대하며 평화롭게 교류해야 한다. UN 헌장과 국제관계 원칙을 준수하고, 평화적인 방식으로 외교적 이견과 분쟁을 해소하길 바란다.”라고 밝혔다. 무력을 사용하거나 다른 나라의 내정에 간섭하지 않으며, 평화 발전의 길을 향해 상생의 전략을 추구하겠다는 뜻이다. 이 밖에도 리 총리는 개혁개방에 대해, 중국의 내부적 개선을 위해서는 반드시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이 30여 년 동안 큰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도 모두 개혁개방의 힘이라는 것이다. 그는 최근 중국 경제의 성장률 둔화에 관한 질문에 “경제 역시 개혁을 통해 회복해야 한다.”라며 개혁으로 시장이 활기를 띠게 하고 사회에 더 큰 창조력과 활력을 불어넣어야 한다고 전했다.
리 총리는 19일 영국에서 그리스로 향하며 유럽 순방 일정을 계속 진행했다. 외신은 이번 유럽 순방을 ‘중국의 중요한 실질적 행동’이라고 평가하며, 경제•정치적으로 매우 큰 의미가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 국제문제연구소의 유럽부 주임은 “현재 중국-유럽 관계가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이는 양측의 이익에 부합할 뿐만 아니라 세계 발전과 안정에도 도움이 된다.”라고 말했다.
한편,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얼마 전 연설을 통해 미국은 계속 세계를 리드해 나갈 것이라고 거듭 강조하며 어느 곳에서도 미국은 절대 빠질 수 없는 나라라고 말했다. 한 컨설팅 회사가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서는 대다수의 미국인이 중국을 자국의 최대 적으로 보고 있었다. 그러나 홍콩 언론은 미국의 ‘아시아 회귀’ 전략이 효과를 보지 못했으며, 미국은 중국 굴기를 제어하는 데 집중할 것이 아니라 중국 굴기를 받아들이는 데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아야 한다고 보도했다. 미국이 자랑하는 막강한 국제적 역량의 배경에는 수많은 외교적•군사적 동맹국들이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중국의 무역 파트너 국가가 점점 많아지며 미국을 앞질렀다. 상황이 역전될 시, 얼마나 많은 나라가 계속 미국의 옆에 남아있을지는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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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 전까지 세계의 중심은 영국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유럽이었다. 후발 주자였던 독일이 뒤늦게 식민지 경쟁에 뛰어들어 기존 패권세력인 영국, 프랑스 등과 충돌한 것이 1, 2차 세계대전의 배경이 됐다고 할 수 있다. 2차 대전에서 미국은 잠재되어 있던 놀라운 생산력을 과시하면서 동쪽과 서쪽의 전쟁을 모두 승리로 이끌었고 전후 국제체제에서 단연 패권국가로 떠올랐다. 결국, 2차 대전을 기점으로 패권은 유럽에서 미국으로 전이되었다.
1990년대가 막 시작된 시점에 국제사회는 냉전체제 와해라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양극체제에서 단극체제로의 전환을 한쪽 극을 담당하던 소련의 붕괴로 인한 당연한 결과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기존 체제가 와해되고 새로운 체제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국제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크고 작은 역할을 해야 하는데, 이 점을 고려해보면 미국 중심의 단극체제 확립을 당연한 결과로만 볼 수는 없다. 당시 강대국이라고 할 수 있는 유럽이 왜 다극체제 대신 미국의 단극체제를 그냥 수용했는가 하는 의문을 던져 볼 수도 있는 것이다.
당시 유럽은 새로운 국제체제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별다른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사실 당시 유럽은 냉전 와해 후 형성되는 새로운 국제체제보다 동서독 통일에 따른 새로운 유럽의 질서에 더 큰 관심을 기울여야 했다. 또한, 동유럽에서 철의 장막이 걷히면서 새로운 유럽의 식구들을 구성원으로 끌어안는 과정도 바쁘게 진행되었다. 유럽 입장에서 미국은 냉전 시기부터 같은 진영에서 가치를 공유하고 있던 국가로 경제체제, 정치체제, 종교철학 등 많은 가치관이 유럽의 그것과 상당 부분 일치했다.
완연한 후냉전체제로 접어든 이후 유럽은 새로운 질서를 확립했다. 이제는 미국의 독주를 견제하는 역량 있고 강한 유럽을 꿈꾸게 되었다. 이러한 배경하에서 유럽통합은 큰 어려움을 극복하고 꾸준히 통합을 확대하고 있으며 국제사회는 더욱 강하고 큰 유럽을 맞이할 전망이다. 그러나 유럽의 재부상이 기존 미국의 패권형식에 변화를 주지는 않을 것이다. 반면 중국은 철학적 배경, 정치체제, 종교적 가치관에서 모두 유럽과 전혀 다른 형태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중국의 부상으로 변화되는 국제체제는 이전까지 세계가 경험한 두 번의 재균형과는 다른 형태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은 국제사회, 특히 유럽과 미국의 이러한 우려를 잘 이해하고 있다. 따라서 중국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지속적으로 중국의 부상이 기존 국제체제에 변화를 주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주요하게는 패권 야욕이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권력이란 무형의 가치이다. 또한, 무정부체제인 국제사회에서 권력은 제도적으로 보장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국제사회에서 권력은 구성원 다수가 권력이 있다고 믿어지는 곳에 존재하게 된다. 중국은 지속적으로 부인하고 있지만, 국제사회 구성원 다수가 중국의 권력이 커지고 있다고 믿는다면 중국은 주목받을 수밖에 없다.
참고) 박홍석, “중국의 패권경쟁 가능성과 미국의 정책대응”, 평화연구,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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