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몸이 좋지 않아 한국을 다녀왔다. 서울에 갈 때마다 나는 이제 누구 말대로 정말 신선족(新鮮族)이라는 걸 절감한다. 촌스럽게 실수하지 않으려고 조카가 적어준 순서대로 이리저리 접수를 끝내고 한숨 돌렸다. 병원 구내식당에 가니 또 한번 눈을 어디다 둬야 할지, 뭘 먹어야 할지 도대체 오감의 반응이 오질 않았다.
그런 내게 “이거 주문은 어떻게 하나요?” 묻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 김에 그냥 그 아주머니랑 함께 식사를 하게 됐는데 알고 보니 연변에서 오셨고 간병인 일을 하고 계셨다. 평소에는 비싸서 올 수 없는 구내식당이지만 환자가 막 대수술을 끝낸지라 가족이 배려해 주셨단다.
짧은 시간이지만 그 분은 내가 중국 땅에서, 더구나 아들이 살고 있는 상하이에서 왔다는 것만으로도 마치 고향 사람을 만난 것 같은 감회를 느끼셨는지 내 손을 놓지 못했고 나 역시 공항에 내리면서부터 아주 잘 정돈된 풍경 속에 문득 끼어든 이방인 같은 어색한 긴장이 풀렸다. 띄엄띄엄 가족사와 한국에 와 고생하며 일자리를 전전한 이야기를 들으니 마음이 짠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남의 나라도 아니고, 그렇다고 조국도 아닌 곳에서 어정쩡하게 살아가는 고단함, 외로움, 불안이 묻어나는 눈빛과 목소리가 헤어진 다음에도 계속 내 마음에 맴돌았다.
지금쯤 당나귀란 제목이 궁금하실 것 같다. 당나귀란 바로 ‘당신과 나의 귀한 만남’이란다. 그러고 보니 감사하게도 ‘당나귀’를 외치며 끌어안을 수 있는 사람들이 내겐 참 많다. 아니, 너무나 많은 우연의 다리를 건너 지금 보고 있는 모든 얼굴들이 다 귀하고 귀하다. 그리고 인생은 가끔 생각지 못한 곳에서 그 선물을 던져주어 섬광처럼 나의 생각과 마음을 새롭게 비춰주기도 했었는데 바로 지금 북적대는 사람들 틈에서 문득 맞닿은 아주머니와의 만남과 그 눈빛이 그렇게 내 마음속에 작은 파문을 일으키며 이전에 보지 못하던 사람들을 보게 하고 있다.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이 땅이지만 한국에 계신 어머니 못지않게 모호한 경계에 머물며 치열한 삶의 전쟁터에서 분투할 수많은 아주머니의 수많은 아들과 딸들, 그리고 이제는 아빠와 엄마의 언어를 말하지도, 알아듣지도 못하는 그들의 아이들…. 삶은 때로 이렇게 한 조각 퍼즐을 맞추는 순간들로 인해 고양되고 의미 있게 유지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앞으로 얼마나 더 상하이에 살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남은 시간은 이 만남으로 시작된 생각의 지도를 따라가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먼 훗날 내 인생을 풍요롭게 해준 당나귀로 꼽게 될 이 만남을 감사하면서 오늘밤엔 크리스마스 촛불 아래 앉아 내 인생의 당나귀들을 찬찬히 꼽아보고 싶다.
▷구름에 실린 달팽이(goen94@hanmail.net)
ⓒ 상하이저널(http://www.shanghaibang.net),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