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 죄나 잘못한 일에 대하여 꾸짖거나 벌하지 아니하고 덮어 줌.
살아가면서 용서를 구할때도, 용서를 해야하는 때도 많이 있을 것이다. 지나고보면 아무일도 아닌 것을 가지고 화를 내는 경우도 종종 있다.
달라이라마는 “모든 생명 가진 존재는 행복을 최대의 목표로 삼는다. 세속적인 행복뿐 아니라 궁극의 행복에 이르는 것이 우리 모두의 이상이다. 하지만 우리들 대부분은 전 생애에 걸쳐 상처와 고통을 끌어안고 살아가며, 그것은 또 다른 생의 비극을 가져오는 인과관계로 이어진다. 문제는 우리 안에 있는 미움과 질투와 원한의 감정이다. 이 부정적인 감정들은 행복에 이르는 길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이며, 그 장애물을 뛰어넘는 유일한 길이 용서라고 말한다.
아침 햇살을 바라보며 내게 비춰주는 광명의 빛이라고도 생각들 때가 있고, 따갑고 귀찮아지는 때도 있다. 마음 속 깊이 잠재되어있는 분노가 대뇌에서 감지되어 생각이 떠오를때, 다시금 용서할 수 없음에 화가나고, 모든 일이 부정적으로 처리되는 것을 느낀다. 그때 비춰지는 햇살은 귀찮고 짜증나는 햇살로 다가오고 있었다.
용서를 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의 차이점은 이렇듯 눈에 띄게 느껴지는 긍적 또는 부정의 결과물로 명확히 표현 되어지곤 한다. 딕티비츠의 용서의 기술에보면 “당신의 삶을 바꾸고 싶은가?
그렇다면 용서하라. 삶을 누리려면 용서해야 한다. 용서는 살기 위한 기술이다.” 분노는 사람도 죽일 수 있다. 용서는 분노, 원망, 자멸의 고리를 끊을 수 있게 돕는다. 용서는 상처를 돌파한다. 용서는 상처를 감추지 않고 치유한다. 그리하여 삶을 열어젖힌다.
쉽지는 않겠지만 지금 바로 용서의 마음을 가져보자, 몸도 마음도 한결 가벼워짐을 느낄 것이다.
근로자의 날, 여성의 날 등과 같이 왜 용서의 날은 없는 것일까? 부끄러움에 쑥스러움에 표현못하는 용서를 하루만이라도 이런 기념일(?)을 만들어 용서하고 용서 받는 날을 만들면 모두가 긍정적 플러스 작용을 하여 더 좋아지는 환경이 되지 않을까?
용서는 타인을 위한 배려가 아닌 자신을 위한 선택이자 이기적인 행위이기도하다. 결국 용서 자체도 자신을 이롭게 하기 위한 행위로 간주할 때 무엇이 두려워 용서할수 없는 것인가?
사업에, 생업에 바쁜 시간을 쪼개느라 용서를 생각할 시간도 없는 분들이 계신다면 잠자리 들기 전이라도 잠시 여유를 가지고 용서하는 마음을 가져보면 어떨까?
정신의학자 토머스 사스의 말을 생각해보자. “멍청한 사람은 용서하지도 잊어버리지도 않는다. 순진한 사람은 용서하고 잊어버린다. 현명한 사람은 용서하되 잊어버리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 만이라도 많은 용서를 하여 스스로의 굴레에서 억눌림에서 벗어나 보시길 권한다.
▷조용한 상인(trntr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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