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에 살면서 가장 아쉬운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가까이 산이 없다는 것. 또 하나는 필요한 책들을 쉽게 찾아 읽을 수 없다는 것. 한국에서는 전국 어디를 가든 뒷동산이 있고, 어느 동네든 도서관이나 서점이 있는데 말이다.
한국에서 해외 배송을 시킬 수도 있겠지만, 급하게 필요한 책 한 권을 물류회사 통해 받았더니 배송비만 4만 원을 넘게 낸 적도 있다. 전자책도 대안이 되겠지만 신간은 전자책이 없는 경우도 많다. 전자책이 있다 하더라도 아직까지 종이책에 밑줄 그어가며 읽는 것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책값의 70%에 육박하는 값을 들여 전자책을 사는 게 마뜩지는 않다.
그래서 위챗에 ‘책 벼룩시장’ 방을 만든 게 2017년 9월이다. 집도 차도 다 공유하는 시대인데 집에 묵히고 있는 책들을 돌려 읽고 나누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기왕이면 책과 사람, 문화와 예술에 관한 이야기가 넘치는 사랑방으로 자리매김되면 좋겠다는 희망으로 매주 화요일마다 책 소개 릴레이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다음 릴레이 주자를 호명하는 방식으로 자유롭게 진행하고 싶었다. 그런데 자신의 이름이 불릴까 봐 돌연 방 탈출(?)을 하는 사람들이 생기면서 본의 아니게 매주 다음 주자를 섭외해야만 했다. 거절도 많이 당했지만, 손사래를 치다가도 막상 자기 차례가 되면 근사한 글솜씨를 보여주는 분들이 많았다. 다크호스처럼 홀연히 나타나 멋진 글을 선사해준 분들도 계셨다.
그렇게 1년 동안 한 주도 빼지 않고 52명의 주자가 서평을 이어주셨다. 1주년이 되면서 그 글들은 차례로 상하이 저널 ‘책읽는상하이’에 실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3년을 계속 서평 써줄 사람들을 섭외하다가 더 이상 일방적으로 조르고 부탁하는 방식으로는 안 되겠다 싶어 고정 필진을 구성하게 되었다. 현재는 30여 명의 고정 필진이 1년에 두 번쯤 돌아가며 서평을 쓰고 있다. 그렇게 6년이 흘렀으니 300명이 넘는 주자들이 책 소개 릴레이를 이어주신 것이다.
[사진=2023 책벼룩시장 송년문학회 책 나눔]
코로나가 창궐하던 2020년에 첫 번째 책 벼룩시장 송년문학회를 개최했다. 그리고 올해 네 번째 송년문학회를 진행했다. 지난 4년간 코로나 시대를 고스란히 겪어온 셈이다. 작년 송년회 때는 제로 코로나 정책이 중단되어 주변의 거의 모든 사람이 코로나에 걸렸던 때다. 나 역시 코로나에 걸린 채로 온라인 송년문학회를 진행했었다.
올해 송년문학회의 주제는 ‘코로나 시대의 사랑’이다. <백년 동안의 고독>으로 잘 알려져 있고, 마술적 사실주의의 창시자로도 유명한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콜레라 시대의 사랑>을 패러디했다. 사실 이 작품은 시간을 넘어서는 로맨스를 그리고 있지만, 전근대적이고 불합리한 사회와 제도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기도 하다. 콜레라 시대는 병든 사회를 은유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도 코로나 시대를 겪으며 많은 불합리를 목격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폐쇄된 상황 속에서도 먹을 것과 생필품을 나누며 이웃 간의 정을 경험하기도 했다.
코로나를 겪으며 사람들은 인생관이 조금은 바뀐 것 같다. 악착같이 애쓰면서 살기보다는 누릴 수 있을 때 누리고 만날 수 있을 때 만나자는 쪽으로. 그래서일까? 이번 송년 문학회 초대에 그 어느 때보다도 호응이 많았던 것 같다. 코로나를 같이 헤쳐온 동지들처럼 우리는 포옹하고 어깨를 토닥이고 손을 잡고 눈을 응시했다. 필명이나 아이디로만 소통하던 사람들의 실물을 영접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격했다.
밥, 희생, 귤껍데기, 양파, 스며드는 것, 지켜봐 주고 응원해 주는 것, 많이 웃게 하는 것, 기다림, 환상, 표현하는 것, 목마름, 오래 참는 것, 지워지지 않는 것, 고양이를 만지기 전에 손을 씻는 것, 한없는 포용, 바라봐 주는 것, 절제, 나를 잘 돌보는 것이 사랑의 첫걸음, 더 큰 원, 나만큼 귀한 사람이 있다는 걸 새로 배우는 것….
우리는 각자의 언어로 정의된 사랑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며 같이 웃고 눈물을 글썽거렸다. 그렇게 우리는 더 큰 원을 그렸다. 그리고 나만큼 귀한 사람이 있다는 걸 새로 배웠고 또 배우게 될 것이다.
그는 원을 그려 나를 밖으로 밀어냈다
나에게 온갖 비난을 퍼부으면서
그러나 나에게는
사랑과 극복할 수 있는 지혜가 있었다
나는 더 큰 원을 그려 그를 안으로 초대했다
-Edwin Markham,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