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 '홍콩·대만 역대 최고 기록' '무삭제 개봉' 등 뜨거운 관심과 논란의 대상 영화<색, 계(色戒)>. 흥행에 힘입어 그 촬영지도 중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인기 있다고 한다. 더구나 그 곳이 상하이에 소재한다고 하니, 알면서 모른 척 할 수 있겠는가! 하루쯤은`막부인'이고 싶은 마음을 간직한 채 <색, 계>촬영지로 떠나보자.
<색, 계>는 말레이시아의 페낭, 홍콩, 상하이를 비롯해 아시아 전역에서 118일 동안 촬영되었다. 촬영의 대부분은 상하이에 세트를 지어 진행되었지만, <색, 계>덕분에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푸동 신창(新场)의 촬영지는 세트가 아닌 실제 거주지역이다. 영화의 배경이 되었던 1940년대의 상하이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마을로 아직 사람들이 그 곳에서 생활하고 있다. 중국 최대 경제도시, 국제도시 상하이에 역사를 추억한 장소가 있다는 사실에도 놀랐지만, 마을을 이루어 생활 하고 있다는 사실에 내 귀와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과거의 색이 짙어지고 현재는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남포대교를 넘어 푸동에 도착하고도 한 시간이 훌쩍 넘어야 <색, 계>의 촬영지를 찾을 수 있다. 상하이 여행(旅游)2호선을 타고 신창역에 내려 10여 분을 걸으면 큰 문(?)이 보인다. 그 곳에서부터 상하이 타임머신이 시작된다.
이 곳은 '라오(老)상하이'라고 불러도 될 만큼 오래된 곳이다. 길 가에 외로이 서 있는 가로등 마저 상하이의 역사를 말해준다. 이 마을의 좁은 골목길은 우리네 60년대의 그것과도 매우 흡사하다. 심지어 가로등이 없어 걷는 거 조차 힘이 드는 어두운 골목길도 있다.
하지만 재미난 것은 길 입구에 있는 몇몇 상점들이다. 상하이의 옛모습을 띠고 있지만 세상과의 끈을 놓지 않은 옷 집, 핸드폰 가게, 베이커리 등 생활의 흔적이 조금은 어색하게 어울려 있다. 또 <색, 계>의 감독 `이안'과 이 곳에서 함께 찍은 사진을 자랑스럽게 상점 문 앞에 걸어 놓은 문방구도 있다. 하긴 우리 집이 영화에 등장했으니 얼마나 자랑스러운가!
좁고 어두운 골목 안에 사람도 다니고 자전거도 다닌다. 심지어 조그만 차도 주차 되어 있다. 슈퍼, 이발소, 세탁소도 있다. 그 조그만 골목에 이렇게 많은 것들이 즐비해 있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미용실로 익숙한 우리에게 이발소는 특히나 흥미거리가 된다. 손님이 커다란 보를 두르고 앉아 이발사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 재미난 추억을 혼자만 느끼기는 너무 아깝다. 마치 역사 박물관에 온 듯하다. 명실상부 국제도시인 상하이에 기억조차 할 수 없는 상하이의 모습이 살아 있어 그 감동은 배가 된다.
하늘하늘 바람에 나부끼는 간판도 이색적이다. 화려한 네온사인으로 뒤덮어진 지금과는 전혀 다른, 달랑 천하나에 글씨를 새겨 어둠 속에서는 사라지고 내일의 햇살이 비출 때나 알아 볼 수 있다.
거리를 거닐면서 만약 내가 이 시대에 살았더라면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계속 맴돌았다.
"바로 이 장면에서"
과연 이 곳은 영화의 어느 장면에서 볼 수 있을까!
'이'의 첫 암살이 무산되고 홍콩에서 다시 상하이로 돌아온 '왕치아즈(여주인공)'에게 '광위민'이 찾아와 부탁을 한다. 그것은 다시 막부인이 되어 권력이 더욱 강해진 '이'의 암살작전에 주도적인 역할을 맡아 달라는 것이다.
'광위민'이 여주인공을 찾아왔을 때 여주인공이 생활 하던 곳, 부탁을 위해 둘이 얘기를 나누던 곳이 바로 이곳이다. 두 남녀의 대화장면은 2층에서 이루어 지는데 활짝 열린 창문으로 보이는 풍경이 한 눈에 쏙 들어 온다. 영화 속에서 이 곳을 찾는 재미가 쏠쏠하다.
세계가 인정한 <색, 계>의 촬영지로도 의미가 있지만 1940년대에 딱 들어맞는 곳이 21세기에 아직도 존재한다는 것이 더 큰 의미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낮은 현재에 살고 밤은 과거 속에 살고 있는 색계의 촬영지. 한 번쯤 찾아가 그 두 매력을 흠뻑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