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국민은 임시정부 법통을 계승하였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 의하면, 우리 대한국민은 임시정부의 법통과 4.19정신을 계승하였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즉 대한민국은 ‘대한민국 임시정부’로부터 법통성을 이어받았다는 것이다.
또 헌법 제 1조 1항인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에서 대한민국이라는 국호와 국가의 정체성을 의미하는 '민주공화제'을 발의하고 결정한 곳이 다름아닌 ‘상해임시정부’였다는 사실도 이제는 많이 알려졌다.
노선을 달리하던 여러 곳의 독립운동 단체가 1919년 4월 하나로 통합된 임시정부가 상해에서 수립된지, 올해로 90주년을 맞게 된다.
임시정부 27년의 역사는 윤봉길 의거로 상징되는 결단성과 끈기가 있는 혼의 정부였다. 그 결단성의 시작 점에 김구 주석이 이끄는 상해의 마지막 임시정부 청사가 상해시 마당로 306롱 4호에 그대로 존재하고 있다.
◈ 1999년, 낡고 초라한 임정청사를 대했던 순간
내가 임정청사를 처음 대한 1999년 가을, 낡고 초라한 임정청사를 대하는 순간 가슴이 먹먹해지던 그 기억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회색벽돌조의 기와지붕으로 연립주택 형식의 3층 중 한 통로를 사용했던 임시정부 청사의 대지면적은 19평에 불과했으며, 연면적도 요즘 형편 좋은 집 규모인 44평 내외의 비좁고 옹졸한 공간에 접대실, 주방, 집무실, 사무실, 침실 등을 꾸며놓고 한 나라의 임시정부가 무려 6년간(1926년~1932년)이나 살림을 했던 곳이 아니었던가.
실내는 투쟁적인 색감의 전시판에다 내용은 온통 북한식 표현이 눈길을 잡아끌던 그 산만한 분위기에서도 바로 그곳에는 선열들의 혼이 깊게 서려있었다. 둘러보고 나오면서 대한민국의 법동성과 정통성의 뿌리인 임정의 청사는 1932년 이후 60년 이나 중국인 여러 가구가 계속 살고 있었다.
이러한 임정청사가 1990년에 삼성의 지원금으로 상해시 정부에 의해 첫 복원되었는데 내가 본 위의 모습의 실제였다. 그러다가 1998년 상해에서 개최된 APEC에 김대중 대통령께서 참석하셨다가 시간을 내어 임정을 둘러보게 되었는데 차마 보기 민망할 정도로 궁색하고 허술하게 관리되고 있어 중국내 주요 항일 유적에 대한 보존관리 철저를 지시하게 된다.
2000년과 2001년에 상해와 중경의 임시정부 청사의 원형 복원사업이 추진되었는데 그 결과가 지금의 상해 및 중경 임시정부 청사가 이때에 원형 복원된 것이다. 복원에 필요한 주민의 이주비와 공사비, 전시내용의 구성과 전시물의 제작 설치는 한국측이 맡는 조건으로 협약이 체결되었다.
◈ 임정청사를 중국문화재로 지정한 것은 다행스런 일
이후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상해 및 중경 임정청사를 다녀간 상당수 한국의 관광객이 상해임시정부청사의 소유권이 한국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중국은 원칙적으로 자국의 영토내에 다른 나라가 그들의 정치적, 정신적 흔적이 뚜렷한 건축물 또는 상징물을 그대로 두는 것을 용인하고 있지 않다.
특히 정신적 정치적 의미가 클수록 더욱더 그렇다. 실제로 수교 초기에 제1차 복원 협상시에는 중국이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 북한을 의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중국과의 협상 자체가 용이하지 않았다.
그래서 당시에는 정부가 나서지 않고 민간이자 한국의 대표 주자인 삼성이 거주민의 이주비용과 내부 재현을 위한 비용을 댄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러한 실정이었기 때문에 한국 정부로서는 임정청사 등 중요 유적의 항구적인 보존을 위해서는 중국정부의 적극적인 협조와 이해가 절실할 수 밖에 없었다.
각계의 전폭적인 협력과 지원으로 1990년대 들어 현재의 상해 청사는 상해시 루완구청 문화재 제 174호로 중경의 임정청사는 중경시문화재로 지정 받게 되는데 한국측의 의지도 확고하였지만 중국 정부의 우호적인 협조가 없었다면, 결코 임정청사를 보존할 수 없었을 것이다. 특히, 중국이 임정청사를 자국의 문화재로 지정하도록 한 것은 정말 다행스런 결과이다.
◈ 임정청사가 대대손손 보존되도록 지속적인 관심 필요
옛말에 ‘법고창신’이란 말이 있다. 옛 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뜻으로, 옛 것에 토대를 두되 그것을 변화시킬 줄 알고 새 것을 만들어 가되 근본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다.
민족혼이 살아 숨쉬는 상해 임시정부청사도 우리 국민이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느냐에 따라 관리와 교육의 장으로서의 기능이 달라질 것이다.
조사에 따르면, 중국내 의미를 둘만한 항일유적은 무려 220여 곳이나 되는데 아쉽게도 상당수의 유적은 이미 허물어지거나, 훼손되어 흔적조차도 남아있지 않다. 남겨진 독립운동 유적을 모두다 잘 보전 관리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임시정부 수립 90주년을 맞아 우리의 소중한 정신적 자산인 임정청사가 대대손손 보존되고 유지될 수 있도록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신정규
(전 독립기념관 전시부장. 재직시 중국 당국과 임정청사의 복원을 위한 한국측 협상단의 실무책임자로 활동. 1999~2001년까지 상해 및 중경 청사와 중국 내 김구선생 피난처를 현재 상태로 복원 임무 수행. 현, 상해 에셋플러스 투자자문 대표 jkshin@chinawindow.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