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손꼽아 기다리던 체르마트 입성이다. 차가 다니지 않고 시에서 인정한 전기차만이 다닐 수 있고, 말이 끄는 마차를 수시로 볼 수 있으며, 양치기를 따라 졸졸졸 줄서서 지나가는 산양 떼를 도시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곳이 바로 체르마트였다. 기차역 앞에서는 나이 지긋하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스위스 호른을 멋지게 연주하고 여러가지 타악기에 맞춰 노래하는 모습에 저절로 발걸음을 멈추게 되는 매력적인 곳. 난 무엇때문에 이곳이 그리도 궁금하고 직접 와 보고 싶었는지 모르지만 체르마트 기차역에 내리는 순간부터 난 모든 것이 새로웠고 그동안 잠자고 있는 나의 여행 세포들이 깨어나는 기분이 들었다.
세계 각국에서 이곳 체르마트를 찾는 이유는 단연 마테호른을 보기 위한 것 일 것이다. 자연이 만든 최고의 산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의 뾰족한 봉우리는 사진으로 볼 때 보다 훨씬 웅장하고 매력적이었다. 해뜰녁엔 떠오르는 태양빛을 받아 단 몇 분간 황금호른으로 변신하기도 하고, 한밤중엔 깜깜한 어둠속에서도 수많은 별들과 장엄한 자태를 보여주기도 한다. 일년 365일중에 1/3정도만 맑은 하늘에 우뚝 솟은 마테호른을 볼 수 있다고 하는데 바로 오늘이 그날인가 보다. 두근대는 마음으로 이른 아침을 먹고 고르너그라트를 오르기 위한 기차역으로 출발했다. 30분정도 산악 열차를 타고 올라가 종점에 내리면 내 눈앞에 마테호른이 우뚝 서있다.
앞선 10일동안 내가 오른 스위스 산은 기차와 케이블카를 타고, 또는 하이킹으로 산의 정상에 올랐다. 산의 정상에 오르면 내가 세상의 중심이 된 듯 산을 중심으로 한360 파노라마뷰를 선물로 받을 수 있다. 산의 정상을 밟으면 또 다른 산봉우리들을 감상할 수 있으며 저 아래로 흐르는 강줄기를 한눈에 볼 수 있다. 하지만 정작 내가 오른 산의 모습은 보지 못한다. 산을 올랐지만 그 산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전체적인 모습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마테호른은 나 같은 보통사람들은 오르지 못한다. 오를 생각과 시도도 하지 못하는 산이다. 대신 마테호른을 만나기 위해 마테호른을 마주보고 있는 고르너그라트 전망대에 오른다. 구름 한 점 걸치지 않은 마테호른을 넋 놓고 한없이 바라본다. 저 산을 오르기 위해 인간은 수많은 도전을 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도전을 쉬지 않는다. 막상 내 눈앞에 장엄하게 서있는 마테호른을 보니 자연 앞에 겸손해질 수밖에 없음을 느끼게 된다.
산을 보기 위해 그 산을 오르지 않고 반대편 산을 오르는 건 마테호른이 유일했다. 마테호른 정상을 오르진 못했지만 대신 난 마테호른의 완벽한 자태를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산 정상을 오르진 못하지만 조금 떨어진 곳에 서면 자연이 만든 놀라운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준 마테호른. 산은 자연을 정복하려고 하지 말고 한발짝 물러서서 바라봐 주길 바라는 것 같다. 그러면 자연은 나에게 있는 그대로의 완벽한 자태를 선물로 준다.
한참 마테호른을 감상하고 다시 마을로 내려오니 마을 한 가운데 자리잡은 공동묘지가 보인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마테호른을 오르다 세상을 떠난 이들의 이름과 년도가 새겨져 있다. 묘지앞에서서 마테호른을 오르는 많은 이들의 생명을 안전하게 지켜주시길 조용히 눈감아 기도해 본다.
잎새달스물이레(abigail9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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