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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투고]중국의 春草

[2008-10-28, 00:03:07] 상하이저널
얼마 전 우연히 중국 드라마 春草를 보게 되었다. 春草는 드라마 여주인공 이름이다. 가난한 농촌, 칙칙하고 지저분해 보이는 외양, 울고불고 가난에 찌들어 하는 모습들을 보며 ‘그렇고 그런 드라마구나’하며 외면했었다.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에 힘들었고 연이은 한국 연예인들의 자살 소식으로 우울해져 있던 터였다. 이럴 때 일수록 귀족적이고 동화 같은 드라마가 더 끌리기 마련이지 않은가? 그러나 春草에 빠져들면서 보지 않았으면 후회했겠다고 생각했다.

春草, 그녀는 이름만큼이나 억세고 생활력이 강한 여성이다. 가난한 시골 출신으로 뒤늦게 배운 초등학교 한 학기 공부가 그녀 학력의 전부다. 공부 못한 것이 한이라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가난한 남자와 결혼한다. 기대와 달리 무능한 남편으로 인해 많은 고통을 받으면서도, 자식들의 학업 뒷바라지를 위해 메마른 땅에서도 움튼 들풀처럼 희망을 가지고 살아간다.

春草를 보면서 우리 보모를 떠올렸다. 야무지다 못해 도도해 보이는 인상, 우리 집에 온지 일주일도 못되어 국정공휴일을 얼마나 쉬냐며 자신은 하루도 손해없이 쉬고 날 손해 보게 만든 그녀. 10년 전 내 사진을 보고 날 닮지 않았다고 웃질 않나, 전화 목소리가 왜이리 크냐며 핀잔을 주질 않나 마치 시누이처럼 일일이 간섭을 한다. 바로 그녀가 생각났다. 그녀가 자신의 얘기를 하지 않았다면, 버릇없다고 무턱대고 싫어했을지도 모른다.

며칠 전 늘 당당하기만 했던 그녀가 자신의 부모얘기를 하며 처음으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하는 거다. 어릴 때 어머니는 자신과 남동생을 버리고, 다른 사람과 재혼했으며, 곧 아버지도 재혼했는데 자신들에게는 관심도 없었단다. 결국, 성인이 되어 상하이로 와서 남동생가족과 함께 서로 의지하며 살고 있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난 적잖이 미안했다. 하도 당당하기에 ‘내가 만만해 보이는구나’ 하면서 내심 자를까 고심하던 차였다. 그런데 이제야 그녀의 강한 생활력과 다소 넘치는 듯한 자신감의 원천을 알게 된 것이다. 부모님 밑에서 걱정없이 자랐던 내가 그녀의 작은 어깨에 내려진 짐들을 과연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나중에 알았지만 그녀는 국정공휴일 기간 동안 일손이 필요한 집에서 임시로 아르바이트를 할 예정이었단다. 우리 집을 포함해 하루에 두세 집 일을 하는데도 말이다. 정말 가여웠다. 내가 내 돈 내고 쓰는 것이지만, 그녀의 도움으로 내 생활이 훨씬 편해졌으니 감사하다.

주위에 보면 중국인들을 덮어놓고 무시하는 한국인들을 종종 만나 보게 된다. 그럴 때면 내가 한국인이란 사실이 불쾌해지기도 한다. 상대적으로 가난한 중국인들에 비해 많은 혜택을 누리고 있으니, 그들을 인격적으로 존중해 주었으면 좋겠다. 중국의 주인은 우리가 아니고, 그들이란 것을 인정하고 겸손하게 살아갔으면 한다.

우리나라도 春草같은 과거 어머니들의 헌신과 노력으로 현재의 우리가 있게 되었다. 덕분에 우리는 덜 고생하며 자랐고, 먹고 사는 문제를 떠나, 이제는 삶의 질을 따지는 수준까지 오게 되었다. 과거 우리 어머니들의 희생에 눈물겹게 감사한 마음이 든다면, 지금은 들풀처럼 어렵게 살아가고 있는 春草같은 서민들을 무시하지만 말고 좀더 따뜻하게 대해주었으면 좋겠다.

오늘 김치 통에서 직접 담근 김치를 꺼내, 우리 보모에게 싸주었다. 행여, 내 솜씨가 없는 탓에 한국김치의 이미지를 훼손시킬까 봐 우리 집 김치는 그다지 맛없지만, 다른 집 김치는 맛있다며 사설을 늘어놓았다. 연신 고맙다고 하는 그녀, 부디 맛있게 먹었으면….
▷한가은(pinkpillow@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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