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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 역사박물관을 찾아서> 동서양의 결합- 十里洋場

[2006-05-09, 05:09:00] 상하이저널
상하이 역사박물관 관람은 보는 사람들에 따라 느낌이 다르다. 상하이의 역사를 알고 보는 외국인들은 박물관 곳곳에 숨어있는 전시품 하나하나를 유심히 살피며 근대 상하이의 모습을 그린다. 중국 학생들의 단체 견학은 역사의식을 100% 갖게 해주지는 못하지만 나름대로 잊혀져 가는 과거 상하이의 모습들에 간혹 "어머 1920년대 사용하던 화폐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네"라고 신나기만 하다.
1843년 개항 이후 와이탄에 등장한 많은 서양 상인들은 상하이에서 무역 상행으로 거점을 마련했다는 사실도 박물관에서는 표현해 놓고 있다.

영국 조계지였던 洋涇浜 거리
영국의 조계지였던 연안루 동쪽 황푸강변의 '양징방(洋涇浜)' 거리를 그려놓은 벽화에서는 당시 인력거를 끌던 중국인들과 총을 들고 노동자들에게 지시하는 영국 군인들을 볼 수 있다.
양징방을 따라 흐르던 강줄기와 함께 옛 징안스(靜安寺)에는 강이 흐르고 우물이 샘솟는 곳이었다. 지금의 우젼(烏鎭) 통리(同里)처럼 수상 도시였던 상하이가 현재 장안스의 모습을 드러낸 것은 1919년 상하이에서 대규모 강 매립공사가 시작되면서부터다. 난징시루는 초기에 징안스루(Bubbling Well Road)라 불렸고, 승마장의 시끌벅적함과 사찰의 고느적함이 느껴지던 곳이었다니 믿기지 않는다.

난징루가 징안스까지 통하면서 1920,30년대 이곳은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번화가로 변모했다. 징안스 맞은편 바이러먼(百樂門. Paramount Holl) 댄스홀이 대표적인 장소였다.
중국 영화 산업, 그 중심에 상하이가 있다
1908년 상하이의 최초 영화는 영사기를 실은 차에 매직쇼나 서커스, 불꽃놀이 등을 상영한 것이었다. 서커스 장에서도 영화가 상영됐는데 당시에는 '서양 그림자극'이라고 불렸다. 이에 앞서 베이징에서는 1905년 경극을 소재로 한 최초의 중국 영화 '정군산(定君山)'이 만들어졌다. 그 후로 1913년에서 '못 말리는 부부(難夫難妻)'라는 극영화가 만들어지면서 영화라는 개념이 대중 속으로 파고들었다. 1930년대 중국영화가 상하이에서 황금시대를 맞으면서 상하이에는 중국 자본으로 세워진 영화사가 40여개나 생겨났고, 1926년 상하이에 최초 유성영화가 상영되면서 1928년부터 31년 사이 4백여편의 영화가 제작됐다. 영화 전문관만 40여곳, 하루 관객수는 1백만이었다는 이 곳은, 1842년 아편전쟁으로 중국이 대외에 개방되면서 상하이에는 영국 미국 프랑스 조계지가 형성됐다.

상하이에 주재하는 외국인들이 늘어나면서 상하이의 라이프스타일은 점점 변해갔다. 건물들도 중국 특유의 전통양식을 사양하고 유럽과 미국의 건축 양식을 받아들였다.
아편 수입의 증가로 아편 중독자들은 늘어가고, 미국의 기독교 선교사들과 영국과 프랑스 등지의 가톨릭 전도사들은 상하이로 물밀 듯이 들어와 중국 속으로 파고들었다. 나라 속의 나라였던 상하이는 중국과 서양의 혼합형 도시로 발전하면서 1940년대까지 반 식민지화에 길들여짐과 동시에 중국 공산화의 전초기지로서 그 역할을 톡톡히 했다.

통계도 있다. 루쉰이 교외에서 택시를 대절해 영화를 보러 다녔다고 하는 대광명(大光明)극장은 당시 좌석수 2천석에 냉난방 시설이 갖춰진 초호화 영화관이었다. 상하이는 그야말로 영화의 도시였던 것이다.
영화는 1895년 파리에서 뤼미에르 형제에 의해 세계 최초로 상영됐다. 영화는 10년 후에 중국으로 전파돼 민중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유흥거리를 제공했으며 때로는 정치적으로 이용당했다. 박물관은 중국의 영화 산업이 중국인의 피 끓는 역사를 대변하고 있다고 말한다.

제국주의에 무릎 끓었던 상하이 the mixed court과 工部局은 상하이가 조계시대였던 20세기 초에 치외법권이 인정된 사법 행정과 시정기구였다. 증기선을 타고 태평양을 건너온 외세 침략자들은 상하이가 새로운 기회의 도시였다.
기회의 땅에서 서양이 중국과 맺은 불평등 조약과 치외법권은 중국 전역의 사람들에게 반외세 정서를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1925년 5월30일은 상하이 사건이 일어난 날이다. 일본이 경영한 한 방직공장에서 사망한 한 중국인 청년 사건이 발단이 돼 외세에 대항하는 군중집회가 중국인 파업자와 학생 수천명이 참석한 가운데 상하이에서 열렸다. 군중들은 외국인 거류지를 가로질러 행진하다 영국 경위가 맡고 있는 파출소를 습격했다. 이 과정에서 시민들에게 총을 발사하는 사건이 벌어져 최소한 12명의 중국인들이 사망했고 20여명이상이 부상당했다. 상하이 사건이라고 알려진 그 비극은 치외법권이라는 미명하에 치외법정에서 서양인에게 유리하게 판결됐다. 당시 치외법권의 종식 요구와 불평등 조약을 실질적으로 개정하자는 서양인들도 많았다. 그러나 청의 몰락과 중화민국 탄생, 국민당과 공산당의 분열 등으로 무정부 시대화 되어있던 중국에서 외세 열강에 대처할만한 힘이 사실상 부족했다. 치외법권은 서양 제국주의가 내적 분열로 혼란했던 중국에서 맺은 완벽한 열매였던 것이다.

이밖에도 역사박물관에서는 근대 상하이를 멋스럽게 재현해 내고 있다. 상하이인들의 라이프스타일을 바꿔놓은 커피숍과, 라오상하이를 연상케 하는 '弄堂', 중국 최초의 근대 서양 미술관 '土山畵館', 쉬쟈후이 天文臺 등이 눈에 들어온다.
서양 문물이 들어오면서 상하이 시민들의 소비가 증가했다. 증기선 제조, 담배와 철광 석유가 수출입되고 철도가 들어서면서 무역이 급속도로 발전한다. 금융업도 융성했던 상하이의 '十里洋場' 시대는 서양과 동양의 결합으로 만들어진 독특한 도시 형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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