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유년 시절 선생님들에 대한 기억은 그닥 좋지 않다.
초등학교를 갓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학부모 참관수업이 있었다. 그날 하필 동생이 아파 엄마는 학교에 올 수 없었다. 뭐든지 우리 반이 일등이어야 한다고 생각한 담임 선생님은 학부모님이 안 온 아이들을 일으켜 세우더니 굵은 나무 몽둥이로 손바닥을 때리셨다. (아직도 그 질감을 기억한다) 뼈에 잘못 맞았는지 오른쪽 엄지 아래쪽부터 퉁퉁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뭘 잘못했는지 영문도 모르는 매를 맞고 울음을 터뜨렸지만 나는 꾹 참고 있다가 집에 가서 울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선생님은 일요일에 반장과 부반장을 불러 반 아이들 시험지 채점을 시키곤 하셨다. 그리고 시험지로 쓸 갱지가 필요하다, 남편이 화상을 입었는데 약이 필요하다 등등 나를 통해 아빠에게 필요한 것들을 요청하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촌지를 달라는 요구였던 것 같은데, 그것을 모를 리 없는 아빠는 갱지 한 꾸러미와 약 한 꾸러미를 보내셨던 기억이 난다. 5학년 때 선생님은 수학 문제를 다 맞히면 그날 청소를 면제해 주신다고 하셨다. 열심히 풀어서 다 맞추었건만 청소는 그대로 진행되었다. 왜 약속을 지키지 않으시냐고 물었더니 화를 내셨다. 건방지다며 때리려는 듯 팔을 치켜들기까지 하셨다. 나는 사흘 동안 학교에 가지 않았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선생님에 대한 좋은 기억도 있다. 중3 때 담임 선생님은 일단 너무 예쁘셨고 옷도 근사했다. 무엇보다 교단을 종횡무진 오가며 영어 문법을 열정적으로 설명하시는 모습이 멋져 보였다. 우리 반 아이들은 모두 선생님을 좋아했다. 그리고 엄청 단합이 잘 되었다. 학기 말에는 선생님이랑 다같이 기차를 타고 소요산으로 단체여행을 가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중3 친구들은 아직도 연락하며 만나고 있다. 회갑 잔치는 합동으로 하자고 벼르는 중이다. 선생님의 그늘이 이렇게 크구나 싶다.
[사진=지난달 21일 '교권보호 4대 법안' 국회 통과(연합뉴스)]
최근 서이초 교사의 죽음을 계기로 교권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학부모의 과도한 민원 사례들도 계속 불거지고 있다. 심지어 자리 바꾼 게 맘에 안 든다고 학생이 반 아이들 보는 앞에서 선생님을 폭행한 사건도 있었다. 교사들은 검은 옷을 입고 주말마다 거리로 나서서 국회가 아동복지법 등 아동 관련 법을 개정하고 교육부 등 관계 당국은 교육권이 실효적으로 보장될 수 있도록 교육정책을 바꾸라고 요구하고 있다. 상황이 이러니 당장 체벌을 부활해야 한다는 반응도 많고(심지어 학생들까지도), 학생 인권을 너무 높여줘서 그렇다는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아이들을 잘 때려서 ‘미친’이나 ‘개’가 들어간 별명을 가진 선생님이 학교마다 한 분쯤 꼭 계셨던 시절에 성장한 나로서는 체벌을 찬성하는 분들께 묻고 싶다. 맞고 자라서 모두 다 잘 컸는지. 가정에서의 체벌도 아이들 어릴 때나 무서워하지 그렇다고 부모의 권위가 저절로 서지는 않는다는 것쯤은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지 않나? 그리고 학생 인권을 너무 높여줘서가 아니라 내자식만 중요하고 다른 사람은 안중에 없는 태도가 교권을 침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부모로서 뼈아프게 돌아볼 일이다.
살면서 좋은 선생님을 만나는 것은 행운이다. 그런데 누군가에게는 좋은 선생님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많이 있다. 분명한 것은 교권이 붕괴되었다는 요즘에도 선생님의 눈빛, 말 한마디가 아이들에게는 여전히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모성애라는 거룩한 이름으로 어머니들의 희생을 당연시하면 안 되듯이 교사 역시 자연인이고 누군가의 자식이므로 교사들이 아이들에게 애정을 갖고 아이들 교육에 전념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것은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교사의 ‘교육권’과 학생의 ‘학습권’, 학부모의 ‘참여권’이 모두 보호되고 교육 공동체가 건강하게 발전하기 위한 제도적인 뒷받침이 필요한 이유다. 그리고 무엇보다 배려와 존중이 기본값이 되는 사회가 되도록 가정에서부터 노력해야 할 것이다.
-맞춤형 성장교육 <생각과 미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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