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 게임은 본인이 직접 가상 세계에 영향을 줄 수 있고 현실에서는 느끼지 못할 경험을 얻을 수 있는 점에서 많은 사람들이 즐기고 있다. 비록 비교적 최근에 부상하기 시작한 신예 산업이지만 세계 게임 시장 규모는 2016년 기준 이미 114조 원을 돌파했으며 2020년에는 영화 시장 규모를 추월하기도 했다.
이처럼 게임은 이미 여가 생활과 문화의 일부분이 됐다. 그리고 게이머들은 자연스럽게 다 함께 모여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축제의 장’을 필요로 하게 됐다. 첫 비디오 게임인 ‘퐁(Pong)’이 나온 지도 벌써 반 세기가 넘게 흐른 지금, 다양한 게임와 박람회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규모가 크고 중요하다고 평가받는 것이 ‘E3’라고 불리는 ‘전자오락 박람회(Electronic Entertainment Expo)’이다. 이번 6월, 2년 만에 다시금 개최되는 세계 최고의 게임 쇼에 대해서 알아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자.
E3(Electronic Entertainment Expo)란?
전자오락 박람회는 매년 5월 하순에서6월 초순에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개최되는 세계 최대, 최고의 게임 쇼이다. 다른 거대 박람회들과는 달리 일반인 참가자들보다는 게임 업계 관계자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방문자 수도 8만 명 내외에 불과하지만 화제성과 위상만큼은 최고다. E3와 함께 3대 게임 쇼로 꼽히는 도쿄 게임 쇼와 게임스컴에 매년 30만명 이상의 일반인이 방문한다.
닌텐도, 마이크로소프트, 소니 등 거대 게임회사들은 물론 중소 규모의 게임사들까지 보통 가장 먼저 E3를 통해 자사의 새로운 게임기나 게임 소프트 출시 계획, 미래의 비전 등을 발표한다. E3 행사 자체는 기업과 기업 간의 교류를 중점으로 하며 일반 소비자는 참관이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시에 E3가 전 세계 최고의 비디오 게임 박람회라고 불리는 이유는 게이머와 게임사 간 교류의 최전선에 있기 때문이다.
굵직굵직한 소식들이 다수 E3에서 공개됐는데, 혹자는 이를 두고 E3만 보고도 ‘게임의 현대사를 알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만큼 게임의 역사에서 큰 족적을 남긴 수많은 게임들이 반드시 한 번씩은 E3를 거쳐갔다는 뜻이다. E3가 처음 시작되던 때의 5세대부터 9세대에 이르기까지 거의 대부분의 콘솔 게임기가 E3를 통해 처음으로 공개됐다. 첫 번째 플레이스테이션, 닌텐도 DS, 닌텐도 Wii, 엑스박스 시리즈 등도 전부 E3 행사 중에 발표된 것들이다. 그런가 하면 E3에서 처음 공개된 걸작 게임들도 수두룩하다. 젤다의 전설, 콜 오브 듀티, 헤일로 등이 그 예시.
E3 역사
E3의 원류는 소비자 가전 전시회(Consumer Electronics Show), 혹은 CES라고 부르는 일종의 전자제품 시연회였다. E3가 개최되기 이전 게임 회사들은 이곳에서 자사의 신형 게임기 등을 공개하며 홍보에 나섰다. 점점 비디오 게임 시장이 커지면서 게임 회사들은 CES 측에 좀 더 많은 비중을 요구했으나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세가 오브 아메리카의 사장 톰 칼린스키는 “그때 게임 회사들에게 주어진 부스는 가장 구석진 곳에 있었으며, 그마저도 빗물이 세는 텐트를 세워주는 것이 다였다”고 회고했다. 어쨌든 전자제품박람회에서의 푸대접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게임사들은 CES에 더 이상 출품을 하지 않게 된다.
하지만 게임사들 역시 자사의 신제품을 홍보할 장소가 필요했다. 미국의 비디오 게임 잡지사인 게임프로의 설립자 팻 퍼렐은 오로지 게임만을 위한 박람회의 설립을 주장했다. 이 요청은 게임사들 사이에서 힘을 얻게 됐고, 결국 1995년 캘리포니아 컨벤션 센터에서의 첫 E3 개최로 이어지게 됐다. 첫 번째 E3에서 회의론의 득세에도 불구, 세가 새턴 등 신형 콘솔과 북미 지역에서의 플레이스테이션 발매 계획 등 알짜배기 정보를 다수 공개하며4만 명 가량의 방문객을 유치하는 데 성공한다. E3는 이미 첫 개최에서부터 역사상 가장 큰 전시회 발족이라는 명성을 획득하며 게임 산업의 중요한 한 장을 차지하게 된다.
2004년엔 <젤다의 전설 황혼의 공주>, 2005년에는 엑스박스 360, 2006년엔 닌텐도 Wii와 플레이스테이션 3등 소위 말하는 ‘대박’ 소식들이 계속에서 공개되며 E3는 전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게임 박람회가 됐다. 이 추세가 이어지며 계속 승승장구하는 듯 보였으나E3 2006 이후 일각에서는 높은 유치 비용과 무분별한 방문객 초대를 문제 삼기 시작했다. 상당 부분의 방문객들이 블로거 신분의 일반인들이었는데 회사들은 소매 상인과 전문 기자 등 업계 인사들과의 직접적 소통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이익보다 손해가 커질 것이라 생각한 관계자들은E3 2007에 불참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E3는 이것이 영향력 약화로 이어지고 결국에는 행사 자체가 지리멸렬해질 것을 걱정했다. 결국 E3를 주관하는 엔터테인먼트 소프트웨어 협회(ESA)는 이들의 요구를 수용해 박람회를 대거 축소해서 진행했다.
2007년과 2008년, 이 두 해 동안 개최됐던 E3는 방문객 수를 초대받은 업계 관계자들로 한정했고, 명칭도 E3 미디어 & 비즈니스 회담으로 변경했다. 이렇다 보니 방문객 수는 이전의 8분의 1 수준으로 줄었고 소비자와 언론의 관심도 사그라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조치를 비판했고, 오히려 E3의 영향력을 깎아먹는 행위라며 경고했다. ESA는 결국 이 방침이 효과적이지 않음을 깨달았고, 2009년부터 다시 규모를 확장하고 이름도 다시 전자오락 박람회로 회귀했다. 그때 이후로 10년 동안 E3는 단 한 번도 빠짐 없이 매년 개최됐다. 다시금 위상을 회복해 정상의 자리를 공고히 했다.
2020년, 전 세계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위협에 휘청이고 있을 때 게임 업계는 오히려 때아닌 호황을 누렸던 적이 있다. 하지만 업계의 호황에도 불구하고 전자오락 박람회는 감염 위험으로 그 덕을 보지 못했다. 결국 ESA는E3 2020을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1995년 첫 개최 이후로 행사가 전면 취소되는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기 때문에 많은 게이머들이 아쉬워했다.
2021년, 2년 만에 지상 최대의 게임 쇼가 돌아온다. 코로나19로 모든 일정이 온라인으로 진행된다. 트위치, 유튜브, 트위터, 웨이신 등 다양한 플랫폼에서 방송을 송출할 예정이라고 한다. 만약 당신이 게임을 즐기고 좋아한다면, 그리고 지상 최대의 게임 쇼가 그리웠다면, 오는 6월 13일 시작되는 E3 2021을 기대해 보자.
학생기자 김보현(SAS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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