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은 ‘성(城)’의 도시입니다. 베이징에 가신 분들은 자금성 천안문 등 성(城)을 꼭 보게 됩니다. 도시 전체가 성이랄 정돕니다.
그래서 중국인들은 베이징을 부를 때 뒤에 성(城)을 붙여 베이징청(北京城)이라고 하지요.
상하이는 ‘탄(滩)’의 도시입니다. 강변, 여울이라는 뜻이지요. 그래서 상하이의 상징은 와이탄(外滩)입니다. 와이탄을 보지 않고는 상하이를 봤다고 할 수 없지요.
상하이를 부를 때 탄(滩)을 붙여 상하이탄(上海滩)이라고 합니다. 영화 상하이탄 보셨지요?
성(城)과 탄(滩). 이 두 단어가 바로 베이징과 상하이의 문화를 갈라놓는 중요한 코드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표현될까요.
성(城)의 속성은 ‘울타리’입니다. 울타리는 안과 밖을 분리하는 장벽입니다.
울타리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밖에서는 모릅니다. 울타리 안은 은밀합니다. 울타리 안의 권력층들은 중요한 일이 발생하면 성에서 숨어 일을 도모합니다. 내부에서 어떻게 해결해보려고 하지요. 왕조시대를 생각하면 연상이 될 겁니다.
반면 탄(滩)의 속성은 개방입니다. 열려있는 공간이지요. 이곳은 모두가 노출됐습니다. 누구나 탄에 나와 자유스럽게 활동할 수 있습니다.
무엇인가를 숨기는 것은 이들과 어울리지 않습니다. 이곳에서는 개인과 개인을 갈라놓는 울타리가 없습니다. 있더라도 매우 낮습니다.
중국을 대표한 이 두 도시는 제 성격에 맞는 역할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베이징은 공산당 정권의 정치수도입니다. 당은 중앙 권력집단을 중심으로 은밀하고도 주도 면밀하게 나라를 이끌어 가고 있습니다. 베이징은 바로 이 같은 공산당 지배 체제와 잘 어울리는 문화 풍토를 제공하고 있는 겁니다.
반면 상하이는 경제 중심지입니다. 경제는 투명하고, 경쟁이 살아있어야 발전하게 되어 있습니다. 폐쇄적인 것보다는 개방적인 것이 훨씬 경쟁력이 높습니다. 상하이 경제가 발전한 것은 바로 이 탄(滩)의 문화가 받쳐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성에서도 차이가 납니다. 베이징 사람들은 호기부리기 좋아하고, 때로는 허풍을 떱니다. 사람하고 어울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주제로 이야기합니다. 남의 일에도 관심이 많지요.
반면 상하이 사람들은 허풍보다는 실속을 챙깁니다. ‘쩨쩨하다’라는 말도 듣지요. 그들은 만나면 돈버는 얘기를 합니다. 남의 일에 참견하는 것을 즐겨하지 않습니다.
왜 그런 차이가 생겼을까. 베이징과 상하이는 모두 이민도시입니다. 시기는 차이가 있지만 외지인이 들어와 만든 도시라는 점에서는 같습니다. 그러나 그 이민을 구성하는 사람들은 달랐습니다.
베이징에 온 사람은 관료 학생 등 성공한 사람들입니다. 멀리 청(淸)나라 때 만주족이 베이징에 들어와 귀족층을 형성했습니다.
가깝게는 공산당 영도 층들이 몰려들었고요. 베이징대 칭화대 등 명문대학 명문을 찾아 전국에서 우수 학생들이 베이징으로 운집합니다. 이들이 베이징성(城)을 구성하고, 베이징의 문화를 만들어 간 겁니다.
상하이 이민자들은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1840년대 상하이 개항을 계기로 상하이탄(滩)으로 몰려들었습니다.
열려있는 공간 탄(滩)은 누구든지 와 활동할 수 있습니다. 이민자들의 목적은 하나, 돈이었습니다. 상하이는 엘도라도였던 겁니다. 그들은 치열한 경쟁을 해야 했고, 그 경쟁에서 살아남은 자들이 탄(滩)을 지켰습니다. 그들이 바로 상하이 사람들입니다.
도시 구성원의 성향이 다르니 문화도 달라질 밖에요. 베이징과 상하이는 다른 모습으로 발전하게 됐습니다.
베이징성(城)으로 몰려든 사람들은 끼리끼리 모여 보이지 않는 성(城)을 쌓아올렸습니다. 커다란 성(城)안에 작은 성(城)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관료문화, 문인문화, 서민문화 등 여러 ‘울타리 문화’가 어울려 존재하는 곳이 바로 베이징입니다.
베이징 사람들은 울타리를 만들고, 그 울타리로 들어가기 위해 애씁니다. 그래야 정보를 공유하고,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있으니까요.
당연히 집단의식이 형성되고, 사람과 사람이 엉키어 사는 문화가 형성됩니다.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면 ‘형님-아우’관계가 맺어집니다. 서열이 중요시됩니다. 베이징에서 관씨가 맹위를 발휘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상하이탄(滩)은 모두에게 개방된 공간이기에 개인과 개인이 만납니다. 집단의식보다는 개인의식이 강합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의 이익을 침해하지 않고, 또 남이 자기의 영역에 끼어 드는 것을 싫어합니다. 상하이 사람들이 외지인들로부터 "너무 자기만 안다"라는 비난을 받는 이유입니다.
탄(灘)은 평등합니다. 개인의 능력에 따라 더 많은 것을 가질 수 있습니다. 경제적 목적으로 모인 그들이기에 사람과 사람이 어울리는 문화 자체가 ‘비즈니스 라이크(business-like)’합니다.
울타리가 없기에 ‘형님-아우’관계보다는 ‘친구’관계가 더 힘을 받습니다. 물론 중국의 속성상 관씨를 무시할 수 없지만 베이징에 비하면 중요성이 매우 떨어집니다.
베이징 사람들은 겉으로 보기에 너그럽고 포용력이 더 큽니다. 반면 상하이 사람들은 ‘쪼잔하다’라는 핀잔을 받지요. 그 역시 성(城)과 탄(滩)에서 이유를 찾게 됩니다.
베이징성(城)안의 사람들은 여러 작은 성(城)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지를 압니다. 그게 바로 포용입니다.
서로를 인정해주면서, 호들갑을 떨며 칭찬해주면서 어울리고있는 겁니다. 그러기에 베이징은 외부인에 대해 포용력이 큰 것처럼 보입니다(그러나 속으로는 같은 베이징 사람들끼리도 높은 벽을 쌓아놓고 있다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여기에 수 백년동안 중국을 다스려온 어른 도시의 위용이 어울려 외지인에 대해 더욱 관대합니다.
상하이탄(滩) 사람들은 내부 성(城)을 쌓지 않는 대신 ‘상하이’라는 커다란 공동체에 빨려 들어갔습니다.
개인의 신분이 무엇이냐 보다는 ‘상하이 사람이냐 아니냐’가 그들에게는 더 중요합니다. ‘나는 상하이 사람이다(阿拉上海人•아라상해니)’라는 것에 커다란 자부심을 갖고 있지요. 그런 마음을 갖고 있기에 상하이 테두리 밖 외지인에 대해서는 지극히 배타적입니다.
상하이 말을 한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 그들은 쉽게 통합니다.
이들 도시에 살다보면 재미있는 사실을 하나 발견하게 됩니다. 중국에 온 한국 사람도 각 도시 문화에 젖어든다는 겁니다.
베이징에 있으면 베이징사람들의 성향을 닮고, 상하이에 와 생활하면 상하이사람을 닮습니다. 베이징 한국인들은 성(城)을 쌓아놓고 그 속에서 어울리고, 상하이 한국인들은 넓은 탄(滩)에서 혼자 분주하게 뛰어다니고 있습니다.
한우덕
중앙일보 중국연구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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