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우덕칼럼]
혁신없이는 10년도 못버틴다
1992년 수교 후, 임가공 공장
1992년 수교로 가장 먼저 중국 덕을 본 브랜드는 '신발 공장'이다. 수교와 함께 가장 먼저 대륙으로 건너간 분야가 바로 신발·완구·보석·의류 등 임가공 공장이다. 각 기업은 중국의 저임 노동력을 활용하기 위해 생산설비를 중국으로 옮겼다. 한국에서 생산한 반제품(부품)을 중국에서 조립해 미국·유럽 등 제3국으로 수출하는 모델이다. 당시 우리 기업의 경쟁력은 해외 판매망이었다. 당시 중국 기업들은 해외 마케팅 경험이 전무했기에 우리 기업들에 판매망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적지 않은 기업이 중국에서 떼 돈을 벌었다.
1990년대 중반 한국 백색가전 히트
1990년대 중반 들어 백색가전이 히트를 친다. 삼성·LG·대우 등이 현지 공장을 세웠고, 제품 대부분을 현지에서 판매했다. TV·냉장고·세탁기·에어컨 등이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중국 고가 시장을 파고들었다. 멀리 신장 우루무치 아파트 벽에서도 ‘LG 에어컨’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가전제품에서 자신이 붙은 업체들은 1990년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모니터(브라운관)·컴퓨터·휴대전화 등 IT시장 공략에 나섰다. 1990년대 후반부터 약 10여 년 동안 한국 대기업들은 중국에서 초호황을 누렸다.
기계 분야에서는 대우중공업(현 두산인프라코어)와 현대중공업이 생산한 굴착기가 시장을 넓혀갔다. 특히 대우중공업은 한때 시장점유율을 25%까지 끌어올리는 등 굴착기 시장의 메이저로 등장하기도 했다.
2002년 현대자동차 베이징공장 설립
2002년 현대자동차가 베이징에 현지 공장을 세우면서 양국 경협은 한 단계 더 격상된다.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을 놓고 세계 메이저 자동차 메이커와 경쟁할 수 있게 됐다. 현대는 베이징에 연간 130만 대 생산 규모의 공장을 운영하고 있고, 충칭과 허베이성 창저우(滄州)에 제4, 5 공장을 짓고 있다.
2010년 주방제품 락앤락, 쿠쿠 인기
2010년에 들어서면서 소비자에게 직접 다가가는 생활형 주방제품이 인기를 끌었다. 중국이 성장 전략을 기존의 투자·수출 중심에서 내수·소비로 바꾸려는 흐름과 무관치 않다. 가장 먼저 대륙 주부들을 사로잡은 게 바로 밀폐용기 ‘락앤락’이다. 이 제품은 2005년 CJ홈쇼핑의 상하이 홈쇼핑 채널인 동방CJ 방송을 타면서 빠르게 시장을 넓혀갔다. 이어 한경희청소기, 휴롬녹즙기 등이 히트상품 대열에 오르게 된다. 주방 생활용품 분야 최대 히트상품은 역시 쿠쿠전자·쿠첸 등이 활약하고 있는 압력밥솥이다. 쿠쿠전자는 중국에서의 판매 호조에 힘입어 2014년 기업 공개에 나서기도 했다.
중국서 사랑받는 ‘초코파이’
가장 오랜 기간 중국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은 한국 브랜드를 꼽으라면 단연 ‘초코파이’다. 1997년 현지 생산 체제 구축과 함께 본격 시장 공략에 나선 후 지금까지도 히트상품으로 팔리고 있다. 지난 한 해 중국에서 팔린 초코파이는 약 7억 개, 전체 초코파이 시장의 약 83%를 차지했다. 중국 내 초코파이 매출은 2010년 이후 한국을 추월했다.
스낵류 과자인 ‘오!감자’는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 2000억원 넘게 팔렸다. 이 밖에도 ‘예감’ ‘고래밥’ ‘자일리톨껌’ 등이 1000억원 이상 팔린 메가 브랜드에 합류했다. 2014년 이 회사의 중국 매출은 약 1조1600억원, 국내 매출보다 많았다.
요즘 대세는 화장품
요즘 대세는 화장품이다. 아모레퍼시픽·LG생활건강 등 대기업뿐 아니라 미샤·네이처리퍼블릭·페이스샵·메디힐 등 중견 화장품 메이커의 브랜드들도 중국 시장에서 대박을 치고 있다. 중국인들의 한국 화장품 사랑은 지난 해 광군제(光棍節·11월 11일) 특수 때 여실히 드러났다. 관세청 자료에 따르면 광군제 기간(11월 11~20일) 동안 알리바바의 티몰에서 판매돼 중국으로 수출된 한국 상품은 약 737만 달러에 달했다. 이 중 80% 이상이 화장품이었다. 지난해 한국은 미국과 일본을 제치고 제2위 대중국 화장품 수출국(1위는 프랑스)으로 부상했다.
한류(韓流)는 중국 시장 공략의 끝없는 힘이다. 드라마의 파괴력이 가장 컸다. 1997년에는 ‘사랑이 뭐길래’가, 2004년에는 ‘대장금’이, 2014년에는 ‘별에서 온 그대’가 중국인들을 웃기고 울렸다. 한류가 있었기에 공연 ‘난타’, 컴퓨터 게임인 ‘크로스 파이어’, 한·중 합작 영화 ‘이별계약’ 등 소프트산업이 2010년 이후 중국에서 성공할 수 있었다.
기술력에 달린 중국시장
중국 시장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버틸 수 있느냐는 전적으로 기술에 달렸다. 90년대 중국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켰던 백색가전, 굴착기 등은 지금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임가공 공장은 2000년대 중반 철수하거나 도산했다. 중국 로컬 기업의 기술 추격에 발목이 잡힌 것이다. 그러나 기술이 뒷받침된 품목은 10년, 20년 되도록 굳건히 시장을 지키고 있다.
휴대전화 분야가 대표적인 케이스다. 1990년대 말 ‘애니콜 신화’로 시작된 삼성전자의 중국 휴대전화 사업은 2000년대 말 한계에 달했다. 중국 로컬 기업들이 치고 올라온 탓이다. 그게 끝은 아니었다. 삼성은 2010년 들어 스마트폰 ‘갤럭시’를 출시하면서 다시 휴대전화 시장을 장악할 수 있었다. 그렇게 또 5년 시장을 주도했다. 그러나 중국 기업의 추격은 거세다. 갤럭시는 밀리고 있다. 무엇인가 새로운 게 필요한 시점이다. 그게 가능하다면 삼성은 중국 이동통신 단말기 시장에서 살아남을 것이요, 아니면 나와야 한다.
디스플레이도 그렇다. 우리 기업은 90년대 중반부터 10년 간 브라운관으로 디시플레이 시장을 먹었다. 중국 기업이 죽어라 쫓아왔다. 2000년대 중반되자 중국 기업에게 기술을 잡혔다. 그러나 우리 기업은 LCD로의 전환에 성공하면서 시장 우위를 지켰다. LCD로 10년 먹었다. 이제 중국 기업이 그 분야도 다 따라왔다. 대륙에서 나와야 하나? 아니다. 우리에게는 OLED라는 희망이 있다. OLED 기술을 주도한다면 앞으로10년 또 다시 중국 시장을 먹을 수 있을 것이다.
오랫동안 중국 사업을 주관해 온 함정오 KOTRA 부사장(전 중국본부장)은 “한·중 경협을 가능케 한 요인은 단 하나 한발 앞선 기술이었다”고 말한다. “굴착기나 백색가전 시장이 그렇듯 기술이 없다면 중국 시장은 그냥 ‘그림의 떡’일 뿐”이라는 얘기다.
그러기에 바로 지금, 10년 후 중국 시장에서 먹고 살 수 있는 기술 개발에 나서야 한다.
중앙일보 중국연구소 소장(기자). *우리가 아는 중국은 없다-시진핑 시대 중국 경제의 위험한 진실*의 저자. 머리가 별로여서 몸이 매우 바쁜 사람. 베이징과 상하이에서 7년 동안 특파원을 지냈음.
http://blog.joins.com/woodyhan
woodyhan88@hotmail.com [한우덕칼럼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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