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TV 프로그램 `7080 콘서트'에서 샌드페블즈가 `나 어떡해'를 부르는 것을 보았다.
제 1회 대학 가요제에서 대상을 거머쥐면서 당시의 모든 학생들의 우상으로 떠올랐던 그룹이었는데, 세월의 흐름을 그대로 간직한 모습으로 그때나 마찬가지로 절규하듯 `나 어떡해'를 부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옛날과 달라졌다면 노래를 하면서 약간은 어색해 하는 모습이 언뜻언뜻 보인다는 것, 그런데 어쩜 목소리는 그대로인지 나도 모르게 대학가요제에 열광하던 어린시절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한없이 멋지게만 보이던 일렉 키타를 직접 연주하는 것은 감히 꿈도 꿔 보지 못하고, 그나마 만만해 뵈던 통키타라도 튕기고 싶었던 친구들이 그 당시엔 얼마나 많았던가.
그 시간들이 흘러 이제 마흔, 불혹의 나이가 되었다. 마흔이 불혹이라는 것은 공자님처럼 성자나 가능한 일이었는지 아직도 하루에도 수십번씩 변덕이 죽 꿇듯 한다.
감성도 무디고 무디어져 웬만한 일에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정도의 강심장이 되었는데 어찌된 게 눈물은 더 흔해졌다. `사돈 반갑습니다'라는 TV 프로그램에서 부모가 보고 싶어 눈물을 흘리는 베트남 신부들의 모습에도, 먹을 것이 없어 밥을 굶고 있는 아프리카의 어린이들을 봐도, 이라크의 폭격에 맞은 자식의 주검을 앞에 둔 부모의 허황한 눈길에도 주책없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난다.
누군가 눈물이 많아진다는 것은 늙는다는 것이라던데 그 말이 내 경우엔 딱 맞나보다. 이건 슬프다라는 감정을 느끼기도 전에 주루룩 흐르는 눈물이라니, 감성의 예민함도 마음의 넉넉함이나 너그러움도 아닌 나이 탓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10대에 느꼈던 감성을 나이 40에 TV 보며 새록새록 되새기는 것 또한 나이 들어 간다는 것의 증거라는데, 60, 70이 되어서도 절규하듯 노래 부르는 샌드페블즈를 보고 싶은 것은 정말 주책일까?
▷김영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