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메뉴

상하이방은 상하이 최대의 한인 포털사이트입니다.

[허스토리 in 상하이] 그녀의 응원이 배달 왔습니다

[2022-04-08, 15:44:06] 상하이저널

상하이 푸시 지역 봉쇄 전날 밤, 비까지 내려 기분도 뒤숭숭하던 밤이었다. 낯선 전화번호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상대방은 다급한 목소리로 빠른 중국어를 쏟아내고 끊어버렸다. 얼추 알아 들은 단어 몇 개로 추측해보면 곧… 배달… 찾아가라…. 는 의미 같았다. 주문한 것도 없는 데다 대부분의 배달도 다 끝난 시각에 내 물건을 배송하고 있다니. 잘못 온 전화인가 싶었는데, 같은 번호로 또 전화가 왔다. 아파트 정문에 물건을 두고 가니 찾아가라고. 이상했고, 긴장도 되었다. 

배달 물건 보관소에는 아직 주인이 찾아가지 않은 종이 상자와 비닐봉지들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장미꽃 한 다발이 독보적인 존재감을 뽐내며 놓여 있었다. 설마 하며 꽃다발에 쓰여있는 주소를 보니 우리 집이었다. 이 시국에, 이 시각에, 장미꽃이라니. 게다가 좀 전까지 누군가의 정원에 있었던 것처럼 싱싱하고 달콤한 향의 빨간 장미였다. 

그녀였다. 늘 기발하고 따뜻한 서프라이즈 선물로 나를 감동시키는 그녀. 상하이 봉쇄 소식을 듣고 그녀답게 우아하고 센스 넘치는 응원을 북경에서부터 보낸 것이다. 이 꽃들을 보면서 버텨보라는 메시지와 함께. 봉쇄되기 전날 밤에 꽃을 배달해줄 수 있는 곳을 찾느라 애를 먹었다고 했다. 아마 꽃 값도 평소보다 훌쩍 뛰었을 것이다. 비 맞은 장미 꽃다발을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꽃 한 다발이 이다지도 포근할 수 있는지를 또 한 번 느꼈다. 


그 즈음에는 봉쇄기간을 대비하느라 식료품과 생필품을 사러 다니느라 분주했다. 물, 쌀, 라면 등이 부족할까 싶어 눈에 보일 때마다 사고 또 샀다. 생존에 급급했던 내게 예상치 못한 꽃 선물은 팽팽하던 일상의 긴장을 풀어주었다. 

꽃이 사치품으로 느껴지던 시기도 있었다. 행여 누군가에게 꽃 선물이라도 받으면 황송한 마음에 어쩔 줄 몰라 했다. 꽃 보단 밥, 밥 보단 술을 더 좋아하던 자칭 실속파 시절을 오래 보냈다. 언제부터인지 꽃에 대한 빗장이 스르르 풀렸다. 꽃 선물을 하는 것도, 받는 것도 좋아졌다. 꽃이 좋아진 나이가 되어버린 것 일까. 어쩌다 보니 꽃 좋아하는 지인들이 주변에 있어서 그 영향을 받은 것 일까. 엄마 닮지 않아 예쁘고 귀여운 것을 보면 감탄하는 딸내미를 둔 탓 일까. 어쩌면 꽃 자체보다는 나를 생각하며 꽃을 골랐을 상대의 마음을, 상대에게 어울리는 꽃을 고심하며 고른 내 마음의 가치를 알게 되어서 일지도 모르겠다. 

일주일 넘게 이어지는 봉쇄 생활에 나도 장미도 시들시들해져 가고 있다. 하지만, 봄 햇살을 마음껏 쬐는 것조차 사치스러운 지금, 거실 한편에 꽂혀있는 장미의 존재가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모른다. 우리 천천히 시들어가자고 마음속의 말도 건넨다. 한 번씩 장미꽃에 코를 묻고 그 향기를 깊게 들이마셔보기도 한다. 시들해질지언정 향기는 점점 더 진해지고 달콤하다. 

그녀의 응원은 잘 도착했고, 여전히 그 효력을 발휘하는 중이다. 

레몬버베나(littlepool@hanmail.net)

ⓒ 상하이방(http://www.shanghaibang.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전체의견 수 0

댓글 등록 폼

비밀로 하기

등록
  • [허스토리 in 상하이] 오늘은 또 뭘 먹지? hot 2022.04.01
    코로나 바이러스로 전 세계가 긴장한 지 어언 2년이 넘었는데 변이바이러스 오미크론이 최근 상하이에도 퍼지고 있어 며칠 전부터 아이들은 온라인수업, 남편도 재택근무..
  • [부임인사] 신선영 한국무역협회 상하이지부장 2022.03.28
      신선영 한국무역협회 상하이지부장/수석대표 안녕하십니까? 이번에 한국무역협회 상하이지부장으로 부임한 신선영입니다. 입국 일주일 전부터..
  • [허스토리 in 상하이] 우리 집 금쪽이 hot 2022.03.23
    내가 즐겨보는 방송 중에 ‘금쪽같은 내 새끼’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제목의 ‘금쪽이’란 뜻은 아주 귀한 의미로 쓰이지만 사실, 방송 내용은 문제 있는 아이와 부모..
  • [허스토리 in 상하이] 우리는 저마다 다른 이유로.. hot 2022.03.18
    코로나로 인해 2년이 넘도록 한국에 가지 못했다. 10년 남짓 중국 생활 동안 단 한 번의 향수병도 없었던 나조차 요즘은 언제쯤 한국에 갈 수 있을까, 목이 빠져..
  • [허스토리 in 상하이] 봄으로 가는 길목, 강변.. hot 2022.03.12
    지난 12월의 마지막 날, 두 아이와 함께 베이징발 비행기에 몸을 싣고 상하이로 향했다. 새로운 해를 이곳에서 시작하게 됨에 묘한 기대감마저 생겨 두 볼은 복숭앗..

가장 많이 본 뉴스

종합

  1. 中 외국계 은행 ‘감원바람’… BNP..
  2. 상하이, 일반·비일반 주택 기준 폐지..
  3. 텐센트, 3분기 영업이익 19% ↑
  4. 中 무비자 정책에 韩 여행객 몰린다
  5. 中 근무 시간 낮잠 잤다가 해고된 남..
  6. JD닷컴, 3분기 실적 기대치 상회…..
  7. 바이두, 첫 AI 안경 발표…촬영,..
  8. 中 12000km 떨어진 곳에서 원격..
  9. 불임치료 받은 20대 중국 여성, 아..
  10. 금값 3년만에 최대폭 하락… 中 금..

경제

  1. 中 외국계 은행 ‘감원바람’… BNP..
  2. 상하이, 일반·비일반 주택 기준 폐지..
  3. 텐센트, 3분기 영업이익 19% ↑
  4. 中 무비자 정책에 韩 여행객 몰린다
  5. JD닷컴, 3분기 실적 기대치 상회…..
  6. 바이두, 첫 AI 안경 발표…촬영,..
  7. 中 12000km 떨어진 곳에서 원격..
  8. 금값 3년만에 최대폭 하락… 中 금..
  9. 中 하늘 나는 ‘eVTOL’ 상용화에..
  10. 샤오미, 3분기 매출 17조…역대 최..

사회

  1. 中 근무 시간 낮잠 잤다가 해고된 남..
  2. 불임치료 받은 20대 중국 여성, 아..
  3. 上海 디즈니랜드, 12월 23일부터..
  4. 상하이 심플리타이, 줄폐업에 대표 ‘..
  5. 유심칩 교체 문자, 진짜일까 피싱일까..

문화

  1. [책읽는 상하이 259] 사건
  2. [책읽는 상하이 260] 앵무새 죽이..
  3. [신간안내] 상하이희망도서관 2024..
  4. 상하이 북코리아 ‘한강’ 작품 8권..

오피니언

  1. [인물열전 2] 중국 최고의 문장 고..
  2. [허스토리 in 상하이] 상하이 한인..
  3. [무역협회] 미국의 對中 기술 제재가..
  4. [허스토리 in 상하이] 당신은 무엇..
  5. 상해흥사단, 과거와 현재의 공존 '난..
  6. [박물관 리터러시 ②] ‘고려’의 흔..
  7. [허스토리 in 상하이] 떠나요 둘이..
  8. [산행일지 9] 세월의 흔적과 운치가..

프리미엄광고

ad

플러스업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