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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 상하이 256] 연남동 빙굴빙굴 빨래방

[2024-10-25, 02:49:52] 상하이저널
김지윤 | 팩토리나인 | 2023년 08월 18일
김지윤 | 팩토리나인 | 2023년 08월 18일

빨래방에 대한 나의 인상은 그리 유쾌하지 못하다. 개인적으로 예전 일본 여행 때 빨래방에서 겪었던 기분 나쁜 기억과 함께 TV 속 사건 사고의 단골 장소일 것도 같고 범죄 영화 속 누와르가 한바탕 벌어질 것 같기도 한 다분히 생경한 분위기. 타인과 타인이 ‘빨래’라는 원초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여들지만 소통의 창구로서는 전혀 이용되지 못하는 요즈음의 각박한 현실 상황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 소설 <연남동 빙굴빙굴 빨래방>은 천선란 작가의 서평대로 우리가 빨래방이라면 으레 이러한 모습이었으면 하는 바람을 노골적으로 그려낸 판타지 아닌 판타지다. 하고많은 빙글빙글도 아닌 빙굴빙굴, 의태어마저 정겹다.  빙굴빙굴 빨래방은 연남동에 있는 24시간 무인 빨래방이다. 산뜻한 시그니처 섬유유연제 향이 은은히 풍기는 그곳에는 빨래방을 특별하게 만들어 주는 다이어리가 있다. 
 
다이어리에는 독거노인, 경제적인 어려움과 산후우울증에 지친 엄마, 관객 없는 버스킹 청년, 만년 드라마 작가 지망생, 데이트 폭력 피해자, 아들을 해외에 보낸 기러기 아빠, 그리고 보이스 피싱으로 가족을 잃은 청년의 이야기까지… 작품 속 다이어리에 글을 남기는 사람들은 내가 될 수도, 당신이 될 수도, 또 우리가 될 수도 있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다. 그들이 고민하고 겪고 있는 일들 또한 현실과 전혀 동떨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많은 공감대를 자아낸다. 

 우리와 닮은 이들이 빙굴빙굴 빨래방에 놓인 다이어리에 일상에서는 차마 말할 수 없었던 다양한 고민과 진솔한 마음을 털어놓고, 또 다른 누군가가 그 글을 읽고 위로의 답글을 적는다. 그사이 건조가 끝나 뽀송해진 빨랫감처럼 공통 분모도 없는 이들이 서로의 마음을 다독여주는 모습을 멀리서 훔쳐보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마음은 함께 세탁된다.  왠지 기분 좋은 느낌, 우리 같은 주부라면 아마도 이해할 것이다. 잘 건조된 빨래가 주는 포근함 말이다.  

이 세상에 고민 없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때로는 자신의 고민을 다른 이와 나누면서 스스로는 찾지 못한 해답을 얻기도 할 것이고 또 누군가는 답을 찾아주려는 그 행위만으로도 깊은 위로를 얻게 될지도 모른다. 어쩌면 누군가가 나의 말에 귀 기울여준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만으로도 큰 힘을 얻을 수 있는 것 아닐까.  

<연남동 빙굴빙굴 빨래방>은 따스한 한편의 코믹 드라마 같은 소설이다. 책을 읽으며 여러 번 가슴 뭉클함으로 코끝까지 찡해지면서 이렇게 서로의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 냄새 나는 빨래방이 실제 어딘가에 존재하지 않을까 핸드폰 검색창을 열었다. 그러면서 빙굴빙굴 빨래방을 투영하여 녹록지 않은 타지 생활의 따뜻한 온기가 될 수 있는 '상하이희망도서관'의 역할도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작가가 건네는 강력한 위로, 우리 글이 주는 힘을 믿어 의심치 않기에…. 상해 교민의 작은 바다(본문 중에서 참조)가 되고 싶다.   
 
-본문 중에서 
대주의 등 뒤에서 세탁기 한 대가 조용히 돌아갔다. 철썩철썩 파도 소리를 내면서 하얀 빨래가 세탁기 안에서 돌다가 떨어지고 다시 올라가기를 반복했다. 또 누군가의 고민이 묻어 있는 묵은 빨래가 깨끗해지는 중이었다. '누구나 목 놓아 울 수 있는 자기만의 바다가 필요하다. 연남동에는 하얀 거품 파도가 치는 눈물과 슬픔도 씻어 가는 작은 바다가 있다' 

김현정

외국에 살다 보니 필요한 책들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 이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자 책벼룩시장방이 위챗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그리고 2017년 9월부터 한 주도 빼놓지 않고 화요일마다 책 소개 릴레이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아이의 엄마로, 문화의 소비자로만 사는 데 머무르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온 여성들의 이야기를 상하이 교민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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