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무비자 조치 시행 이후, 주말을 이용해 상하이를 방문하는 한국인 관광객이 급증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상하이시 황푸(黃浦)구에 위치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유적지는 한국 여행객들이 즐겨 찾는 명소 중 하나다. 천링(陳凌) 관장은 무비자 정책 시행 이전과 비교해 한국인 방문객이 크게 늘었으며, 특히 주말에는 하루 평균 300~400명이 증가했다고 전했다. 많은 이들이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처음 설립된 상하이 임시정부 유적지만을 떠올리지만, 임시정부는 상하이를 떠난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이동하며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이 과정에서 저장성(浙江省) 항저우(杭州)에 위치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 역시 중요한 거점이 됐다.
임시정부 설립의 배경
[사진=예전 상하이 임시정부의 모습(출처: 네이버)]
[사진=임시정부 이동 지도]
1919년 3월 1일, 일제의 식민 통치에 저항하는 거대한 독립운동이 한반도 전역에서 시작됐다. 하지만 3.1 운동을 통해 독립을 향한 열망이 확인된 만큼, 이를 조직적으로 이끌어갈 지도부의 필요성도 절실해졌다. 이에 독립운동가들은 해외에서 항일운동을 체계적으로 전개하기 위해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하기로 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19년 4월 11일, 중국 상하이에서 공식적으로 출범했다. 임시정부는 임시의정원을 구성해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정하고, 민주 공화제를 표방하는 임시헌장을 공표했다. 이렇게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19년부터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이할 때까지 27년간 독립운동을 이어갔다.
일제의 탄압이 거세지면서 임시정부는 상하이를 시작으로 항저우(杭州), 전장(镇江), 창사(长沙), 광저우(广州), 류저우(柳州), 치장(綦江), 충칭(重庆)으로 청사를 옮겨가며 끊임없이 활동을 이어갔다. 이처럼 3.1 운동을 계기로 출범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독립운동의 중심축으로 자리 잡으며, 이후 중국 각지에서 펼쳐진 항일 투쟁의 거점이 되었다.
항저우 시기의 임시정부, 무장투쟁과 국제 연대 강화
[사진=항저우 임시정부 시기 국무위원들]
1932년 4월 29일, 윤봉길 의사는 상하이 홍커우 공원에서 폭탄을 투척하여 일본군 고위 인사들을 처단하는 의거를 감행했다. 이 사건으로 일본은 상하이 내 한인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탄압을 강화하였고 프랑스 조계 당국도 일본의 압력에 따라 임시정부에 대한 불간섭 정책을 철회하고 탄압에 협조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임시정부는 더 이상 상하이에 머무를 수 없었고 1932년 5월 상하이를 떠나 저장성 항저우(杭州)로 이동했다. 항저우는 1932년부터 약 3년 6개월 동안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요 활동지였다. 영화 암살의 주요 배경이기도 한 이곳에서 독립운동가들은 일본의 감시를 피해 독립운동을 지속하며 새로운 전략을 모색했다.
항저우로 옮겨온 임시정부는 독립운동을 지속하기 위해 조직을 재편하고, 외교·재정·군사 등 각 분야에서 독립운동의 최고 기관으로서 역할을 수행했다. 1933년 12월, 임시의정원 정기회의에서는 기존의 의열투쟁뿐만 아니라 점진적인 군사 활동, 대중운동의 무장 투쟁화 등을 결의했다. 이는 단순한 독립운동을 넘어 장교 양성과 군사 교육 강화를 통해 조직적인 항일 전투를 준비하겠다는 전략적 선언이었다. 또한, 임시정부는 1934년 4월 ‘외무부 행서 규정을 발표하여 국내외 주요 거점에 외교 대표부를 설치하고 국제적 지원을 확대했다. 같은 시기, 임시정부는 열악한 재정을 해결하기 위해 미국 하와이, 로스앤젤레스, 샌프란시스코, 뉴욕 등지에 재무부 행서를 설치하고, 재미 한인 사회의 모금 활동을 통해 독립운동 자금을 조달했다.
임시정부의 이러한 노력은 독립운동가들에게 경제적 기반을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해외 거주 한인들에게도 민족정신과 항일 의식을 고취하는 계기가 되었다. 항저우에서의 시기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국제적인 독립운동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본격적인 무장 투쟁을 준비하는 중요한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독립운동의 숨결을 간직한 항저우 임시정부 기념관
[사진=독립운동가 침실]
항저우에서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활동을 기리기 위해, 2007년 항저우시와 대한민국 정부의 협력으로 '대한민국임시정부항주구지기념관(大韩民国临时政府杭州遗址纪念馆)'이 복원되었다. 당시 독립운동가들이 사용했던 건물을 그대로 보존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남긴 역사의 흔적을 후대에 전달하고 있다. 현재 기념관 내부에는 임시정부 요인들이 사용했던 공간이 재현되어 있으며 임시정부의 외교 활동, 군사 전략, 독립운동의 과정 등을 기록한 다양한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는 항저우가 단순한 피난처가 아니라 독립운동의 중요한 거점이었음을 보여준다.
106년이 지난 오늘, 항저우 대한민국 임시정부 유적지는 단순한 역사적 장소를 넘어 독립운동 정신을 기리는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의미를 되새기며, 독립운동가들의 헌신과 희생을 기억하는 것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중요한 과제다.
•운영시간: 오전 9시~오후 4시 30분
•입장료: 무료
•杭州市上城区长生路55号
(지하철 1호선 龙翔桥站 D3 출구 도보 5분
(버스 7번, 35번, 12번 中山中路 정류장 하차
글, 사진_ 학생기자 이하늠(저장대 정치행정학과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