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우리가족이 지금 이 단지로 왔을 때 조용하고 맑은 공기는 지금도 여전하다. 아침에 명랑한 새소리에 눈을 떴을 때의 평온과 감동은 ‘행복’이란 단어를 자연스럽게 떠오르게 한다. 정원의 작은 연못에 헤엄치는 작은 물고기들과 나무, 꽃 그리고 바람…. 가끔 이웃과 함께 산책을 하며 아이의 웃음소리에 말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오곤 한다. 하지만 요즘 신문이나 인터넷 각종 매체에서 전해주는 사건들은 이런 소박한 감정조차도 사치로 느껴질 때가 있다.
우리나라는 매달마다 의미를 두고 있다. 6월은 ‘보훈의 달’로 각종 단체나 기관에서 행사가 있지만 거의가 그저 행사에 그치는 것 같다. 하지만 이렇게 외국에서 지내다 보니 우리나라를 향한 마음은 더욱 깊어진다. 얼마 전 남편과 함께 지인의 소개로 한 중국인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분은 우리에게 “당신들 아이들은 이렇게 일찍 유학을 와서 중국 교육을 받는데 그럼 당신들의 나라 역사는 어떻게 배웁니까?”라고 묻는 것이다. 다행히 남편은 아이들에게 지속적으로 역사를 알려주고 있었기에 대답에는 큰 무리가 없었지만 그 동안 우리 역사에 대해 안일했던 내게 적지 않은 충격이었고 배움에 대해 다시 한번 폭넓게 생각하게 하는 기회가 되었다.
지난 여름 우리 가족은 심양-단동-집안-백두산으로 1주일간의 여행을 떠났었다. 하얀 T-셔츠에 앞뒤로 ‘독도는 우리땅’이란 글자를 붙이고, 우리 아이들이 아니 우리모두가 조상들의 발자취를 가슴으로 느끼고 역사의 현장에서 조국의 소중함을 알기 위해.
단동에서는 하루종일 비가 왔다. 압록강에서 배를 타고 비내리는 건너편 북한땅을 바라보니 끊어진 철교가 더욱 애잔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또 다른 역사의 현장 위화도도. 사람들은 왜이리 크고 작은 전쟁들을 끊임없이 하는지. 평화, 화합 모두들 갈망하지만 이룰 수 없는 희망일 뿐인가?
빗속을 4시간을 달려 수풍발전소에 도착했다. 더욱 가까운 곳에서 우리 조국 다른 한 켠을 바라보았다. 한번도 밟아보진 못했지만 아버지의 고향, 또 우리의 고향이기도 한 그곳을 바라보니 또 다른 감정들이 솟아난다. 물론 나는 전쟁을 경험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전쟁의 생생한 아픈 경험들을 듣고 자랐고 또 유년시절의 배고픈 시절을 지나지 않았던가, 지금의 우리 아이들은 풍요로움 속에 살고 있고 전쟁과 분단 그리고 또 다른 갈등에 대해 어떤 생각들을 할까?
하루종일 버스는 ‘집안’을 향해 달렸다. 그곳에서 장수왕의 묘(비석에 ‘장수’가 ‘장군’으로 되어 있었다.)를 보며 함께 가슴을 쓸어 내리며 마지막 날 민족의 영산 백두산을 올랐다. 날씨가 흐려 천지는 볼 수 없었지만 우리는 함께 역사의 한곳에 올라서서 조국에 대해 더욱 숙연한 마음과 각오를 다지게 했다. 그리고 지금 역사의 현장에 우리가 살고 있고 책임있는 주역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민족이 전쟁을 하고 또 분단이 된지 반세기가 훌쩍 지나가 버렸다. 지금 우리는 서로를 바라본다. 더 나은 더 밝은 내일을 소망하며…. ▷칭푸아줌마(pbdmom@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