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설날 연휴에는 예년과 다르게 보모가 긴 휴가를 떠났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보모의 설 휴가 기간문제로 여러 번 속상한 적도 많았지만 이젠 아이들도 다 컸겠다 싶어 별말 없이 보모가 원하는 대로 휴가를 주었다.
국가지정 휴일기간만 딱 쉬는 나였기에 아이들 밥 먹는 것이며, 청소, 빨래 등이 걱정이기는 했지만 아이들도 청소는 잘 모르겠지만 스스로 밥도 차려먹을 수 있다고 자신만만하게 보모에게 긴 휴가를 줄 것을 권유, 정말 아무런 걱정 없이 보모를 보냈다.
그러나 ‘아이들이 정말 많이 컸구나’ 대견한 마음이 들었던 것은 잠시뿐, 전기 밥통에 쌀 씻어 놓은 것도 반찬 없다고 라면으로 때우고 설거지랍시고 해 놓은 것이 겨우 자기들이 먹은 라면그릇과 냄비뿐 집안 곳곳에 쌓여있는 컵은 아예 보이지도 않은 모양이다.
게다가 하루, 이틀 지나며 방안은 점점 벗어놓은 옷과 양말로 점점 어지러워져 잔소리를 하지 않으려면 조용히 문을 닫고 있어야 할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아이들은 “새삼 엄마의 소중함을 느꼈어요”며 아부 아닌 아부로 상황을 모면해 보려 하지만, “아이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가장 중요한 스스로 해야 하는 생활 정리를 방치하고 있었구나”는 처절한 반성을 하게 된다.
새삼 “지난 9월 대학 입시를 위해 딸과 함께 한국에서 3개월 생활하며 가장 힘들었던 것이 입학 시험이나 공부보다 생활적인 것이었다”는 지인의 말이 가슴에 울리듯 생각나고 “이 일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나” 걱정이 앞선다.
사실 그 동안 집안일을 거의 보모에게 의존하다시피 생활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아이들이 집안을 어지럽히고 치우지 않아도, 하다못해 자기가 먹던 컵 조차도 아무데나 두어도 크게 지적하지 않고 그냥 묵인하다시피 했던 생활이 반성되고 나조차도 내가 해야 할 일도 게으름 부리며 보모에게 의존하는 모습을 보였던 것은 아닌가 심각하게 반성이 된다.
‘보모가 집안에 없는 이 기회를 통해 아이들 교육을 시켜볼까’ 마음을 먹고, 아이들에게 하나하나 지적을 시작하자 아이들은 ‘엄마가 변했다’고 아우성이다. 보모가 휴가를 가자 엄마가 힘들어서 자기들을 들들 볶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아이들로서는 그간 해왔던 것과 다른 것이 없는데 갑자기 늘어난 엄마의 지적이 이해가 안되는 것이다. 아이들 교육을 위해서라도 나 자신부터 보모에 대한 과도한 의존증을 끊는 한 해로 삼아야겠다. ▷박은수(silverp@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