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4회 베니스 국제영화제 최고의 상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이안(李安) 감독의 영화 <색·계(色·戒)>. 2차 세계대전 당시 상하이를 배경으로 거대한 운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여성 스파이의 위험한 사랑을 다룬 영화 <색·계>가 화제로 떠오르는 가운데 이 영화가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작품이라는 것에 많은 사람들이 호기심과 궁금증을 나타냈다.
영화의 바탕이 된 실제 비극의 주인공 이름은 정핑루(郑苹如). 당시 영향력 있는 잡지의 표지 모델로 실릴 만큼 빼어난 미모를 갖춘 그녀는 경제적으로 여유있는 넉넉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19세 되던 해 국민당정보부(国民政府统计调查局) 스파이로 활동하면서 인생변화를 겪게 되는 그녀의 전기적 이야기는 지난 30년대로 거슬러올라간다.
1935년 어느날 뤼반루 완이팡88호(吕班路万宜坊88号)에 정(郑) 씨 부부가 자녀 5명과 함께 이사왔다. 당시 고급 주택가로 소문난 이곳에서 산다는 것은 상당한 경제력이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했다. 정핑루는 정씨 집의 둘째 딸이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일본 명문가 출신이었고 아버지는 손중산 선생과 함께 혁명에 참가한적 있는 국민당의 원로 인물이었다.
당시는 중경을 중심으로 한 장개석의 국민당 세력과 남경을 기점으로 왕정위(汪精卫) 친일 괴뢰정권이 공존해 있는 혼란한 시기였다. 스파이 활동을 시작한 정핑루는 일본계 혼혈이라는 특수한 신분으로 일본 상류층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그녀에게 주어진 임무는 정보수집이었다. 그러다 어느 한 사교모임에서 그녀는 당시 일본 수상 코노에후미마로의 아들인 코노에후미다까를 알게 됐고 그녀의 아름답고 우아한 모습에 코노에후미다까는 그만 푹 빠져버리고 만다. 각종 사교모임, 경마장 등에서 이들은 나란히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중·일 전쟁이 더욱 확대되자 정핑루는 코노에후미다까를 납치해 인질로 삼고 일본측과 종전교섭을 벌이려는 엄청난 일을 획책한다. 그러나 그녀가 독단으로 시도한 납치사건은 상부에 의해 긴급 제지당하고 말았다. 코노에후미다까는 영문도 모른채 48시간 납치됐다가 풀려났으나 이번 사건으로 인해 그녀는 일본측의 의심을 사게 되었다.
일본 상류사회에 머무를 수 없게 되자 정보부는 그녀에게 왕정위 괴뢰정부의 스파이인 딩모춘(丁默村)을 암살하라는 명을 내린다. 딩모춘은 원래 국민당군통국(国民党军统局) 스파이였다가 왕정위정권에 가담한 자로, 국민당 정보부의 내막을 손금보듯 꿰뚫고 있었다. 이로 인해 수차 피해를 본 국민당정보부가 눈에 든 가시와도 같은 존재를 제거하려는 것은 당연지사, 딩모춘이 여색을 즐기는 점을 이용해 미인계를 쓰기로 했던 것이다.
딩모춘은 교활하고 조심성이 많은 스파이었다. 경력으로는 햇내기에 불과한 정핑루가 딩모춘을 암살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무도회장에 나타난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은 재빨리 딩모춘을 사로잡았고 딩모춘이 그녀의 중학교 교장을 역임한 경력이 있어 두 사람은 쉽게 가까워졌다.
딩모춘이 그녀에게 푹 빠져들게 되자 첫 번째 암살시도가 이루어졌다. 정핑루의 집에 미리 저격수를 숨겨놓고 있다가 딩모춘이 오면 사살한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딩모춘이 그녀의 집 앞까지 왔다가 무슨 낌새를 눈치 채기라도 한 듯 홀연히 사라져 첫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두 번째 암살은 모피전문점에서 일어났다. 정핑루가 가죽옷을 사고 싶다며 딩모춘을 난징루의 한 옷가게로 유인했던 것이다. 별다른 의심없이 그녀를 따라 옷가게에 들어선 딩모춘은 창밖에서 서성이며 가게 쪽을 흘끔거리는 남자들을 발견하고는 잽싸게 승용차로 몸을 피했다. 탕!탕! 총성이 울렸으나 딩모춘은 이미 방탄승용차 안으로 모습을 감춘 뒤여서 두번째 암살도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그 번 총격 사건 후 정핑루는 비록 신분이 드러나진 않았지만 딩모춘의 의심을 받게 되었다. 사태가 악화되기 전에 상하이를 떠나야 했으나 딩모춘이 가족에 보복할까 두려웠던 정핑루는 마침내 직접 딩모춘을 죽일 것을 결심하고 또다시 딩모춘에게 연락을 한다.
1939년 12월24일 무도회장에서 딩모춘과 만나기로 약속한 그녀의 자그마한 백에는 총이 들어있었다. 그러나 딩모춘은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그녀는 스파이들에게 끌려갔다. 그녀는 자신이 사랑 때문에 딩모춘을 죽이려 했다며 스파이라는 사실은 끝까지 시인하지 않았다.
정핑루는 체포된 지 2개월 후인 1940년 2월 피살됐다. 그때 그녀의 나이 겨우 꽃다운 23세였다. 정핑루의 아버지는 왕정위 괴뢰정부에 가담하면 딸을 풀어주겠다는 일본측의 회유를 거절, 딸이 사망 후 심병을 앓다가 이듬해 세상을 떴다. 항일전쟁이 끝난 후 딩모춘은 체포됐고 1947년 7월 난징감옥에서 총살됐다.
한편, 여류소설가 장아이링(张爱玲)은 정핑루가 딩모춘에 정이 생겨 모피점 저격사건 당시 위험이 있음을 암시해 몸을 빼게 했다고 자신의 소설에 적고 있다.
▷박해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