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기다림의 결실
주요 선수의 군대 면제 이슈를 빼놓고 보더라도, 축구는 단연코 아시안게임의 인기 종목이다. 아시안게임 시작 전까지 이강인(파리 생제르맹) 선수의 차출 문제나, 6월에 있었던 중국 평가전 패배 등 많은 우려가 있었지만, 아시안게임 축구 대표팀 황선홍 호는 그러한 우려를 깨끗이 씻어내고 결승까지 단 2실점만을 허용하며 6경기 무패행진을 이어왔다. 그리고 대망의 7일 항저우 황롱체육센터체육관(黄龙体育中心体育场, 이하 황롱체육관)에서 결승전이 열렸다. 수많은 대한민국 국민을 마음 졸이게 만들었던 그 현장을 다녀왔다.
[사진=역에서 준비한 아시안게임 방문객 전용 통로]
결승을 앞두고 난징에서 출발해 항저우로 향했다. 아시안게임이 열리는 지역으로 이동하려는 사람들은 역 입구부터 다른 통로로 이동했다. 검문과정도 평소보다 더욱 까다로웠다. 항저우에 간다고 하니, 캐리어에 있던 모든 액체류를 직원에게 확인시켜 주고 나서야 역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항저우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경기장으로 가는 과정에서도 평소보다 한 차례의 검문을 더 거쳐야만 했다. 대신 쯔푸바오(支付宝) 미니프로그램 ‘亚运PASS’를 통해 티켓 인증을 하면 경기 당일과 차일 무료로 지하철과 버스를 탑승할 수 있었다.
[사진=무료로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는 ‘亚运PASS’ QR코드]
한국VS일본 경기에 중국인 관중이 대부분?
황롱체육관을 방문하기 이전에 E조 예선 경기를 치렀던 진화체육센터체육관(金华体育中心体育场)에도 가본 적이 있는데, 두 경기장의 온도는 사뭇 달랐다. 결승전이라는 타이틀 때문인지 황롱체육관은 입구부터 매우 많은 관람객으로 붐볐다. 경기장이 금세 관중으로 가득 채워졌다. 다소 특이한 점은 대부분이 중국 관중이었다는 점이다. 체감 상 90퍼센트의 관중이 중국인이었다.
당초 중국 축구대표팀의 목표는 메달권이었으나 8강에서 대한민국과 만나게 되어 조기 탈락하게 되었다. 중국에서 열리는 대회이기에 접근성이 좋아 결승전에 온 것도 있겠지만, 중국 대표팀의 선전을 기대하고 예매했다가 그냥 보러 오는 거 같기도 했다. 경기장을 가득 채운 관중 중에 일본인과 한국인은 소수였다. 지금까지 모든 한국 경기에서 중국 관중은 열정적으로 상대 팀을 응원했다. 지난 8강과 준결승에서는 더욱 압도적인 응원을 펼쳤다. 한국 관중은 중국 관중 사이에 끼어 소극적으로 응원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일본과 한국의 결승전에서 중국 관중이 어떤 팀을 응원할지가 소소한 화젯거리였다.
드디어 시작된 결승전
학생 기자이기 이전에 축구 팬으로서, 국제대회 축구 결승전을 설레고 떨리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주위에 결승전 표를 구하지 못해 아쉬워하는 축구 팬들이 많았기에, 수많은 한국인을 대표하여 응원하러 가는 것이라 책임감도 느껴졌다. 태극기가 입장하고, 뒤 이어 선수들이 경기장에 들어서자 결승전 시작이 코앞임을 실감했다. 타국에서 울리는 애국가를 들으며, 경기 이후 시상식에서 애국가를 다시 들을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휘슬이 불리고, 일본의 공격을 시작으로 결승전이 시작됐다. 일본은 경기 초반부터 우리 선수들을 강하게 몰아세웠고, 경기 시작 2분 만에 선제골을 터뜨렸다. 지금까지 6경기 중 선제 실점을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심지어 경기 극 초반에 실점한 탓에, 혹여나 한국 선수들이 이 기세에 휘둘릴까 걱정이 되었다. 골 넣은 직후에도 일본의 움직임이 상당히 공격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걱정을 잠재우며 전반 27분 정우영(슈투트가르트)의 헤더골이 터졌다. 8번째 골을 넣음으로써 정우영 선수는 이번 아시안게임 최다 득점자가 되었다. 득점 이후에는 한국 선수들의 움직임이 살아났다. 더욱 공격적으로 움직였고, 슈팅 및 점유율에서도 우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이렇게 전반전이 1대1로 종료되었다.
한국 선수들은 후반에서도 일본 진영에서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여주었고 결국 후반 11분 조영욱(김천상무)의 쐐기골이 터졌다. 이후 분위기는 완전히 한국으로 기울었다. 지난 준결승 경기에서 발목 부상을 겪은 엄원상(울산 현대)도 교체 투입되어 활동적인 모습을 보여주면서, 많은 축구 팬들을 안심시켰다.
이후로도 한국 선수들은 많은 슈팅을 시도했다. 이번 경기 일본이 5개의 유효슈팅을 기록한 것에 반해, 한국은 세 배에 달하는 14개의 슈팅을 기록했다. 이처럼 공격적인 모습을 통해 경기 내내 관중을 열광케 했다. 그러다 추가시간 6분이 종료되었다는 휘슬이 불리자마자 벤치에 있던 선수들이 경기장으로 뛰어나오며,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다.
[사진=아시안게임 3회 연속 금메달 기념사진을 찍는 대표팀]
선수들은 경기장을 돌며 여기까지 와준 팬들에게 감사인사를 전했고, 팬들은 열심히 경기에 임한 선수들에게 축하인사를 전했다. 경기 시작 전부터 조금씩 내렸던 비가 점점 더 많이 내리기 시작했지만, 경기장은 시상식을 보기 위한 사람들로 여전히 붐볐다. 중국인 관중도 핸드폰 조명을 켜고 축하 분위기에 동참했다. 가장 높은 곳에 걸려있는 태극기와, 중국 경기장에 울리는 애국가가 정말 감동적이었다. 길고 긴 시상식을 마치고 한국 선수들은 경기장에 남아 선수들끼리, 혹은 감독 및 코치진과 함께, 혹은 축구 팬들과 사진을 찍으며 금메달의 기쁨을 누렸다.
[사진=팬들에게 인사하러 다가오는 이강인]
[사진=설영우, 엄원상 선수]
[사진=조영욱 선수]
한국을 응원하는 중국(?)
경기장 안에는 한국인, 일본인 축구 팬보다는 아시안게임을 열기를 즐기러 온 중국인들이 많았다. 어느 한 쪽을 강하게 응원하는 분위기는 아니었으나, 그나마 한국에 대한 호응이 더 좋았다. 최근 명문구단 파리 생제르맹에 입단한 이강인 선수의 역할이 컸다. 이강인 선수가 드리블을 시도할 때마다 관중석에서 환호성이 터졌다.
그리고 중국 관중은 경기보다는 결승전 분위기를 즐기는 것에 더 집중하는 편이었다. 이전 경기에서 들었던 특정 대상을 향한 ‘OOO쨔요(加油)’라는 응원법은 들을 수 없었지만, 자체적으로 응원 리듬을 맞춰 불특정 대상(?)을 응원했다. 이외에도 중국인 관중은 경기 내내 파도타기를 유도하고, 경기 전이나 쉬는 시간에는 경기장 내부에 있는 각종 행사에 적극 참여하는 모습을 보였다.
환상에서 깨어나 현실로
선수들이 경기장에서 모두 퇴장한 이후, 운 좋게 버스에 탑승하려는 엄원상 선수와 조영욱 선수를 만나 사인을 받았다. 2019년 U-20 월드컵 때부터 응원했던 선수들이 이제는 아시안게임의 주역이 된 후 받게 된 사인이라 더욱 뜻깊었다. 뒤 이어 정우영 선수와 황선홍 감독님도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었다. 떠나가는 선수 버스에 인사하며, 꿈만 같았던 시간은 추억으로 넣어두고, 서서히 현실의 삶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타지에서 한국 축구 팬들과 함께 아시안게임 우승의 기쁨을 누리는 것을 정말 이루 말할 수 없이 감격스러웠다. 원래 축구 팬이었던 사람도, 축구를 잘 알지 못했던 사람도, 이 경기로 하나되어 온전히 기쁨을 누렸다. 앞으로도 한국 축구의 발전을 기원하며, 더 많은 경기에서 기쁜 소식을 들을 수 있기 바란다.
학생기자 박은비(난징대 국제경제무역학과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