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에게 있어 가장 위험한 병명 중의 하나가 스트레스다. 스트레스는 모든 병의 주범이기도 하지만 병명이 정확하기 않을 때는 스트레스라는 이름으로 규정짓는다. 그 스트레스란 놈이 과거에는 대부분 어른에게 나타나는 현상이었지만 최근에는 어린아이까지도 앓고 있는 고질적인 현대 병이다. 그래서 우리네는 탈스트레스를 하기 위해 종교, 운동, 명상, 취미 생활 등등을 시도하곤 한다.
두 달 반전 아이들의 성화에 견디다 못해 지인으로부터 강아지 한 마리를 분양 받았다. 솔직히 또 다른 생명이 내 가족의 일원이 되어 (인간 수명의 7분의 1로 빨리 끝나는 것이 개의 생명이기에 그 죽음을 꼭 볼수 밖에 없음)한 공간에서 함께 호흡하며 함께 살아야 한다는 야릇한 부담감(?), 책임감(?)이 나를 짓누르며 썩 유쾌하지는 않았다. 또한 배변훈련, 냄새, 빠지는 털 등을 감당 할 일을 생각하니 더욱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코코는 우리 집의 역사에 새로운 장을 여는 파수꾼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그러기에 나는 애완견 키우는 예찬론자가 되어 스트레스를 벗어나는 많은 방법 중에 애견을 키우는 게 어떨까 하고 적극적으로 추천하고자 한다.
강아지는 우리 가족에게 소박한 기쁨으로 사는 법, 단순한 행복을 누리는 법, 평안을 유지하는 법, 작은 일에도 감사하는 법, 조건 없는 사랑으로 채우며 지내는 법을 알게 해 주고 있다.
특히 코코와 함께 하는 시간은 모든 근심 걱정이 사라지고 오로지 강아지로만 만족하게 된다. 사람 사는 모습은 다양하지만 개들의 삶은 어디든 모두 비슷비슷한 것 같다. 그건 아마 식탐 외에는 인간 같은 욕구나 집착이 개에게는 없기 때문일 것이다.
Give and take의 원칙이 무너지면 사랑은 힘을 잃어 심지어 부모, 자식간에도 일방적인 사랑이 존재하는 것 같지만 '순종', '좋은 성적'이라는 조건이 붙어야만 좋은 관계가 형성되는 게 이 시대의 슬픔이다. 아마 이건 개와 달리 인간끼리의 사랑에는 조건이 붙기 때문인 것 같다.
우리 집에는 사춘기를 겪고 있는 사내 녀석 둘이 있는데 특히 큰 놈은 필요한 말 외에는 지독히도 말을 아끼는 녀석이다. 하지만 말썽꾸러기 코코가 출현 한 이후 그 놈의 입이 열렸으며, 입가에 미소가 떠나지 않게 되었다. 온 가족이 거실에 모여 앉아 개에 대한 공통화제로 두런두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코코는 어느덧 우리 가족의 주인공이 되어 가고 있다. 나와 남편 아이들의 끈을 연결하는 기쁨이!
자신을 개 장수에게 팔아버린 주인을 못 잊어 온갖 위험을 겪으면서도 집을 향해 돌아오다가 뒷다리를 잃고 앞다리로만 온몸을 지탱해 주인집 문 앞에서 쓰러지는 개, 불길에 둘러싸인 주인을 구하려고 몸을 던진 `오수의 개', 주인이 사업에 실패해 온 가족이 뿔뿔이 헤어지며 걸인으로 전락해도 흰털이 회색 빛으로 변해 여전히 주인 곁을 지키는 개.
개가 불행 할 때는 주인이 불행 할 때이며, 개가 긴장 할 때는 주인이 위험에 봉착 했을 때이다. 개의 충성심이나 애교, 조건 없는 사랑도 다 인간의 눈에 비친 개의 모습일지라도 어쨌든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가족에게 특히 나에게 가져다 주는 개의 나를 향한 위안은 엄청나다.
곧 작은 녀석이 돌아올 시간이다. 꼬리치며 자신을 반길 코코를 생각하며 총총 걸음으로 달려올 녀석을 생각하니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코코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