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중국 장쑤성 난징에서 촬영된 망측스런 사진입니다. 여름용 군복을 입은 남학생이 팔굽혀펴기자세를 취하고 있다. 그 아래에는 역시 군복 차림의 여학생이 민망한 듯 수건으로 눈을 가린 채 누워 있다. 야릇한 상상을 불러 일으키는 이 사진의 등장인물들은 난징사범대학 신입생들이다. 현장에서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군사훈련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군사훈련을 감독하던 교관이 내린 벌칙이었다는 얘기도 있고, 남학생들의 체력단련 효과를 극대화시킨다며 오래전부터 관행적으로 해 오던 훈련 방식이란 얘기도 나왔다. 문제의 사진이 웨이보를 통해 인터넷에 확산되자 뒤늦게 수습에 나선 대학 당국은 교관이 강제로 시킨 것은 아니었다며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점에 대해 여학생과 학부모에게 사과했다. 하지만 "군사훈련이 무슨 성폭행 훈련이냐", "여대생이 무슨 종군 위안부냐"며 여학생들을 성적 노리개로 취급하는 시대착오적인 군사훈련을 아예 폐지해야 한다는 비판이 줄을 잇고 있다.
지옥같은 입시 관문을 통과해 한껏 해방감에 들떠 있을 새내기 대학생들에게 입학 첫 학기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그러나 군복과 함께 시작되는 중국의 대학생활은 좀 다르다. 매년 9월 이맘때 입학하는 중국 대학생들은 학기 시작과 함께 한 명도 빠짐없이 '쥔쉰(軍訓)'이라 불리는 군사훈련을 받아야 한다. 남학생은 물론 여학생들까지 예외가 없다. 뙤약볕 아래 군사훈련으로 검게 그을려 돌아온 신입생들의 얼굴에서 대학생활의 낭만을 찾기 보기란 쉽지 않다.
중국은 1984년 제정된 병역법과 국가교육법에 의거해 모든 대학교와 고등학교 신입생들에게 의무적으로 각각 7∼14일, 2∼3주간의 군사훈련을 받도록 강제해 오고 있다. 대상자가 2천만 명이나 된다. 군사훈련은 대개 실탄사격, 개인전술 같은 실제 전투훈련과 군사사상, 군사과학기술, 현대국방, 구급법 등의 이론수업으로 구성된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로 군인이 아닌 민간인을 대상으로 억지로 진행되는 군사교육이니만큼 형식에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 실효성 없는 제도라는 비판에 대해 중국 국방당국과 교육당국은 군사훈련을 통해 예비 병력을 확보하고 국방의식을 고취하며 개인의 신체를 단련하는 순 기능이 있는 점을 강조하며 존속을 주장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매년 군사훈련 때마다 사건 사고가 일어나면서 존속 주장이 힘을 잃어가고 있다. 95년 이후 출생한 신세대 학생들의 경우 군사훈련에 대해 상당한 반감을 갖고 있다. 이러다보니 군사훈련 중 교관의 체벌이나 가혹행위에 반발해 충돌하면서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달 24일 후난성 룽산(龍山)현의 황창(皇倉)고등학교 운동장에서는 군사훈련을 받던 1학년 신입생들과 교관.교사들이 주먹다짐을 벌여 42명이 크고 작은 부상을 당하는 불상사가 벌어졌다. 교관이 술에 취해 여학생을 희롱하자 남학생들이 이에 항의하면서 난투극이 일어났다. 당국은 해당 교관들을 자격 정지시키고 교사들에게는 정직처분을 내리며 진화에 나섰지만 비등한 여론을 잠재우기가 쉽지 않았다. 앞서 랴오닝성 푸신(阜新)에서는 혹독한 훈련을 못이긴 한 학생이 자살하는 사고까지 일어났다.
이처럼 의무적인 군사훈련에 대한 폐지 논란이 거센 가운데 웨이보가 실시한 '군사훈련 인식도 조사' 에서는 90%에 육박하는 네티즌들이 군사훈련 무용론에 찬성표를 던진 것으로 나타났다. 공산혁명시기 집체주의적 국방 전통에 따라 30년간 지속되어 온 군사훈련이 더 이상 시대 흐름에 부응하지 못하면서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복종을 강요하며 체제에 순응하도록 요구하는 군사훈련의 취지 자체도 문제지만 여성을 노리개 취급하며 성적인 폭력의 심각성을 제대로 감지 못하는 후진적 군대 문화도 개선이 시급한 과제이다.
중국의 학생 군사훈련 폐지 논란은 우리나라 '교련'의 역사를 떠올리게 한다. 요즘 대학생들이야 단어조차 생소한 '교련'은 1968년 김신조를 포함한 북한 무장공비의 청와대 습격 기도 사건을 계기로 시작됐지만 권위주의 군사정권의 유습이라는 이유로 논란 끝에 1988년 말 (대학생 교련 기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시대에 맞지 않는 옷을 국민에게 억지로 입힐 수 없다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중국 당국도 이제 받아들일 때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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