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이름을 발음하면, 눈꺼풀 안에서 나무 한 그루가 아른거린다. 2mX2.5m의 커다란 화폭 위에서 흐드러지던 나무, 단순하고 겸허한 그의 작업실 한 켠에서 끌려 나온 한 여름의 무성한 나무….
미술을 좋아하거나 미술과 관련된 여러 명의 사람들을 이끌고 들어섰던 그의 작업실에서였다. 존재하지 않는 듯 숨어, 문을 걸어 잠그고 작업을 하는 그의 작업실엔 거대한 크기의 그림들과, 담배꽁초 무수한 재떨이와 찻잔과, 소파, 그리고 그의 붓을 통해 살아나온 무수한 존재들이 버글거렸다. 무더운 여름이었고, 그의 작업실 안에서 부서져라 상대의 목을 끌어안고 키스를 나누는 커플과, 허리를 제끼고 춤을 추고 있는 사람들, 마당에 모여 마종을 두고 있는 사람들, 고기를 자르는 도살인의 칼이 번뜩이는 어지러운 생활군 한 켠으로
조용한 나무가 끌려나왔더랬다. 하늘을 머리에 지고 묵묵히 작업실에 신선한 산소를 공급하던 나무… 가슴이 찡하고 울렸던 건, 그 나무가 너무나 깊이 있고 조용했기 때문이었다. 어지럽고 복잡한 사람들의 모습을 그려낸 그의 붓에서 이런 존재가 아무런 대책없이 커다랗게 하나의 초상을 이루며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믿을 수 없었던 날이었다. 그래서 그날부터 그는 내게 나무의 작가가 되어 버렸다.
지린성(吉林省)에서 태어나 20년 전 상하이로 삶의 터전을 옮겨 작품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는 그의 이름은 쟝언리이다. 방해받는 걸 제일로 싫어하며 종종 숨어서 작업을 하기도 하는 그가 어쩐지 내게는 문을 잘 열어 주었었다. 그를 찾아가지 않은지 오래 되었다. 모간산루(莫干山路)의 화가 친구들이 하나 둘씩 이사를 나가면서, 나 스스로도 바빠지고 상업적으로 변해가는 모간산루로의 발길이 뜸해지면서 그의 작업실을 찾을 이유도 딱히 생기지 않았었다. 그러다 최근 전시회 초대장을 받으면서 다시 그의 이름을 접하게 되었고, 반가운 생각이 들면서 나는 다시 그 푸른 나뭇잎의 거대한 나무를 머릿 속에 그리고 있었다. 나무를 잊고 산지 오래된 상하이의 생활이다.
지린성에서 상하이로 이사를 했을 때, 쟝언리는 일상생활에서의 일반적인 생활모습을 화폭에 많이 담았다. 작은 도시와 거대한 메트로폴리스의 다른 점, 두 다른 마음과 환경을 짚어내면서. 소비적인 것, 혹은 정치적인 것을 소재로 삼는 다른 중국 작가들과 달리 관찰과 명상과 인내를 통한 혼자만의 생활에 깊이 들어가 있는 쟝언리의 작품엔 자신의 생활에 열중하고 있는 이웃들의 모습이 등장한다. 그의 작품은 그 자신으로부터 나오는 것이어서, 그는 애써 작품을 사람들과 연결시키려 혹은 정치적인 발언을 하거나 사람들에게 의문을 내던지는 식의 연결 매개체로 사용하지 않는다. 그는 조용히, 자신의 창작이 자신을 이끄는대로 조용히 끌려가며 작품 활동을 할 뿐이다.
시리즈로 이루어지는 그의 작품엔 초상화 시리즈, 콘테이너 시리즈, 화장실 시리즈 등이 있고, 먹고 마시고 춤추는 거리 생활과 사람들을 주제로 한 것도 많다. 세월의 흐름과 함께 흐르는 그의 작품들을 보고 있으면 마치 오래된 사진 앨범을 보는 것 같다. 예전에 중국화를 공부했던 그의 그림들은 캔버스에 그려진 유화인데도 붓의 터치가 생생히 살아 있고 대범한 공백이 있는 게 특징이다.
무척이나 평범한 듯 지방적인 듯한 그의 작품들이 해외전에 많이 소개된 것은 한편 놀랍기도 하다. 그의 작품들이 문화가 다른 서양 사람들에게 이해가 될까 싶기도 한데 의외로 그의 작품엔 많은 팬들이 있다. 2006년도 스위스 바젤 아트훼어에서 가장 성공적인 중국 작가가 쟝언리였기도 한 것처럼 그의 작품들은 중국에서도 서양에서도 각별한 사랑을 받는다. 지난 몇 년 동안 그는 아일랜드 미술관을 비롯해 베른, 버밍햄, 런던 등에서 전시회를 가지기도 했다.
이번에 초대장을 받은 전시회는 샹아트에서 기획한 치기 어린 그룹전이다. ‘침대에 관한 모든 것(All about the bed)’이라는 제목으로 샹아트 소속 작가들의 침대에 관한 작품들을 선보이는 것이다. 쒸에송, 시용, 후양 등의 작가들이 참여하는 이 전시는 4월 10일부터 5월 9일까지, 모간산루 샹아트 갤러리 본관에서 이루어진다. 내게는 나무 작가로 각인된 쟝언리도 역시 거대한 화폭에 담긴 침대를 선보인다는 것 아닌가. 어쩐지 그것은 ‘침대가 되어버린 나무’로 이름지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이다. 상하이의 가장 유명하다면 유명한 갤러리인 샹아트를 방문해 그 작가들이 선보이는 침대와 그에 얽힌 인생을 들여다 보는 것도 노동절을 앞두고 할 수 있는 흥미로운 문화 여행이 아닐까 싶다.
▷글•그림: 나라나 아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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