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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아 | 이야기장수 | 2022년 10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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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아 작가의 짤막짤막한 글들을 좋아했다. 글 속에 있는 유쾌함에 웃다가도 다시 한번 돌아 읽게 되는 진중함이 좋았다. 그가 낸 장편소설이라는 소식에 반가웠지만 “가녀장”이라는 시작부터 적나라한 단어에 약간의 의구심을 가지고 시작했다.
책의 화자 이슬아는 출판사 사장님이자, 작가이자, 글쓰기 선생님이다. 실제로도 그렇다. 태초에 가부장이 있었던, 삼대가 함께 살았던 가정의 증손녀 ‘슬아’는 자라서 사장님이 되고, 어머니 복희와 아버지 웅이를 피고용인으로 삼아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다. 회사는 당연지사 능력 중심이므로, 맡은 업무의 전문성과 효용성을 감안해 복희는 출판사의 중역직을, 웅이는 말단직을 맡고 있다. 그리하여 바야흐로 ‘가녀장’ 체제의 가족으로 살고 있다.
고용관계로 얽혀 있는 세 사람의 관계는 매우 수직적이다. 업무시간에는 무조건 존댓말로 서로를 대하고, 각자의 업무 분장에 매우 냉철하다. 그 덕분에 본인이 맡지 않은 일에 대한 스트레스가 전혀 없다. 예를 들자면 성공한 사장님에게 ‘고용’되어있는 피고용인으로서의 복희와 웅이는 내 집 마련에 대한 스트레스도, 성공 또는 마감에 대한 스트레스도 없다. 출판사의 청소는 말단직인 웅이(슬아의 부친) 담당이므로, 웅이의 상관인 복희(슬아의 모친)는 과자를 먹을 때 바닥에 흘리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가 없다. 가부장적인 시아버지와 함께 열한 식구의 살림을 도맡아 하면서도 노동의 대가는 꿈도 꿀 수 없었던 복희는 이제 슬아의 회사에 취직해서 가장 잘하는 살림으로 꼬박꼬박 월급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회사의 복지로 누리는 김장 보너스, 된장 보너스 등도 꽤나 쏠쏠하다.
업무시간 이외의 세 사람의 관계는 꽤나 끈끈하다. 모부인 복희와 웅이는 매일매일 마감스트레스로 마음 고생할 슬아의 건강을 챙기고, 슬아는 사내 복지라는 명분 아래 모부의 특별 여행과 운동, 스팀 걸레, 무선 청소기 등의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사장님의 운전기사 역할을 하는 동안 웅이와 슬아 사이에는 소소한 대화가 끊이지 않고, 회사로 찾아오는 손님들로부터 복희는 지난날의 자신을 돌아보기도 하고, 변화하는 세상을 배워보려 노력하기도 한다.
이 책은 무엇보다, 너무 재미있다. 마치 코믹 작가가 쓴 가족 시트콤을 보는 느낌이어서 혼자서 킬킬거리면서 웃다가, 또 한 순간 코끝이 찡해져 온다. 피고용인인 모부에 대한 슬아의 마음들이 너무 애틋해서, 슬아에 대한 복희와 웅이의 마음이 너무 따뜻해서, 처음 의구심은 중요하지 않게 된다. ‘당근마켓’에서조차 높은 친절 점수로 올해의 인물로 선정되고, 회사로 오는 수많은 이메일에 거절하는 메일을 쓸 때도 정중한 마무리를 고심하는 복희씨와, 딸의 친구 미란이네 집에 전기 퓨즈가 나가거나, 수도관이 터졌을 때 ‘왜 나한테 묻냐?’라고 하면서도 척척 도와주는 친구 아빠 웅이의 모습에서 좋은 어른의 모습이 보여 내내 흐뭇하게 읽어 갔다.
또한 내가 얼마나 유연하지 못한 사고를 하는 사람인지 알게 되었다. 작가가 사용하는 “모부”라는 말조차 생경하고, 고전적 성역할에 대한 부분 역시도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수긍해왔구나, 내가 나의 엄마를, 엄마인 지금의 나를 그렇게 대하고 있었구나! 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책 속 복희와 웅이의 생활을 보며, 오! 괜찮은데? 싶어 딸과 아들에게 장차 나를 고용하고 싶은 마음이 조금이나마 있는지 물어봤다. 아이들 각자의 방식으로 나름 건설적인 답변을 한다. 남편에게 이야기했더니 ‘나는 싫어, 청소 안 할 거야!’라고 하지만 그 역시 가부장의 어깨에 너무 무거운 짐을 지는 이 사회에서 ‘가부장’이기를 포기하고 싶다는 말을 노래처럼 하는 사람이니 귀가 솔깃해질 것이다.
개학한 딸에게 책을 들이밀었다. 진짜 재미있는데 한번 읽어봐! 미래의 고용주가 될지도 모를 ‘그’이다.
변영아
외국에 살다 보니 필요한 책들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 이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자 책벼룩시장방이 위챗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그리고 2017년 9월부터 한 주도 빼놓지 않고 화요일마다 책 소개 릴레이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아이의 엄마로, 문화의 소비자로만 사는 데 머무르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온 여성들의 이야기를 상하이 교민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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