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 밤 들려온 소식, 시아버님이 대장암 진단을 받으셨다고 한다. 늘 등산이며, 골프며, 운동을 꾸준히 하시던 분이라, 어느 누구보다도 건강하셨던 분이라 순간 엄청난 충격에 ‘아버님과 어떻게 통화를 시작해야하나’하는 생각에 머릿속이 하얘졌다. 잠시 맘을 가다듬고 아버님께 전화를 드렸다.
아버님은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려 하셨으나, ‘내 맘의 선입견 때문이었을까’ 어딘지 모를 불안감이 목소리에 젖어 있음이 느껴졌다. 뒤이은 어머님과의 통화, 어머님도 여느 때와는 달리 확연히 뭔지 모를 미묘한 불안감과 흥분이 섞인 목소리의 떨림이 있었다. 어머니 당신께서 최선을 다해서 보살펴드릴 생각이시라며 오히려 우리더러 너무 걱정마라신다.
이번 주에 다시 정밀검사를 받고 전이상태를 봐가며 수술을 결정하신다고 한다. 멀리 떨어져 있다는 걸 핑계아닌 핑계로 삼아 당장에 달려가서 직접 위안의 말 한마디 못 건네고, 따뜻하게 손 한번 못 잡아주는 나로서는 무척이나 가슴답답하고 죄송할 뿐이다.
지금으로선 전이가 없어 대장 일부분 절제수술로 마무리지어지길 간절히 또 간절히 바라고 싶다. 아직은 70대 초반이시고, 보기에도 청년 못지않은 몸을 유지하고 계셔서 우린 누구보다도 아버님이야말로 건강하게 오래 장수하실 거라는 믿음을 갖고 있었는데….
새삼, 내가 시집오던 20여년 전, 큰아이 돌잔치, 시동생 시누이 결혼식 때 흐뭇해하시며 술 몇 잔에도 흥에 겨워 발그레지신 얼굴로 못내 잠들어 버리시곤 하던 모습들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그때까지만 해도 우린 모두들 세월이 우리 아버님을 비켜간다고들 했었는데.
사실상, 지금의 모습도 우리들에겐 별 달라진 건 없어 보이는데, 여전히 건강한 청년 못지않아 보이시는데, 정녕 아버님 당신께선 여기 저기 쑤시는 곳도 많고 소화도 잘 안될 때도 있다고 말씀하시곤 했었는데 우리가 모두 너무 방심했었나 보다.
생각해보니 지난 추석 여길 다니러 오셨을 때 아버님께선 좋아하시던 후난요리를 잘 못드셨었다. 훠궈 드실 때에는 설사까지 하셨었다. 아마도 아버님 당신 몸에 그때 이상증상을 보이신 것 같다. 우린 그냥 ‘아버님이 예전만 못하시다, 일시적으로 속이 불편하신가 보다’했었는데 저희 불찰이 오늘의 아버님의 아픔을 가중 시킨 게 아닌가 싶어 또 죄송스럽고 면목없다.
신혼 초에 아침준비로 헤매는 며느리를 위해 이제는 우리도 식생활습관을 바꿔 아침은 간단히 먹자시며, 손수 온갖 잼을 다 사가지고 오시던 퇴근길의 아버님 모습이 오늘따라 선명히 내 머릿속에 떠오른다.
‘아가~ 아가~’ 불러주시던 목소리도 왠지 귓가에 들리는듯하다. 평상시에 전화도 자주 못 드리고, 오히려 저더러 외국 나와서 여러 가지로 고생 많다며 등을 두드려주곤 하셨는데….
“아버님 이겨내실 수 있을 겁니다. 있을 거예요. 우리 온 가족이 아버님 곁에서 응원하고 있는 거 아시죠? 아버님! 힘내세요!” ▷아침햇살(sha_bead@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