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 기념
오는 8월 15일은 62주년 광복절이다. 광복절에는 하얀 저고리와 검정치마에 태극기를 흔들었던 역사의 한 장면이 생각이 난다.
언제 어느 곳에서나 우리 민족을 대표하며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태극기를 우리는 아끼고, 제대로 알아야 한다. 오늘 이 태극기의 숨겨진 비밀을 자세히 파헤쳐보자.
태극기 탄생의 비화
태극기의 최초의 이름은 `조선국기' 였다. 1882년 8월 9일 특명전권대사 겸 수신사였던 박영효가 일행과 인천에서 일본 배를 타고 일본으로 건너갈 때 우리 나라임을 나타내기 위해, 그 동안 조정에서 거론되고 있던 내용에 근거해 태극사괘(太極四卦)를 그려 게양했던 것이 시초다. 그 후 태극괘의 여러 변화를 거친 후, 대한민국 초대 문교부 장관인 안호상(安浩相)박사가 설치한 국기제정위원회(國基制定委員會)가 현재의 태극기가 결정했다. 그러나 그 긴 흐름 속에서도 본래의 의미와 변화에서는 큰 차이가 없었다.
그 태극 문양, 세계 인류의 공통
우주관의 형상
태극기를 보며 주위에서 그 태극괘의 오묘함과 절묘함에 감탄을 하는 외국인을 자주 보곤 한다. 그래서일까 최초로 태극기를 과학적으로 풀이한 것은 우리나라의 학자가 아닌 미국인인 Willy Hilter라는 사람이었다. 북태평양 철도회사의 기사였던 그는 1902년 「시카고」 세계박람회에서 우리의 태극마크를 보고 따다가 그 회사의 상표로 사용하고, 태극에 대한 연구를 통해 논문까지 쓰기에 이르렀다. 또 다른 이는 바로 세계 제1차 대전을 일으켰던 독일 황제 Willhelm 2세(1859∼1941)이다.
그가 `도른'학회를 조직해 발표한 학술논문에서 그는 우리 태극기에 대해 단순히 태극역학에서 나온 것이라는 단순한 결론을 뒤집으며 고대 원시사회에 있어서 세계인류의 공통 우주관의 시발점이라 명명하였다.
그리고 어느 누구도 이와 같은 형상을 마음 속에 그릴 수 있으나 이를 표현한 것은 한국인이 유일하다며 감탄하였다.
광복절을 기리는 마음은 타지에 있는 상하이의 한인들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이 날을 맞이해 우리 민족의 자주와 단결을 외쳤던 그 때를 한 번쯤 돌아보며,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대표해주는 이 자랑스런 태극기를 잊지 말고 달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