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도 개학을 하고 학기 초의 부산스러움이 어느 정도 가셔진 따사로운 봄날. 방학 내 서로 바빠서 만나지 못했던 지인들과 모처럼 점심 약속으로 마음까지 설레는 기분 좋은 오후다.
개업한지 얼마 되진 않았지만 주인아주머니의 깔끔하고 맛깔스런 솜씨로 중국인 손님도 제법 있고, 살림하는 주부들이 큰 부담 없이 먹기에 좋은, 괜찮은 집을 찾았다. 따라온 꼬마가 고기 먹고 싶다는 바람에 전골이 고기구이로 바뀌고, 복무원 아가씨의 열성적인 권유(?)로 점심인데도 김치 삼겹살 구이를 주문하기에 이르렀다.
삼겹살을 굽기위해 가져온 구이 판은 밖으로 기름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되어있어서 고기는 고기대로 기름기를 쪽 빼고 먹을 수 있었고, 기름은 기름대로 받아내는 출구가 있어서 아주 편리해보였다. “어쩜 이렇게 구이 판을 잘 만들었는지…” 신기해하며 격찬하자 “이제야 이런 구이 판을 보았느냐”는 힐문이 들어온다. “한국에서는 진즉에 있었던 것인데 몰랐느냐?”고.
그러고 보니 내게는 한국의 모든 실정이 조국을 떠나온 그 시점에서 고정되어있는 것이다.
10여 년전 한국을 떠나 가끔씩 방문하는 한국은 나그네일뿐, 여전히 10여 년 전의 시선으로만 한국을 바라볼 뿐이지 체득되는 것이 아니었나 보다. 변화무쌍한 세월과 문물 앞에서 잠시 위축되는 나를 본다. 나만 빼 놓고 멀리 달음박질 하는 사람들, 세월들, 상황들.
그러나 이 따사로운 봄이 여지없이 오듯, 우리에게는 변하지 않는 아름다운 가치들이 있지 않은가. 어쩌면 눈에 보이지 않고 잡히지 않아서 쉽게 묵살해 버리려는 유혹이 조급한 우리네 삶에 행세하려 하지만 세기를 두고 면면히 흐르는 소중한 삶을 오늘도 붙들고 싶다.
조금 더 인내하기, 내가 더 사랑하기, 보다 더 부지런하기, 참으로 더 겸손하기.......
▷완커아줌마 진선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