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애들이 그러는데, 나 처음에는 되게 착했는데, 지금 좀 못돼졌대. 그런데 지금의 내가 더 좋아. 나 지금 더 행복해.”
아이의 이 말을 들었을 때, 내 마음속에 숨겨져 있던 무언가가 탁 하고 풀리는 듯했다. ‘못돼졌다고? 그런데 지금이 훨씬 행복하다고?’ 새로운 환경이 던져준 변화는, 그렇게 우리 두 사람에게 작지만 중요한 깨달음을 주고 있었다. 그 과정이 결코 쉽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상하이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이의 허벅지에 사마귀가 생겼다. ‘왜 하필 지금?’이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한국에 있을 때 해결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어떻게 의료 시스템을 이용할 수 있는지도 모르는 상태였다. 낯선 도시에서 선택지가 적어졌다는 불안감이 나를 긴장시켰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이 문제를 신속하게 눈앞에서 치우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왜 하필 지금?’이라니, 웃기는 질문이지 않은가? 한국에 그대로 있었다면 면역력이 이렇게까지 떨어질 일은 없었을 테니까.
아이에게는 이전에도 사마귀가 생긴 적이 있었다. 그때는 잠자기 전 아이에게 마른 대추를 반창고로 붙여주었었다. 두 번째 밤, 아이가 잠든 사이 사마귀는 금방 떨어져 나왔다. 이번에도 같은 방법을 시도했지만, 웬걸? 소용이 없었다. 중국 대추라서 그런가? 그런 생각을 하며 의심이 들었지만, 그만큼 아이가 낯선 생활에 적응하느라 온 힘을 다 쏟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새로운 환경의 압박은 분명히 나와 아이의 몸을 흔들고 있었다. 이는 전형적인 ‘스트레스’ 반응으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단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마음과 몸을 기계처럼 설명하는 발상에서 비롯된 언어이기 때문이다. 약 70년 전 심리학이 차가운 행동주의 흐름 속에서 마음을 잃어버릴 때, 의학계에서는 질병의 불특정한 공통 요인을 스트레스라고 명명하기 시작했다. 마치 만성적인 긴장(strain)으로 인해 엔진이 압력(stress)을 받아 기계가 고장 나는 것에 비유되는 것이다.
나는 원래 오염되거나 이상 증세를 말끔히 제거하는 방식의 처지를 좋아하지 않았다. 증상 제거 위주의 전염병 모델로 발전한 의학적 접근보다, 사람의 온기를 느낄 수 있는 따뜻한 이야기를 더 좋아한다. ‘왜 내가 이 병에 걸린 걸까?’, ‘어째서 하필이면 지금이지?’, ‘그래서 나는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걸까?’ 와 같은 존재에 대한 질문에 의학의 답은 미미하다. 몸의 보편적인 측면에 집중할 뿐, 개인의 고유한 서사를 놓치기 쉬운 것이다. 나의 고유한 몸과 마음이 어떻게 반응하고 변화하는 지를 더 깊이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의 서사를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밤마다 엄마를 독차지하려는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이어졌다. “다 컸다”고 혼자 자겠다던 아이들이, 학교에서 저마다 힘든 시간을 보내고, 나를 두고 벌이는 작은 전쟁들. 그리고 그즈음, 나 역시 발에 난 상처가 점점 깊어져 가고 있었다. 화창한 하늘에서 갑작스럽게 쏟아지는 여름의 상하이 비. 고인 물을 여기저기 첨벙첨벙 밟고 다니다 보니 세균 감염이 심했던 것 같다.
처음으로 난 타오바오와 얼러마와 같은 앱에서 약 배송을 시도해 보았다. 생전 처음 중국 의약품을 접해 보는 순간이었다. 항생제를 성분명으로 검색하고, 간단하게 증상을 체크한 뒤, 연결된 의료진과 파파고를 활용하여 채팅을 했다. 간편하고 빠른 절차에 놀라웠다. 게다가 당일 배송까지. 의약 분업이 되기 이전 나의 어린 시절, 병아리를 위한 ‘마이신’을 사러 갔을 때보다 더 쉬운 것 같았다.
나라와 언어만 다른 게 아니라, 새도 풀도 벌레도 다 다르니, 바이러스며 세균총도 당연히 다르지 않겠는가?! 내가 즐겨 하던 언어 표현이 막히고, 내가 활용하던 지식이 소용없어지며 내 몸에서 준비해 오던 면역 체계에도 빈틈이 생긴 것 같았다. 전반적으로 나를 지키기 위해 가지고 있던 것들이 취약해졌다. 게다가 나는 상실감에 압도되면 포기한 듯한 선택을 연이어 하면서 자신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리는 것 같았다. 결과적으로 난 발에 생긴 상처 하나 스스로 치유하기 버거워하고 있었다.
“엄마 너무 힘들어. 나 세상을 너무 빨리 알아버린 것 같아. 엉엉”
아이의 말에 순간 멈칫했다. 잠투정하던 아기였을 때, 아이가 말할 수 있었다면 아마 이와 비슷한 말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10년이 지나 또래가 자신을 어떻게 보는지가 중요한 나이가 되었다. 세상을 알아버린다는 것은 달리 말하면, 자기가 어떤 사람이고 싶은지 조금씩 느끼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자신이 이전과는 달라져야 할 이유를 발견했다는 것이기도 하다. 무너지는 듯했지만, 그 속에서 새로운 자신을 찾아가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당분간 너무 빨리 자라야 했다.
어려운 문제에 봉착하거나 불편한 증상을 다뤄야 할 때, 고통을 더 잘 견디고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해주는 것은 결국 자기 존재를 이해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인간은 기계가 아니라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아픔은 내가 나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그리고 주어진 상황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 지를 되짚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자신의 고통에 담긴 의미를 이해하는 것은 하행성 통증 조절 경로를 활성화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자기 존재의 정당성을 증명하겠다는 마음으로, 암 선고 이후에 오히려 더 왕성한 활동으로 삶을 되찾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아이의 사마귀가 더 번지게 될지, 아니면 떨어져 나갈 지가 나에게 중요한 의미로 다가왔다. 아이가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이 도전받는 환경 속에서 어떻게 새롭게 자신을 믿어가는 지를 나에게 시각적으로 확인시켜 줄 수 있는 징표가 되었던 것이다.
“당분간 힘들 거야. 반년, 아니 4개월만 견디면, 어느 정도 익숙해질 거야.”
예민하고 섬세한 사람들은 새로운 근무 환경에 적응하는 것도, 낯선 타인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것도, 심지어 자기가 사랑한다고 믿는 사람 앞에서 편안하게 말을 할 수 있게 되는 것도, 그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자기가 낳은 아이마저도 낯설어서 정을 못 주는 경우도 보았다. 너무나 감각이 민감하기 때문에 자극에 대한 경계심이 높은 것이다. 나에게 큰 아이도 그런 특성으로 보였다. 자신의 매력이 편안하게 공유되거나 역할에 몰입하기에 시간이 걸리는 아이. 그러나 정해 놓으면 꾸준함을 보이는 아이.
“엄마, 그런데 그때 어떻게 알 수 있었어? 4개월이 지나면 괜찮아진다는 걸?”
결국, 환경의 변화 속에서도 스스로를 더 깊이 이해하고 표현해 나가는 것, 그것이 바로 치유였다. 이 글을 만나게 된 모든 분들이 자신의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표현하며 지낼 수 있기를 바라며.
뮤약사(pharmtend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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