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통신장비업계의 지각 변동을 몰고 올 알카텔과 루슨트 테크놀로지의 대규모 합병 협상은 신흥강자로 부상한 중국 통신업체의 위협에 따른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됐다.
25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세계 최대 광대역 인터넷 장비업체인 프랑스의 알카텔과 미국의 루슨트는 화웨이 테크놀로지와 ZTE 등 중국 통신장비업체들의 성장이 위협적이기 때문에 이번에는 합병에 골인할 것이라고 전했다.
세계 최대 광대역 인터넷 장비업체인 프랑스의 알카텔과 미국의 루슨트의 인수 소식이 알려진 것은 지난 23일. 양사는 공동성명을 통해 "시장가격에 대등 합병을 하기 위한 협상을 벌이고 있다"고 밝혔다.
양사의 합병 시도는 이번이 두 번째다. 2001년 봄 알카텔과 루슨트는 대등합병을 추진했으나 경영권 배분 문제에 대한 합의에 실패해 인수안이 무산됐었다.
이 때문에 루슨트와 알카텔의 합병이 성사될지 의문을 갖는 이들도 많다. 그러나 저렴한 제품을 무기로 세계 통신장비시장에서 빠르게 영역 확장에 나서는 중국 업체들 때문에 양사의 상황은 그리 느긋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윌리엄 스미스 벨사우스 최고기술경영자(CTO)는 "중국의 신기술이 알카텔과 루슨트와 같은 기존 업체를 맹공격하고 있다"며 "연구 자원을 하나로 묶어 새로운 기술 개발에 노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중국 업체들은 기존의 거물급 업체와의 직접 경쟁을 피하기 위해 태국과 인도네시아, 불가리아 등 개발도상국을 상대로 수출에 주력하면서 성장해 왔다.
또 지난 6년간 급성장하는 중국의 무선 네트워크 시장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면서 거대한 자국 시장에서 입지를 다지고 있다.
지난 주 뉴델리에서 열린 산업무역전에서 ZTE는 차세대 이동통신 네트워크와 광대역 서비스 등으로 관람객의 시선을 끌면서 더 이상 저가 시장을 공략하는 업체가 아님을 입증하기도 했다. 업계에 따르면 현재 세계 무선통신시장에서 중국 업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5%, 광통신 시장에선 약 10%에 달한다.
반면 버라이즌과 MCI, SBC와 AT&T가 합병에 합의하고 최근 AT&T가 벨사우스 인수 계획을 발표하면서 미국과 유럽 시장에서 알카텔과 루슨트의 고객층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 과거 양사의 합병안은 결렬됐지만 중국의 위협에 따라 알카텔과 루슨트는 보다 적극적으로 협상에 임할 수 밖에 없다.
이번 협상의 주도권은 알카텔이 쥐고 있다. 5년 전 비슷했던 회사 규모도 알카텔의 시가총액이 200억달러로 루슨트(126억 달러) 보다 덩치가 커졌다.
아직 구체적인 협상안이 공개되지 않았지만 관계자에 따르면 합병 성사시 알카텔은 새 합병회사 지분의 60% 정도를 보유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루슨트도 쉽게 경영권을 내주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미 양사는 루슨트의 최고경영자(CEO) 패트리샤 루소가 오는 6월 퇴임하는 서지 추룩 알카텔 CEO의 후임으로 임명해 통합 회사의 CEO 직을 맡을 것이 유력하다.
또 알카텔의 서지 추룩이 합병회사 회장직을 맡으면서 양측은 이사회에서 동등한 발언권을 갖게 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현재 루슨트는 약 3만명 가량의 직원을 보유하고 있으며, 알카텔 역시 5만6천명에 이른다.
양사의 최종 협상안은 빠르면 이번 주중 발표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